[이기호의 미니픽션] 누가 공평을 말하는가?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누가 공평을 말하는가?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진만은 오랜만에 졸업한 대학교 앞을 찾았다. 화요일 오후 세 시 무렵이었다. 광역시에서 버스를 타고 사십 분쯤 걸리는 면 소재지에 위치한 진만의 모교는 얼마 전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신입생을 다 채우지 못한 지방 사립대학교, 벚꽃 피는 순으로 문을 닫을 거라는 기사였다. 하긴, 우리 대학교에 벚꽃 나무가 많긴 많았지. 진만은 학교 정문 옆에 세워진 거대한 지구 모형의 탑을 올려다보았다. 밤에 저 앞 잔디밭에 앉아 막걸리도 많이 마셨는데, 지구에 토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띄엄띄엄 지나다니는 차만 몇 대 보일 뿐,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진만은 천천히 그 옆길을 따라 학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왜 여기 왔을까? 진만은 걸으면서 생각했다. 그즈음 진만은 정용과 함께 살던 원룸에서 나와 광역시 변두리에 있는 고시원에서 살고 있었다. 통장에 남아 있던 돈을 탈탈 터니 간신히 한 달치 고시원비가 나왔다. 고시원에 들어가고 난 후 진만은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의 대부분을 낡고 좁은 침대에 누워 지냈다. 멀뚱멀뚱 먹방 유튜브를 보거나 잘하지도 못하는 카트라이더 게임을 눈이 아플 때까지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정 무렵 편의점에 나가 컵라면을 사 와 끼니를 때웠다. 알바 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곧 카드도 정지될 텐데, 걱정하면서도 정작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쩐지 버려지고 구겨지고 내팽개쳐졌다는 마음에서 쉬이 벗어나질 못했다. 그래도 씻고 나가서 일자리를 구해봐야지. 각오도 다시 다지고 실제로 욕실 안까지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면 여전히 침대일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그날은 진만이 오전부터 나가야지, 나가야지, 일단 밖으로 나가봐야지 결심하다가 오후 한 시 무렵 겨우 간신히 외출에 성공한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올라탄 버스가 마침 모교로 향했던 것이다.
진만은 자연스럽게 기숙사와 학생회관 건물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교내 곳곳엔 이런저런 플래카드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진만은 대학을 다닐 때 동기들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왜 우리 과는 대부분 국가장학금을 받는 것이냐? 그거 다 소득분위가 낮아서 그런 거 아닌가? 그러니까 너도 빨리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해. 그게 소득분위 높이는 유일한 길이야. 그래서 너도나도 공무원 대비반에 들어가기도 했다. 거기 들어가면 무료로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진만은 공무원 대비반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학점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진만은 괜스레 학생회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지하에 있는 학생식당 쪽으로 내려갔다. 생각해보니 그때까지 한 끼도 먹지 못한 처지였다. 밥이나 먹고 가야지. 그래도 여기가 밥값은 싸니까. 진만은 예전에 없던 키오스크 앞에서 한동안 망설이다가 사천오백 원짜리 백반을 주문했다. 식판을 들고 유리 칸막이가 부착된 테이블에 앉으려던 순간, 누군가 진만을 아는 체했다.
“어, 선배님 아니세요?”
진만은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진만이 사학년 때 신입생으로 들어온 남자 후배. 부모님이 아로니아 농사를 짓는다고 주말마다 집에 내려갔다가 검게 탄 얼굴로 기숙사로 돌아오던 후배였다.
“어, 어, 너구나….”
진만은 어정쩡한 자세로 인사했다. 후배도 혼자였는지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어쩐 일로 학교에 오신 거예요?”
“으응,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둘은 그렇게 말한 후 대화가 끊겼다. 묵묵히 밥만 먹는 후배를 보다가 진만이 말을 건넸다.
“너 졸업할 때 지나지 않았니?”
“일 년씩 일 년씩 두 번 휴학했어요. 그래도 학교에 있어야지 시험 준비할 수 있어서.”
후배는 지금 학교 공무원 대비반에서 공부한다고 했다. 후배는 정말 빠른 속도로 밥을 먹었다. 진만은 채 반도 먹지 못했는데 숟가락을 놓고 진만을 기다렸다.
“먼저 가. 난 만날 사람이 있어서…”
진만이 말하자 후배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시험도 꼭 붙고. 진만은 후배에게 악수를 청했다. 국가장학금도 받고, 학교에서 무료로 온라인 강의도 듣게 해주고, 그만하면 공평한 거니까. 주말마다 부모님 농사도 도와주고, 시험에 떨어지면 미안해하고, 왜 우리 학교 나온 애들은 다 이렇게 비슷한 거니? 진만은 후배에게 그 말도 해주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진 못했다. 후배는 문제집을 옆구리에 낀 채 빠른 걸음으로 학생식당을 빠져나갔다. 이제 그 시간에 그곳에 남은 사람은 진만 한 명뿐이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ㅣ경향신문 2021.06.11
/ 2022.05.14(토)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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