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이기호의 미니픽션] (49) 목걸이

푸레택 2022. 5. 12. 11:11

[이기호의 미니픽션] 목걸이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목걸이

[경향신문] 진만은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금목걸이 하나를 주웠다. 백 원짜리 동전만 한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였는데, 펜던트엔 십자가 문양이 각인되어 있었다. 펜던트 또한 금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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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미니픽션] 목걸이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진만은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금목걸이 하나를 주웠다. 백 원짜리 동전만 한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였는데, 펜던트엔 십자가 문양이 각인되어 있었다. 펜던트 또한 금인 거 같았고, 제법 무게가 느껴졌다. 자정 무렵이었다. 골목길엔 저녁부터 내린 눈이 천천히 쌓이고 있었다. 진만은 목걸이를 든 채 어두운 하늘을 한번 바라보았다. 눈은 마치 서로 싸우는 것처럼 자리다툼을 하며 내리고 있었다. 진만은 그 모습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다시 자취방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금목걸이는 어느새 그의 바지 주머니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그는 좀 더 자세히 금목걸이를 살펴보았다. 펜던트 뒷면에는 음각으로 ‘박지수’라는 이름과 휴대폰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아이 거였구나, 미아 방지용 목걸이 같은 건가 보네. 진만은 금세 풀이 죽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옷소매로 펜던트를 문질렀다. 형광등 불빛을 받은 펜던트는 흠집 하나 없이 말끔했고, 그래서 아이의 이름과 전화번호는 더 선명하게 보였다. 진만은 함께 사는 정용이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도 금목걸이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조용히 추리닝 주머니에 그것을 넣었을 뿐이다. 그러곤 욕실에 들어가 세면대에 달린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목에 직접 걸어 보았다. 머리가 커서 바로 들어가지 않았고, 연결고리를 풀고 나서야 겨우 목에 걸 수 있었다. 목걸이 하나 했을 뿐인데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왠지 낯설어 보였다. 어쩐지 어린아이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부모 손을 놓친 것처럼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다음날 오전, 진만은 펜던트에 새겨진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돌려줘야지. 진만은 마치 배우처럼 고개를 끄덕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전화는 잘 연결되지 않았다. 진만은 연이어 두 번 더 전화해 보았고, 그래도 받지 않자 더 이상 걸지 않았다. 그는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금목걸이 시세를 알아보았다. 24K의 경우 무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대강 백만 원 가까이 한다고 나와 있었다. 연락을 안 받으니까 어쩔 수 없지. 어디 이민 갔을지도 모르고…. 진만은 사흘 후 돌아오는 카드 결제일을 떠올렸다. 이번 달 결제 금액은 사십만 원인데 통장에 남은 돈은 채 십오만 원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 삼십만 원쯤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리볼빙을 또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날 오후 진만은 자취방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떨어진 지하상가에 있는 한 귀금속매장에 들렀다. 회색 유니폼을 입은 점원이 근무하는 귀금속 프랜차이즈 매장이었다. 진만은 매장 앞에서 괜스레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전화는 여전히 걸려오지 않았다. 진만은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신 후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이 목걸이를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점원은 말없이 목걸이를 건네받았다.

“그러니까 이게… 제 조카 건데… 이민을 간다고 해서요….”

진만은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계속 말을 더듬거렸다. 점원은 목걸이를 들고 매장 한쪽에 있는 별실로 들어갔다. 진만은 손님용 회전의자에 앉아 계속 그쪽을 힐끔거렸다. 그냥 지금이라도 여기 놔두고 밖으로 나갈까? 진만은 계속 그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게 더 이상할 거야…. 진만은 일부러 허리를 더 곧추세웠다.

“저기 이게 펜던트만 14K고 체인은 금이 아니네요.”

별실에서 나온 점원이 진만 앞에 목걸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네… 그런가요.”

진만은 당황하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게… 아이들이 하는 게 아니고… 왜 치매 어르신들 하는 목걸이 있잖아요? 그거랑 같은 디자인인데….”

진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히 목걸이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 네… 이게 원래 저희 할머니가 하시던 목걸이인데….”

진만은 거기까지 말을 하다가 그냥 입을 닫아 버렸다. 그러곤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매장 밖으로 빠르게 걸어나갔다.

그날 밤까지 진만은 펜던트에 적힌 번호로 서른 번도 넘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계속 연결되지 않았다. 눈은 이틀째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ㅣ경향신문 2021.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