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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미니픽션] (43) 교회는 어디로 가시나?

푸레택 2022. 5. 12. 10:58

[이기호의 미니픽션] 교회는 어디로 가시나? (daum.net)

 

[이기호의 미니픽션] 교회는 어디로 가시나?

[경향신문] “내가 불안해서 못 참겠다고!” 점장은 마치 유치원생처럼 상체를 흔들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러다가 또 발까지 구르겠네. 정용은 포스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조용히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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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미니픽션] 교회는 어디로 가시나?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내가 불안해서 못 참겠다고!”

점장은 마치 유치원생처럼 상체를 흔들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러다가 또 발까지 구르겠네. 정용은 포스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조용히 입을 뗐다.

 

“그래도 요한이가 일 년 넘게 잘해왔는데… 그런 이유로 자른다는 게….”

“내 말이! 나도 요한이 좋아한다고. 요한이 일 잘하는 것도 알고, 자르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그러니까 네가 설득 좀 해보라는 거 아니야?”

정용은 말없이 점장의 눈을 피했다. 그게 설득한다고 될 일일까? 말이야 해보겠지만… 이건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정용은 괜스레 편의점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선 밤샘 근무 탓인지 형광등 불빛이 여러 개로 나뉘어 보였다. 다 잊고 그냥 자고만 싶었다.

요한은 정용과 같은 편의점에서 알바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된 청년이었다. 대학에선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다시 신학대학원 상담학 석사과정에 진학하려고 준비 중에 있었다.

“상담학 석사? 그것도 뭔 학위가 필요한 거야? 그냥 자격증 따면 안 돼?”

요한은 정용의 바로 앞 타임이었다. 피곤하기도 할 텐데 재고 정리나 진열을 도와주고 나갈 때가 많았다. 그때부터 서로 친해졌고, 가끔 폐기된 삼각김밥이나 도시락을 같이 먹곤 했다. 요한은 정용을 형이라고 불렀다.

“그냥 상담이 아니고요 형, 이게 믿음의 자녀로서 교리에 근거한….”

“아아, 알았다, 알았어. 그냥 네가 하는 거니까 좋은 거겠지.”

정용은 요한을 좋아했지만 때때로 답답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얼마 되지도 않는 알바 월급을 받아 십일조를 내거나 따로 감사 헌금을 내는 거, 야간 타임을 마치고 바로 1부 예배를 나가는 거. 그 시간과 정성을 자신에게 쓰면 어떨까? 아니, 그냥 그 반만이라도 저축을 하거나 다른 여가를 즐긴다면…. 하지만 어쨌든 그건 요한이 선택한 일이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었으니까. 그 외에 요한은 성실하고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친구였다. 가끔 폐기된 삼각김밥을 먹기 전 큰소리로 기도를 하거나 편의점 블루투스 스피커에 찬송가를 트는 것만 빼면. 요한이 교회에 가든 절에 가든, 정용에게 요한은 요한일 뿐이었다.

하지만… 전염병이 돌고 있는 세계에서, 특히나 교회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 요한의 종교는 단순히 요한의 세계로만 그치지 않았다. 더구나 요한은 내일부터 사흘간 교회 수련회를 간다며 점장에게 타임을 빼 달라고 부탁한 처지였다. 거짓말이라도 좀 하지. 그냥 부모님께 다녀오겠다고 하지. 아니 지금 이 시국에 교회 수련회를 간다고 하면 세상 어느 편의점 점장이 ‘그래, 그럼 잘 다녀오렴. 은혜 많이 받고’ 한단 말인가? 뭐, 여기가 예루살렘 편의점인가? 정용은 점장이 저렇게 길길이 뛰는 것도 이해가 됐다. 알바가 확진자면… 편의점 문을 닫아야 할 테니까.

이틀 전, 정용은 넌지시 요한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이상하지 않니? 성당도 있고, 식당도 있고, 야구장도 있는데… 왜 교회에서만 그렇게 확진자가 많이 나올까?”

정용의 말에 요한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곤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형… 우리 교회는 젊은 친구들이 몇 명 없어. 다 할머니들뿐이야….”

요한은 잠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안 가면… 마스크 챙겨줄 사람도 없어… 식사도 따로 챙겨드려야 하고.”

“아니, 그러니까 이럴 땐 수련회 같은 건 쉬는 게….”

정용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우리 목사님은 안수기도를 꼭 해야 한다고 믿는 분이거든….”

요한은 괜찮을 거라고, 이번 수련회는 어디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하는 거라고 말했다.

정용은 편의점 근무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오면서 요한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계속 망설였다. 보낸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점장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정용은 자취방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에야 짧은 문장 하나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요한아, 마스크 꼭 써야 한다! 찬송가 부를 때도 꼭!”

정용은 전송 버튼을 누르려다가 그냥 메시지를 삭제해 버리고 말았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ㅣ경향신문 2022.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