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미니픽션] 6인실 /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오른쪽 다리가 부러진 찬영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예 직접적으로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목에 깁스를 한 상민씨는 진만의 얼굴을 보며 동의를 구했다.
진만은 말없이 휠체어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진만은 속으로 그렇게 웅얼거렸다. 또 비가 오려는지 밤공기는 후텁지근하기만 했다.
진만이 왼쪽 팔꿈치와 왼쪽 중족골 골절로 입원한 건 지난주 토요일의 일이었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 웬 롱보드 한 대가 버려진 듯 놓여 있어 ‘으흠 이게 요즘 인싸들만 탄다는 바로 그 보드인가’하고 그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 그냥 지나갔으면 좋았을 걸, 진만은 괜스레 한쪽 발을 보드 위에 올려놓았다가 그대로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허공에서 거의 180도쯤 회전했다).
극심한 통증과 함께 왼쪽 팔과 왼쪽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서 골목길에 꼼짝없이 누워 있었는데, 다행히 롱보드 주인이 나타나 119에 신고해 주었다. 롱보드 주인은 초등학교 6학년생이었다.
왼쪽 팔은 수술 없이 깁스만 했지만, 문제는 왼쪽 발등이었다. 발가락과 연결된 뼈가 모두 부러져 바로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러고도 2주 넘게 입원한 뒤 계속 통원 치료와 재활을 병행해야 한다고.
“어쩌냐? 알바 때문에 내가 매일 와 있을 수도 없고….”
함께 사는 정용이 갈아입을 속옷과 생수를 챙겨와 말했다.
“괜찮아. 한쪽 팔과 한쪽 다리는 멀쩡한데, 뭘.”
진만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한쪽 팔과 한쪽 다리로 속옷을 갈아입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게 가능할까?
진만이 입원한 병실은 6인실이었다. 병원에서 일부러 그렇게 배치했는지 몰라도 모두 골절 환자들이었고, 한 명도 빠짐없이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했지만 2~3일 동안 같이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함께 식판을 치우다 보니(식사 시간만 되면 모두 휠체어에 올라타 일렬로 식판을 나르곤 했다. 약간 카트라이더 느낌), 인사를 하고 말을 하면서 지내게 되었다. 딱 한 명, 진만의 바로 옆 침대를 쓰는 김종명 할아버지만 빼고….
올해 일흔세 살인 김종명 할아버지는(환자들 침대엔 이름과 나이가 모두 적혀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대로 논두렁에 추락, 두 발이 모두 골절된 환자였는데,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 탓인지 6인실에 있는 그 누구와도 말을 섞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다. 단, 텔레비전 리모컨과 에어컨 리모컨을 양손에 독점한 채.
“저는요, 제 인생에서 이렇게 YTN만 오래 보고 있는 게 처음이라니까요. 이젠 거기 나오는 상조회사 광고까지 다 외웠어요.”
찬영씨가 말했다.
“에어컨은요? 아니, 병실에서 에어컨을 안 틀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부러진 팔로 부채질을 다 했다니깐요?”
상민씨도 말을 받았다.
정 불편하면 바로 앞 2인실로 옮기면 될 텐데, 거긴 6인실에 비해 하루 병실 사용료가 네 배 더 비쌌다.
“그냥 말을 하자고요. 아픈 환자들끼리 나이 따지게 생겼습니까? 팔 부러진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러다가 화병까지 나겠어요.”
진만은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그제 새벽에 김종명 할아버지가 누군가와 소리를 낮춘 채 통화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벽 6시 무렵이었다. 옆 침대에서 휴대폰 버튼음이 들리더니 이내 김종명 할아버지의 작고 낮은 음성이 커튼을 너머로 들려왔다.
“오긴 여기가 어디라고 와. 코로나인지 콜레라인지 전염병 때문에 보호자도 못 들어와 이 사람아….”
진만은 김종명 할아버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병실에는 보호자 한 명은 출입이 가능했다.
“그럼, 내가 매일 뉴스 보고 있지. 여기도 걸린 사람 많대…. 임자는 절대 오면 안 돼…. 나이 든 사람은 절대 안 돼…. 아, 글쎄 여기도 이불 있다니까. 폐렴은 무슨…. 그럼, 빨리 나아서 옥수수 따러 가야지….”
진만의 말을 다 들은 찬영씨와 상민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럼, 우린 계속 YTN만 보고 에어컨 없이 살아야 합니까?”
찬영씨 말에 상민씨가 우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빨리 뼈가 붙기를 바라야죠….”
진만은 차라리 그게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더 이상 아무도 아프지 않기를.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ㅣ경향신문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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