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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토지' 서희, 가시 가득한 탱자나무 같은 여인

푸레택 2022. 4. 27. 14:01

[김민철의 꽃이야기] '토지' 서희, 가시 가득한 탱자나무 같은 여인 (daum.net)

 

[김민철의 꽃이야기] '토지' 서희, 가시 가득한 탱자나무 같은 여인

<사랑 뒤뜰을 둘러친 것은 야트막한 탱자나무 울타리다. 울타리 건너편은 대숲이었고 대숲을 등지고 있는 기와집에 안팎일을 다맡는 김서방 내외가 살고 있었는데 울타리와 기와집 사이는 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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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나무꽃.

[김민철의 꽃이야기] '토지' 서희, 가시 가득한 탱자나무 같은 여인

<사랑 뒤뜰을 둘러친 것은 야트막한 탱자나무 울타리다. 울타리 건너편은 대숲이었고 대숲을 등지고 있는 기와집에 안팎일을 다맡는 김서방 내외가 살고 있었는데 울타리와 기와집 사이는 채마밭이었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에서 하동 평사리 최 참판댁의 전체적인 모습이 나오는 대목이다. 필자가 어릴적에만 해도 남쪽 지방엔 최 참판댁처럼 탱자나무 울타리가 흔했다. 요즘은 벽돌 담장에 밀려 시골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은 풍경이다. 우리나라 민간 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전남 담양 소쇄원에 가보니 잘 가꾸어놓은 탱자나무 울타리를 볼 수 있었다.

탱자나무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긴 험상궂은 가시다. 어릴 적 탱자를 따기 위해, 탱자나무 속으로 들어간 공을 빼기위해 아무리 조심스럽게 손을 집어넣어도 여지없이 가시에 찔렸다. 그래서 탱자나무는 접근을 거부하는, 접근하더라도 조심해야하는 나무였다.

이 탱자나무가 ‘토지’ 3부에서 서희를 묘사하는데 쓰였다. 서희는 미모가 출중하지만 매몰찬 성격이다. 어린 나이에 어미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갔고, 할머니 윤씨부인마저 콜레라가 창궐할 때 잃고, 조준구에게 가산을 다 빼앗기고, 식솔들을 이끌고 용정으로 옮겨가 부를 축적하려면 그런 성격이어야했을 것이다.

탱자나무꽃

토지 3부는 조준구로부터 집과 땅을 되찾은 서희가 진주에 정착해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진주에서 최 참판댁 주치의는 박효영 의사다. 의사도 오래 대면하다보면 환자 그 이상의 감정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박 의사의 경우가 그랬다. 서희는 박 의사가 자신을 사모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한다. 그런 서희를 처음 보고 박 의사가 연상하는 것은 탱자나무 울타리다.

<박 의사는 서희를 생각할 때 연상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탱자나무의 울타리다. 서울 태생의 박 의사는 남쪽으로 내려와서 처음 탱자나무 울타리를 본 터이지만 강인하고 날카로운 가시가 밀생(密生)한 탱자나무 울타리를 바늘 하나의 출입도 거부하듯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느꼈던 것이다. 그것은 저승의 사자를 출입 못하게 막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지만 박 의사는 서희를 처음 만났을 때 어째 그랬던지 그 탱자나무의 울타리를 생각했던 것이다.>

마침 하얀 탱자꽃이 피는 계절이다. 서울 경복궁 고궁박물관 옆 뜰 탱자나무에도 하얀 탱자꽃이 피어 향기를 뿜고 있다. 서울에선 탱자나무도 보기 어렵지만 탱자꽃은 피는 시기도 짧아 더욱 귀한 꽃이다. 꽃이 필 때 옆을 지나면 은은한 꽃향기가 참 좋다. 5장의 하얀 꽃잎이 서로 떨어져 있는 꽃도 개성있고 예쁘다. 여기에 날카로운 가시까지 생각하면 탱자나무꽃은 미모를 가졌지만 접근을 거부하는 서희의 꽃으로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탱자나무는 운향과에 속하는 작은 키 나무다. 많이 자라도 3~4미터 정도다. 줄기가 항상 푸르러 상록수로 알기 쉽지만 가을엔 잎이 떨어지는 낙엽성 나무다. 중국이 원산지로, 추운 곳에서 자라지 못해 우리나라엔 경기도 이남에 주로 분포한다. 강화도가 북방한계선인데, 이곳 탱자나무는 성벽을 쌓고 그 아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심은 것이다. 400년 전 병자호란 때 청나라 침입을 막기 위해 심은 탱자나무 중 두 그루가 살아남아 각각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탱자나무는 가을에 또한번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실 꽃이 필 때보다 탁구공만 한 노란 열매가 달려 있을 때가 더 돋보인다. 특히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탱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은 셔터만 누르면 바로 작품 사진이다. 어릴 적 가시에 찔려가며 노란 탱자를 따서 갖고 놀거나 간간이 맛본 기억이 있다. 잘 익은 노란 탱자도 상당히 시지만 약간 달짝지근한 맛도 있다.


탱자나무 열매.

소설 ‘토지’에서 박 의사는 서희가 탱자나무 울타리임을 알면서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 결과는 불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희가 눈물을 보인 것이 일방적인 애정만은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

김민철ㅣ조선일보 / 2022.04.27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