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이송이의 뻔하지 않은 여행글쓰기(4) 현장의 기록들, 쓰거나 찍거나 그리거나 (daum.net)
[더,오래] 이송이의 뻔하지 않은 여행글쓰기(4) 현장의 기록들, 쓰거나 찍거나 그리거나
현장선 장문의 글보다 짧은 메모 중요
여행글에선 현장성 있어야 감성 느껴져
시간은 우리를 망각으로 이끈다. 조각배가 강물에 흘러가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기억도 차츰 멀어지고 엷어진다. 내가 인지하든 못하든, 기억은 지워지고 종종 재구성되며 당시의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조금씩 왜곡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잠은 결정적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기억의 양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때로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 글쓰기를 위해 글을 쓰고 하룻밤을 보낸 후 이튿날 읽어보는 식으로 퇴고하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현장에서의 글은 언제나 소중하다.
현장에서 바로 무언가를 기록하고 다음 날 기억을 떠올려 다시 기록해 보고, 사흘 후에 똑같은 상황에 대해 기록한 것을 비교해 본다면 현장에서 바로 쓰는 글이 얼마나 생명력을 가지는지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현장에서 장문의 글을 써내려가기란 어렵다. 그래서 짧은 메모들이 중요하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단상을 키워드로 기록하고 마주치는 사람들이나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메모를 남기는 일은 습관이 되지 않으면 막상 쉽지 않은 일이다.
여행 글도 마찬가지다. 여행의 감성 따위야 현장성과 그리 상관있으랴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상을 넘어서는 감성이 전체의 글을 지배하기도 하는 여행 글에서는 작자의 주관적인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의 현장성은 더 중요할지 모른다.
━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
사진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이 요즘의 여행 패턴인지라 사진찍기에 과하게 몰두하다 보면 정작 현장에서 남기는 여행의 기록은 거의 없는 경우도 많다. 기록물로서의 사진을 맹신하기 때문이다. 사진이 곧 기록이라고 생각하면서 따로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느낀 당시의 감성이나 감정 역시 스스로가 찍은 사진을 보면 곧 되살아날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와 수많은 사진을 바라볼 때 정말 그때의 감정을 다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몇 장의 강렬한 사진은 당시의 감정을 불러올 수도 있을 테다. 허나 사진을 찍는 나와 찍어놓은 사진을 보는 나와의 시간적 갭은 어쩔 것인가.
장소는 물론 감정도 이미 달라져 있다. 사진을 찍는 순간의 나는 사진을 보는 지금의 나와 다른 나일 수 있다. 수없이 찍은 사진들 중에 진정 나의 것 찾아내기란 생각보다 어려울지 모른다. 나만이 찍은 사진이 아닐 경우가 흔한 풍경사진이라면 더욱 그럴 테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장편의 기행문인 《나는 걷는다》에는 사진 한 장 실려 있지 않다. 여정을 그린 지도가 전부다. 4년간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만 2000km의 실크로드를 걸으며 그는 모든 길과 그 길을 걷는 자신을 글로 남겼다. 길을 가면서의 감정은 물론 순간순간 자기 앞에 벌어지는 상황들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62살의 나이, 4년, 실크로드 걷기여행이라는 그의 여행 키워드에 더해 사진 한 장 없는 여행기라는 점에서 이 책은 은퇴자 뿐 아니라 뭇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30년간의 기자생활에서 체득한 기록의 습관이 큰 힘이었을 것이다.
순간 순간을 현장감 있게 기록한 그의 여행기는 여행책의 궁극의 목적이기도 한 ‘읽는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독자는 마치 저자와 함께 여행하는 것처럼 느끼고, 상상 속 여행을 언젠가 나의 현실로 구체화시키려는 동기를 갖게 된다. 상상의 힘, 그것은 종종 사진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는다.
제 3의 인물에게 나의 여행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주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선 현장속에서 내가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한다. 놓칠 수도 있는 많은 상황과 이야기들을 건져 올려 수첩에 담아놓아야 한다. 죽어있는 물고기가 아닌 활어(活魚)를, 그래서 활어(活語)를 잡아야 한다. 수산시장에 가지 않고 바다낚시를 가 듯, 수많은 이야기가 떠도는 그곳으로 직접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진이 현장성을 잡아내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사진이야말로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는 최상의 매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 듯, 그 유명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찰나의 순간’에 집중한 사진작가다. 사진이 얼마나 찰나의 기록을 훌륭하게 그려낼 수 있는지를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현장의 기록물로서 사진을 찍을 때 그 결과물로서의 ‘찰나’와는 반대로 과정에서는 종종 끝없는 ‘기다림’이 기다린다. 여행사진 역시 수많은 순간에 적절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기다림이 충분히 녹아난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은 차이가 있다. 사람을 찍을 때, 일정한 시간에만 열리는 빛을 찍을 때, 무언가 오거나 가기를 기다릴 때, 계절의 흐름을 포착해야 할 때, 여행자는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먼저 느껴야 한다. 남들 다 찍는 거라서, 안 찍으면 아까운 풍경이니까, 너무 멋진 광경이니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찍는 건 아무리 멋진 대상을 찍더라도 어딘가 어설플 수밖에 없다. 남들이 다 찍어 놓은, 찍고 있는, 찍을 사진이니까 그 의미는 점점 더 희박해진다. 최소한 내가 느끼지 않은 것은,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은, 찍지 말자. 필름 카메라 시절이 좋았다고 느끼는 건 그 때문이다. 그 때 우리는 기회비용 때문에라도(필름 값이 비싸서, 인화비가 아까워서) 마구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누구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요즘이지만 그 큰 무기로 기관총을 난사하듯이 사진을 찍지는 말자. ‘찰칵, 찰칵’이 아닌 ‘투두두두’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자. 유독 카메라를 잡을 때만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으로 변하지 말자. 여행을 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이 그곳을 흘러 지나가는 일이라면, 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건 그곳을 좀 더 자세히 보고 나를 투영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만하다. 그림을 잘 그려야만 여행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글을 잘 못 써도 쓰고, 사진을 잘 못 찍어도 찍는 것처럼, 그림을 잘 못 그려도 그릴 수 있다.
━ 느낀대로 그리기
그림이라고 하면, 그려보지 않은 사람들은 겁부터 먹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그릴 필요는 없다. 나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쓰고, 나의 시야에 맴도는 것을 찍는 것처럼, 그저 나에게 어떤 감상을 주는 것을 그리면 된다. 프레임에 들어온 것이라도 나의 기준에 따라 자를 것은 자르고 버릴 것은 버리고 그리고 싶은 부분만 그려도 좋다. 특정 부분을 부각시키거나 축소시킬 수도 있다. 솔직하게 내가 느낀 것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그 곳에, 그 것에, 그 사람에 좀 더 시간을 쏟는 일이다. 쏟은 시간에 비례해 애정이 생기고 감정은 더 풍부해질 테다. 그림을 그리며 다시, 쓰고 싶은 글이 생기거나 찍고 싶은 것이 생길 수도 있다. 처음부터 ‘여행드로잉’을 위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여행을 하며 쓰고, 찍고, 그리는 일은 그 결과물로서 ‘나는 어떻게 여행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이송이 여행작가ㅣ중앙일보
/ 2022.04.17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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