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부활'의 카츄샤, 첫 입맞춤에 라일락 가지 꺾어서.. (daum.net)
[김민철의 꽃이야기] '부활'의 카츄샤, 첫 입맞춤에 라일락 가지 꺾어서..
다시 라일락의 계절이다. 여기저기에 연보라 또는 새하얀 라일락 꽃들이 구름처럼 피어 있다. 라일락이 특별한 것은 강한 향기 때문일 것이다. 라일락 꽃이 핀 쪽에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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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의 꽃이야기] '부활'의 카츄샤, 첫 입맞춤에 라일락 가지 꺾어서..
다시 라일락의 계절이다. 여기저기에 연보라 또는 새하얀 라일락 꽃들이 구름처럼 피어 있다. 라일락이 특별한 것은 강한 향기 때문일 것이다. 라일락 꽃이 핀 쪽에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강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 향기를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품격이 느껴지는 고급 향이다.
톨스토이의 명작 ‘부활’에서 많은 재산과 지위를 물려받은 귀족 청년 네흘류도프와 그의 고모집에서 하녀 겸 양녀로 사는 카츄샤가 첫 입맞춤을 한 것은 하얀 라일락 꽃이 진 직후였다.
<그녀가 다가서자 그가 그녀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스로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피하려 하지 않았고, 그는 그녀의 손을 더욱 세게 쥐며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어머나!”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재빠른 동작으로 손을 빼고 그를 피해 달아났다.
라일락 떨기나무 쪽으로 달려간 그녀는 하얀 꽃이 이미 져버린 라일락 가지를 두 개 꺾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두들기더니, 그를 돌아보며 두 팔을 힘차게 흔들어 보이고는 술래잡기를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네흘류도프의 사랑은 카츄샤의 순정과는 달리 유희에 불과했다. 그것은 네흘류도프가 속한 상류사회에서 흔한 일이었다. 임신 후 고모집에서 쫒겨난 카츄샤가 어떤 가시밭길을 걸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2년 후 네흘류도프는 한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했다가 카츄샤가 살인죄 피고인으로 나온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카츄샤는 누명을 쓴 것이지만 이런 기막힌 상황을 결국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카츄샤를 돕는 것은 물론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 직후 네흘류도프가 다시 고모집에 들렀을 때는 라일락이 피어 있었다.
<정원만은 황폐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초목들이 무성하게 군락을 이루었고, 때마침 꽃이 온통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담장 너머로 하얀 구름처럼 꽃을 피운 벚나무, 사과나무, 자두나무가 보였다. 산울타리를 이룬 라일락나무에는 십사 년 전 그해처럼, 네흘류도프가 열여덟 살 카츄샤와 함께 라일락나무 뒤에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넘어져 엉겅퀴에 찔렸을 때처럼 꽃이 피었다.>
‘부활’에서처럼 라일락은 젊은 연인들의 꽃이다. 라일락 잎은 거의 완벽한 하트 모양이다. 라일락 잎을 깨물면 첫사랑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잎을 따 깨물면 당연히 쓰디쓴 맛이다. 라일락 꽃잎은 네 개로 갈라지는데, 다섯 개로 갈라진 꽃을 보면 사랑을 이룬다는 속설이 있다. 네잎 클로버와 비슷한 속설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비교적 큰 라일락나무는 대개 서양에서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토종 라일락이 있는데 바로 수수꽃다리다. 황해도, 평안남도, 함경남도의 석회암 지대에서 자란다. 그래서 자생지에서 볼 수는 없지만 홍릉숲 등 전국 수목원 등에 가면 볼 수 있다.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달리는 꽃 모양이 수수 꽃을 닮아 ‘수수 꽃 달리는 나무’라고 수수꽃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수꽃다리는 라일락과 비슷하지만 잎과 꽃 모양이 약간 다르다. 라일락은 잎이 폭에 비해 긴 편인데, 수수꽃다리는 길이와 폭이 비슷하다. 화관통 길이도 라일락은 짧은 편이지만 수수꽃다리는 1.5㎝ 이상으로 길다.

수수꽃다리와 비슷한 토종 형제나무들도 있다. 꽃이 흰색이고 수술이 밖으로 나온 개회나무, 잎 뒷면 주맥에 털이 많은 털개회나무(정향나무), 묵은 가지가 아닌 새 가지에서 꽃대가 나오는 꽃개회나무 등이다. 전문가들도 라일락과 수수꽃다리를 구분하는데 애를 먹는다고 하니 굳이 일반인들이 구분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겠다. 아래 라일락과 수수꽃다리 동영상을 보면서 그 분위기 차이라도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요즘엔 키가 작은 왜성종 라일락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 라일락을 미스김라일락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지만 대개 팔리빈(Palibin)라일락이다. 미스김라일락은 해방 직후 미국에서 우리 털개회나무 씨를 가져가 개량한 품종이지만, 팔리빈라일락은 중국 원산의 라일락을 러시아 식물학자 팔리빈이 개량한 것이라고 한다. 미스김라일락은 아래 사진처럼 잎이 다소 크고 길쭉한 삼각형 형태지만 팔리빈라일락은 잎이 작고 둥근 점이 다르다. 팔리빈라일락은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미스김라일락은 의외로 보기가 쉽지 않다. 아래는 비교용 사진인데, 국립수목원에서 제공한 것이니 맞을 것이다.


김민철ㅣ조선일보 2022.04.19
/ 2022.04.2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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