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8) 현대인의 삶-권대웅의 '화석'

푸레택 2022. 4. 17. 17:4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8) / 현대인의 삶-권대웅의 '화석'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8) / 현대인의 삶-권대웅의 '화석' - 뉴스페이퍼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8) / 현대인의 삶-권대웅의 '화석' 화석권대웅 어느 날 갑자기 수화기에서 돌멩이들이 튀어나왔다어느 날 갑자기텔레비전에서 붉은 벽돌이 시멘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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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78) 현대인의 삶-권대웅의 '화석'

화석 /
권대웅


어느 날 갑자기 수화기에서 돌멩이들이 튀어나왔다
어느 날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붉은 벽돌이 시멘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나의 혀는 축대처럼 굳었다 할 말이 없다
신문을 읽으면 자갈밭을 걷는 것 같은,
자판기를 두드리면 찍혀 있는 알 수 없는 새 발자국들
나는 이제 나를 나라고 쓸 수 없다

저 돌로 되어 있는 집
저 돌로 지은 집
저 돌로 지은 마음
  
나뭇잎과 슬픔을 섞어보아도
다시 한 번
구름과 눈물을 범벅해 보아도
나를 쓰는 것이 너를 읽는 것이
가시덤불 헤쳐 나가는 것처럼 힘들다

어느 날 깨어나서 내가 처음으로 본 것은 말하는 벙어리들
어느 날 깨어나서 내가 처음으로 읽은 것은 박쥐들의 언어
말하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삶을 꿈꾸었다
비틀비틀 돌멩이를 맞으며 돌멩이를 읽으며
수세기가 지나간 어둠 속에서
                                  
-『리토피아』(2002. 여름)

<해설>
  
현대인으로 살아가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보다. 수화기에서 돌멩이들이 튀어나왔다고 느꼈으니 얼마나 황당한 수신이었으랴. 텔레비전에서 붉은 벽돌과 시멘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고 느꼈으니 얼마나 못마땅한 보도였으랴. 문명의 이기인 전화와 텔레비전이 나의 혀를 축대처럼 굳게 한다. 신문을 읽으면 고통이 엄습하여 자갈밭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자판기를 두드리면 정신이 혼미해져 알 수 없는 새 발자국들이 보인다. 시인의 절망감은 “저 돌로 지은 마음”을 한탄한 제2연을 거쳐 끝 연에 이른다. 여기서 깨어났다는 것은 탄생보다는 깨우침을 뜻한다.

눈을 제대로 떠서 보았더니 사람들이 모두 말하는 벙어리 아닌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 언론들. 눈을 제대로 떠서 읽었더니 책이며 신문에 적힌 글은 모두 박쥐들의 언어다. 그래서 “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삶”, 즉 이심전심(以心傳心)과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세계를 꿈꾼 것이리라. 그러나 이것은 단지 꿈일 뿐, 현대인은 여전히 비틀비틀 돌멩이를 맞으며, 돌멩이를 읽으며 살아간다. 수세기가 지나간 어둠 속에서, 화석이 되어.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7.01

/ 2022.04.17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