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범의 행복심리학 5]결혼은 미친 짓일까? (daum.net)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5) 결혼은 미친 짓일까?
소크라테스의 결혼 생활은 불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악처로 알려진 아내 크산티페에 관한 일화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 3세기 초의 역사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고 훗날의 작가들에 의해 대부분 과장된 것이다. 억울하게 오명을 쓰긴 했지만, 크산티페가 남편에게 불만을 가진 것은 틀림없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집안일에 관심이 없었고, 동성애자이면서 후처와의 사이에 아들을 두었으며, 평생 무위도식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을 불러들여 입담을 즐겼다. 불행했던 사람은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아내였던 것이다.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역시 평생 남편의 원고를 필사하면서 열세 명의 아이들을 길렀지만, 남편의 관심은 늘 다른 데 있었다. 결국 톨스토이는 여든 살을 넘긴 나이에 집을 나와 외딴 시골 역장의 집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했다. 행복한 결혼에 대해 조언한 철학자는 많지만 결혼 생활이 행복했노라고 고백한 철학자는 거의 없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매우 비관적인 말을 남겼다. “(결혼은) 종족보존의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추악하게 변한 배우자만 남는다.”
◆ 결혼에 대한 판타지
동화나 드라마가 보여주는 결혼은 판타지다. 현실에서는 괴물을 물리친 영웅이 공주를 차지할 수도 없고, 통금시간을 어긴 소녀가 왕비가 될 수도 없다. 동화는 결혼 후의 삶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동화의 결말은 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식으로 끝난다. 결혼 후의 자질구레한 삶을 낭만적으로 그린 작품들은 대개 독자의 희망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진화의 숨은 전략이다. 인간은 위험하고 철없는 사랑이 짝짓기로 이어지도록 진화했다. 결혼이 가족의 생계와 양육의 의무가 주어진, 그렇고 그런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아무도 결혼하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침대에서 눈을 뜨면 배우자가 갓 구운 빵과 커피를 내놓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이 그런 태도를 가졌다 해도 평생 그럴 리는 없다. 물론 결혼이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눈에 낀 콩깍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2011년 머리(Murray) 연구팀에 의하면, 배우자를 이상적인 사람으로 여기면 결혼의 만족감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예컨대 배우자가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이라고 믿으면 배우자와 문제가 생겨도 관대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결혼 후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돈 문제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랑이 유지될 수 없다. 예전에는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이 가능했지만 요즘에는 비슷한 배경의 사람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의 소득이 남성보다 많은 경우도 적지 않다. 2014년 사회학자 로버트 메어(Robert Mare)가 미국인들의 삶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결혼을 기점으로 여성의 소득은 감소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소득은 더 감소하고, 반대로 남성의 소득은 증가한다. 더구나 여성이 육아를 위해 질 낮은 일자리로 이동하거나 직장을 그만둘 경우 이혼 가능성도 커진다.
그렇다고 돈을 삶의 중심에 놓으면 결혼 생활의 만족도가 낮아진다. 2011년 제이슨 캐럴(Jason S. Carroll) 연구팀이 1734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물질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일수록 부부 관계가 좋지 않다. 최악의 조합은 부부 중 한 명이 속물이고 다른 한 명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다. 이 커플은 부부가 모두 속물인 경우보다 불화가 잦았다. 가장 행복한 관계는 둘 다 돈을 밝히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행복감을 측정하는 주요 지표에서 10~15% 정도 높은 점수를 보였다.
◆ 기혼자와 독신자, 누가 더 행복한가?
에로틱한 사랑은 2년을 넘지 못한다. 행복감은 결혼 직전에 절정에 이르렀다가 결혼하는 순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다. 국내에서 진행된 2015년 연구에서도 여성의 결혼 만족도는 결혼 후 2년이 지나면 본래 상태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런데 남성의 경우에는 결혼 생활 내내 만족도가 그대로 유지된다. 남성에게는 결혼이 손해 보는 게임이 아닌 것이다. 기혼자는 독신자보다 행복하다. 한 연구에 의하면 기혼자 40%가 삶에 만족한다고 답한 반면 미혼자는 23%만이 삶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2012년 에드 디너(E. Diener) 연구팀은 행복한 사람이 더 많이 결혼하고 이혼 가능성도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혼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동거만 하는 커플이며, 가장 불행한 사람은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한 사람이다. 배우자를 잃으면 몸의 면역계에 문제가 생겨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이 때문에 배우자를 잃은 사람의 사망률이 높다. 1950년대 후반부터 이뤄진 여러 연구에서 배우자를 잃은 사람은 같은 연령대의 기혼자보다 사망률이 2~4배 높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특히 55세 이상 영국 남성 4486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아내와 사별한 남성은 6개월 내 사망률이 40%나 높았다. 42년 동안 세계 주요 국가에서 이뤄진 34개 논문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독신자는 관상동맥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42%, 뇌졸중으로 사망할 위험이 55%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혼자 사는 남성은 사망률이 높고, 특히 이혼하거나 아내와 사별한 남성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여성의 경우 결혼 여부가 사망률을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성은 혼자서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혼자 사는 남성은 사소한 일상사가 모두 스트레스다. 남성은 가족이나 사회적 돌봄이 없으면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이다.
◆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는 남녀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그래서 자녀를 낳지 않은 부부가 더 행복하다. 자녀가 행복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 시기는 인생의 자유와 즐거움을 모두 빼앗긴 뒤다. 그럼에도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큰 기쁨이다. 손주 앞에서 사족을 쓰지 못하는 노인들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우리는 자식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지만 자식 때문에 살아갈 힘과 삶의 보람을 얻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행복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행복과 불행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결혼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불행을 막아주는 것은 틀림없다. 미국인 1만6000여명의 삶을 10년간 분석한 2004년 연구에서는 행복한 결혼의 가치를 연간 10만달러로 환산한 바 있다. 연봉 10만달러가 안 되는 사람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과장된 액수처럼 느껴지지만, 두 사람의 인생 전체를 생각하면 많은 액수가 아닐 수도 있다.
결혼 생활은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불행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네 가지만 꼽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 번이라도 폭력성을 드러낸 사람은 멀리해라. 설령 무릎 꿇고 용서를 빌더라도 당장 관계를 끝내는 것이 좋다. 평생 공포의 지옥에 갇혀 지낼 수 있다. 둘째, 종교나 정치적 견해가 극명하게 다르면 결혼을 재고해라. 배우자가 특정 신념을 강요하기 시작하면 평생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 셋째, 상대방이 빚을 감추고 있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고 있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 평생 궁핍을 겪을 수도 있다. 넷째, 도박, 알코올뿐 아니라 게임이나 스포츠도 중독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관계를 끝내라. 중독은 취향이 아니라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이다.
사랑에 눈이 멀면 다른 사람의 조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 자체가 삶의 만족도에 기여하는 수준은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행복은 사랑과 무관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결혼은 사랑이기 이전에 삶 그 자체다.
글=이용범 소설가ㅣ아시아경제 2018.10.10
※ 소설가 이용범이 새 연재를 시작한다. 인간 심리의 심연에서 행복으로 가는 길을 탐색하는 인문학 기행. 이용범은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유형의 아침'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창작집 《그 겨울의 일지》, 《꿈 없는 날들의 긴 잠》을 냈고 장편소설 《열한 번째 사과나무》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동서양 인문학에 심취해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무소유의 행복》, 《1만년 동안의 화두》 등을 썼다. 인간에 대한 절망과 희망을 천착한 그의 《인간딜레마》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 2022.03.3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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