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의 산촌일기] 성내고 미워하는 감정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 진주사람 < 삶의 향기 < 기사본문 - 단디뉴스 (dandinews.com)
[김석봉의 산촌일기] 성내고 미워하는 감정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ㅣ나는 그 집을 왜 싫어했던가
“아이고, 사장님. 우리 상아 봉아가 댁에 큰일을 저질렀네요.” 이른 아침 밭을 둘러보고 오다 만난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안절부절이었다. 마을 뒤 언덕바지에 커다란 목조저택을 지어 귀촌한 이웃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아침마다 내가 밭을 둘러보러 가는 시각에 운동 삼아 마을주변 길을 걷는데 항상 개 두 마리를 몰고 다녔다. 상아 봉아로 불리는 그 개는 덩치는 작았지만 갈색 털에 눈은 부리부리했고 체형이 다부지게 생겨 꽤 사나워보였다.
“아니, 왜요?” “글쎄 내가 줄을 놓쳐서 이놈들이 댁에 마당에 들어가 닭을 물었어요.” “그래요? 어쩌다가......” 나는 놀라 황급히 집으로 향했다. 함께 따라 나온 꽃분이는 철없이 그 두 마리의 개와 장난질을 하고 있었다. 개의 눈빛을 보자 어쩌면 꽃분이를 덥석 물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열흘쯤 전이었다. 꼭 이 시각이었다. 내가 바깥마당에서 닭똥을 치우는데 골목 바깥 옆집 앞에서 캑캑거리는 개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건성으로 들었는데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무슨 일이 있나싶어 골목을 나오니 아랫담 가겟집 강아지가 그 아주머니의 개에 물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황급히 뛰어가 고함을 지르고 발길질을 하자 물고 있던 강아지를 놓았고, 물렸던 강아지는 깨갱깨갱 비명을 지르며 골목으로 내달렸다. 그 아주머니의 개는 목덜미에 벌겋게 피가 묻어있었다. 달아난 개는 필경 많이 다쳤을 터였다.
“아이고. 내가 아무리 때려도 이놈들을 당할 수가 없어요.” 아주머니는 놀란 가슴에 금세라도 풀썩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러게, 이기지도 못하면서 개를 두 마리씩이나 끌고 다니시니 이런 일이 일어나지요. 저 아래 가겟집 강아지 같은데 한번 찾아가보세요.” 나의 말엔 핀잔이 섞여있었다. 지난해엔 이웃집 강아지를 물었고, 말리는 강아지 주인의 손을 물어 보상을 하느니 마느니 하며 한바탕 사단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나이 일흔쯤은 되었을 것 같고, 몸은 야위어 힘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여인네가 힘겹게 두 마리의 개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러다 무슨 일이 생기지 싶었다.
집으로 들어서자 마당엔 닭털이 수북했다. 닭을 물고 다녔는지 곳곳이 닭털이었다. 닭은 평상 아래 구석에 머리를 숨기고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닭을 잡아 살펴보는데 날개죽지에서 몸통으로 구멍이 뚫렸고 피가 흘렀다. 뒷마당 다른 닭들과 어울리지 못해 앞마당으로 옮겨와 사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닭이었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쪼르르 달려와 모이 달라고 조르는 닭이었다. 그렇게 정든 닭이었다.
“내가 손으로 때려도 안 놓더라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아내는 아직도 숨이 차있었다. “그러다 손 물리면 어쩌려고. 작대기를 들었어야지.” “그래도 급한데 그럴 정신이 어딨소.” “이 닭은 죽겠네......” 나는 혀를 차며 닭을 내려놓았다. 상처에 머큐로크롬을 한껏 뒤집어쓴 채 닭은 뒤뚱거리며 꽃밭 국화 덤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 꼴을 보노라니 속이 상했다. 그리고 난감했다.
하필이면 오늘 그 아주머니네 날일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며칠 전에 하루 날품을 팔았는데 일이 다 끝나지 않아 마무리하기로 한 날이 오늘이었다. 이런 기분으로 그 집 일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집 마당에 뒹굴대는 그 두 마리의 개를 보면 왈칵 부아가 치밀 것 같았다. “오늘 댁에 일하러 못 갈 것 같습니다. 마음이 상해서 영 일할 기분이 아닙니다. 지난번 개 물었을 때 그랬잖아요. 잘못하면 큰일 난다고......” 전화를 했다. 처음엔 목소리를 가라앉혔지만 말이 길어질수록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전화기 너머로 건너오는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오직 ‘미안하다. 잘못했다.’였다.
“보소. 아까 전화 너무 쎄게 하드마. 그래도 귀촌해서 사는 사람인데 먼저 들어온 우리가 좀 살펴드려야지......”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국화 덤불 속 닭을 살피는데 등 뒤에 아내가 다가와 있었다. “우리 꽃분이도 내놓고 키우면서. 다시 전화하소. 좀 부드럽게......” 아내가 다그쳤다. 그렇잖아도 화를 낸 것에 마음이 쓰였었다. 고의로 일어난 일도 아니고, 우리뿐 아니라 그 아주머니도 속이 상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생면부지의 낯선 이도 아니고, 거의 매일 아침이면 마주치는 사람이었다. 가뭄이 들면 가뭄을, 비가 내리면 비를 걱정해주는 이웃이었다. 만날 때마다 손을 내밀어 그 두 마리의 개를 쓰다듬어주기도 하는 사이였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그 집에 대한 선입견이 남아있지 않았던들 그다지 거칠게 대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집을 많이 싫어했었다. 대여섯 해쯤 전이었다. 산 어귀 경사가 심한 무논이 있었다. 그 논이 도시사람께 팔렸다는 말이 나자마자 공사가 시작되었다. 경사가 심해 엄청난 높이의 축대를 쌓았는데 마치 커다란 성벽 같았다. 그 위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집은 크고 웅장했다. 다락방이라고 넣었지만 이층집보다 더 높아보였다.
집만 덩그렇게 들어섰을 뿐 사람은 얼씬거리지 않았다. 집주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그저 도시의 돈 많은 사장일 거라는 추측만 떠돌았다. 주말이면 간혹 고급 자동차가 들락거렸고, 높다란 쇠 울타리 주변은 정적만 감돌았다. 천박한 자본이 들어와 산자락을 파 허물었다는 생각에, 마을 주변 경관을 망쳐놓았다는 생각에, 또 그렇고 그런 별장 하나가 들어섰다는 생각에 나는 그 집을 미워했었다. 그 집에 누가 들어와서 살든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는 다짐을 했었다. 비가 많이 내려 축대라도 와르르 무너져버렸음 좋겠다는 생각도 했을 거였다.
이후 낯선 아주머니가 두 마리의 개를 앞세우고 마을길 산책을 다녔고, 밭을 오가면서 자주 마주쳤고, 마주칠 때마다 간단히 목례를 나누게 되었고, 어느 순간 말을 트게 되었고, 조금씩 천천히 이웃으로써의 정을 쌓게 되었고, 그 집이 곤란한 일을 겪었을 때 조그만 도움도 드렸고, 성벽 위의 저택을 미워하는 감정도 차츰 가라앉고 있었다.
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성내고 미워하는 감정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거친 말과 윽박지르는 이 행동은 어디에서 잠들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일까. 이 고약한 성질과 버르장머리는 왜 걸핏하면 목구멍과 눈동자를 뚫고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마침내 찾아드는 이 괴로움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성벽 위의 저택을 왜 그렇게도 싫어했을까. 알량한 환경운동가의 정의감과 상실감이 뒤죽박죽이 되어 나타난 비열한 심술은 아니었을까. 세상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아등바등 살아온 가난한 가장의 위선은 아니었을까. 제도와 질서와 이 시대의 문명을 거부하고, 반목과 질시로 점철된 꼬질꼬질한 내 삶의 습관이 빚어낸 졸렬한 행패는 아니었을까.
“아까 맘이 상해 너무 심하게 말해서 미안합니다. 닭은 괜찮을 것 같아요. 남은 일은 지금 가서 마무리하지요.” 길가에 떨어진 동전 하나 줍다 들킨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닭은 슬그머니 국화 덤불을 빠져나와 마당 귀퉁이서 모이를 찾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 대할 일을 걱정하며 연장을 챙겨 집을 나서는데 한 줄기 빗방울이 후두둑 내 무안한 가슴에 쏟아지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늘이 돕는다. 고마운 날씨다.
글=김석봉ㅣ단디뉴스 2018.10.15
/ 2022.03.2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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