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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의 인문학] ⑩ 노동과 일 - 일을 대하는 코로나 사피엔스의 자세 (2022.03.23)

푸레택 2022. 3. 23. 20:58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⑩ 노동과 일 - 일을 대하는 코로나 사피엔스의 자세 (daum.net)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⑩ 노동과 일 - 일을 대하는 코로나 사피엔스의 자세

■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 - 새로운 일상의 탄생맹목적인 속도 숭배에서 잠시 내려온 지금, 우리는 노동의 근본을 되묻게 된다 빵과 장미를 함께 향유할 터전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 ‘그녀(Her)’

news.v.daum.net

일러스트 = 이정호 작가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 ⑩ 노동과 일 - 일을 대하는 코로나 사피엔스의 자세

■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 - 새로운 일상의 탄생


맹목적인 속도 숭배에서 잠시 내려온 지금,
우리는 노동의 근본을 되묻게 된다
빵과 장미를 함께 향유할 터전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 ‘그녀(Her)’는 인간이 인공지능(AI)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통해 미래에 대한 애틋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은 ‘아름다운 손편지 닷컴’의 대필 작가로, 고객들의 의뢰를 받아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해주는 글을 써주며 살아간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아내의 이혼 요구를 받으면서 별거 상태에 있고, 퇴근 후에 차 한잔 나눌 친구 한 명이 없다. 그렇듯 황량한 마음이 ‘사만다’라는 AI 운영 체제에 빨려드는 과정은 사뭇 리얼하다. 일상의 공허함에 시달리는 주인공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 직장인들이 적지 않으리라.

지금 우리의 일과 삶에 코로나는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직장에서 재택근무가 전격적으로 도입됐고, 재난이 끝나도 부분적으로 병행되리라 전망된다. 원격 업무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출퇴근에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조직의 위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리듬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다.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들을 걷어내고 일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 직무를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이도 많다. 평소에는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서면서 다른 몸이 돼 일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같은 공간에 계속 있다 보니 공과 사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돌봄이나 가사 노동을 겸하는 경우 업무에 몰입하기가 더욱 어렵다. 카페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주변이 소란하고 번잡해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쉽다. 그러한 고충에 부응해 스터디 카페가 곳곳에 생겨나고, 내부 구조를 개조해서 업무 공간을 제공하는 게스트하우스도 나왔다. 밀집된 다중이용 시설의 감염 위험에서 벗어난 소규모의 대안적 공유공간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할 듯하다.

공간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고정된 사무실에 얽매이지 않고 집이나 그 외의 공간을 일터로 선택하는 시스템은 직장인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자신에게 최적화된 근무 형태를 취하면서 즐겁게 일한다면 성과도 높아진다. 관건은 각자가 일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이다. 일이 단지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면서 리얼리티를 창조하는 기회가 될 수 있는가. 많은 직장인에게 아득한 소망으로 느껴진다. 조직의 목표와 일의 초점이 이윤 극대화에 맞춰지면서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회사가 자신을 도구로 여기기 때문이다.

‘워라밸’이 강조되는 시대다. 과로로 심신이 피폐해지는 타임 푸어의 ‘회사 인간’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데 시간적 차원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기하는 것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더욱 긴요한 핵심은 일과 삶이 ‘순환’하면서 존재의 풍요로움을 빚어내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 매진하느라 일그러뜨린 생명의 힘을 복원하면서 인간의 성장을 꾀해야 한다. 생활 자체가 지속 가능해야 자율성과 창조성이 실현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원격근무도 내실을 기할 수 있다.

그런데 원격근무가 가능한 것은 전문직, 관리직, 사무기술직 등 일부에 불과하다. 의료진, 돌봄 노동자, 배달업, 소방관 등 이른바 필수노동자들은 변함없이 사람들과 접촉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하고 사회의 기본적인 유지를 위해 감염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것이다. 특히 불편한 방호복을 입고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 병원 근로자들의 구슬땀이 돋보인다. 전염이 빠르게 확산되던 초기 상황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모습에 많은 국민이 갈채를 보냈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들의 헌신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게 됐고, 기력은 점점 고갈돼 간다. 이제 시스템을 합리화하고 노고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코로나 전사’라는 미명하에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다른 한편,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노동자들이 잇달아 과로사하고 있다. 노동 조건과 시스템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운반의 부담을 덜기 위해 박스에 구멍을 뚫어달라는 요구조차 수용되지 않는다. 음식 배달에 종사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처지도 열악하다. 지형과 도로를 무시하고 직선거리로 배달 시간을 통지하면서 요금을 산정하는 알고리즘의 명령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어느 배달원이 동료가 교통사고로 쓰러졌는데도 자신의 배달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냥 지나쳤다는데,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소비자의 편리와 안전을 위해서 노동자들이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마땅한가.

비노동시장에서의 돌봄 노동도 가혹하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자녀와 온종일 집에서 지내야 하는 부모들의 스트레스는 점점 높아진다. 치매 등을 앓는 환자나 장애아를 보살피는 이들의 고통도 한계 수준을 넘어서면서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특히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종일 실내에 고립돼 있다 보니 퇴행 증상을 보이고 생활 리듬도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는 어느 어머니에 따르면, 자폐증이 있는 18세 아들이 밤중에 일어나 집 안을 돌아다니는 일이 잦아 식구들을 지치게 한다고 한다. 가족이 책임져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번 재난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충격은 일자리의 갑작스러운 위축이다. 항공, 여행, 숙박 등 사람들의 이동이 막히면서 존폐의 기로에 놓인 업종의 종사자들 말이다. 이미 어떤 항공사는 수백 명을 해고했다. 일이 정체성의 핵심이 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실직은 경제적 곤궁은 물론 존재가 부정당하는 절망감으로 이어진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노동 능력을 상실하면서 밥벌레가 돼 버리고 가족들에게서마저 외면당하는 주인공처럼, 많은 이가 잉여 인간의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과감한 정책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적인 타협을 다각적으로 꾀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너무 많은 일에 시달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이 없어서 고통받는 현실, 누군가는 쓸데없거나 나쁜 일을 하면서 큰돈을 버는가 하면 누군가는 꼭 필요하고 좋은 일을 하면서도 가난에 시달리는 세상의 미래는 암울하다. 물질문명의 지나친 확장에서 비롯된 코로나 재난은 성장의 개념을 수정하라고 촉구한다. 팬데믹이 예고하는 기후위기가 긴박하게 다가오는 지금, 지속가능한 세상을 도모하면서 부가 가치를 생산하는 일들을 대거 확충해야 한다. 토건 위주의 경제에서 생태, 문화, 학습, 돌봄 쪽으로 중심을 이동해야 한다.

그것은 급속하게 진행되는 고령화시대의 요청이기도 하다. 이제 누구나 늦은 나이까지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시대다. 중년들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어느 경우든 십 년 이상 지속 가능해야 하고, 몸과 마음이 소진되지 않아야 한다. 물질적 외형을 키우는 제로섬 경쟁이 아니라, 생명을 보듬고 마음을 가꾸는 일들이 적합하다. 이 기획 시리즈의 프롤로그로 실린 이기호 작가의 소설 ‘그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얻어낸 것’에서 주인공은 실직한 후에 아픈 몸으로 집에서 아내의 구박을 받다가 베란다의 말라죽은 화분들에서 문득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거기에 벼를 심기로 한다. ‘쌀이 나오고, 밥이 나오는 일’을 시작하면서 주인공은 새로운 일상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단순히 밥벌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펼칠 수 있는 활동이 많아지면 좋겠다. 이른바 ‘소명’이 담겨 있는 일 말이다. 어떻게 찾을까? 획일화된 교육과 기계적인 업무에 길든 마음으로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데이비드 브룩스가 ‘두 번째 산’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일을 탐색할 때 떠올려 보라고 예시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은 소중한 길잡이가 될 듯하다. ‘나는 무엇에 관해 이야기할 때 기쁜가?’ ‘언제 내가 가장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가?’ ‘나는 어떤 고통을 기꺼이 견딜 수 있을까?’

‘직업이란 우리의 진정한 기쁨과 세상의 깊은 허기가 만나는 장소다.’ 철학자 게오르크 뷔히너의 말이다. 맹목적인 속도 숭배에서 잠시 내려오게 된 지금, 우리는 경제와 노동의 근본을 되묻게 된다. 일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삶의 품격이 높아질 수 있을까. 빵과 장미를 함께 향유하는 터전은 어디에 있는가.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ㅣ문화일보 2020.12.07

김찬호/대학에서 문화인류학·사회학·교육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생애의 발견’ ‘돈의 인문학’ ‘유머니즘 : 웃음과 공감의 마음 사회학’ 등이 있다. 2014년 ‘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문화일보·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공동기획]

/ 2022.03.2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