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3) / 죽기 직전에 쓴 시조 한 수 - 김덕령의 '춘산곡'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3) 죽기 직전에 쓴 시조 한 수 - 김덕령의 '춘산곡'
춘산곡 / 김덕령
춘산(春山)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붓난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의 내 업슨 불이 나니 끌 물 업서 하노라
<해설>
고등학생들이 시조를 잘 모른다고 한다. 수학능력시험이나 모의고사에 시조가 잘 안 나오고 고전 시간에도 겨우 몇 편만 다루고 마니 시조란 게 이런 것이구나, 아는 정도에서 공부가 끝난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교과서 편찬에 관여한다면 꼭 넣고 싶은 시조가 있으니 김덕령의 「춘산곡」이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장군 김덕령(1567∼1596)은 모함을 받아 나이 서른에 죽었다. 너무나 억울해 옥졸에게 붓과 종이와 벼루와 먹을 부탁해 유언을 대신한 시조 한 수를 썼다. 현대어로 바꿔본다.
봄에 산불이 나니 못 다 핀 꽃들 다 불붙는다
저 산의 저 불은 끌 물이 있지만
이 몸에는 냄새 없이(연기 없이) 불이 나는데 끌 물이 없구나
김덕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의 휘하에서 전공을 세웠다. 선조로부터 형조좌랑의 직함과 함께 충용장(忠勇將)이란 군호를 받았다. 나중에는 곽재우와 함께 권율의 휘하에서 영남 서부지역 방어 전투에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선조로부터 다시 초승장군(超乘將軍)의 군호를 받았다. 그런데 1596년 7월 홍산에서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키자 도원수 권율의 명을 받아 진주에서 운봉까지 진군했다가 이미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돌아가려 했으나 허락을 받지 못해 진주로 돌아왔다.
잘못 전해진 소식이었다. 이몽학과 내통해 진군을 포기했다면서 충청도체찰사 종사관 신경행과 부하 한현의 무고로 체포되었다. 김덕령은 20일 동안 여섯 차례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옥사하였다. 65년 세월이 흐르고 나서 조정에서는 그의 억울함을 알고는 ‘충장’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기리기 위해 그의 시호를 붙여 1946년부터 광주의 한 거리를 충장로라 부르게 되었다. 광주 동구 충효동에 있는 충장사는 김덕령 장군을 기리고자 지은 사당이다.
이 시조를 썼을 때 김덕령의 심정을 생각해 본다. 얼마나 억울하고 참담했으랴. 봄에 산불이 나면 물동이를 들고 달려가 끄면 되지만 지금 이 몸에 불이 붙어 타고 있는데 물을 끼얹어 꺼줄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이순신도 임금을 모욕했다고 잡혀가서 초주검이 된 적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을 두 번이나 했다. 해군참모총장에게 훈련병 복장을 던져주며 전쟁터로 나가라고 한 것이다. 군인에게 이런 모욕이 어디 있는가. 김덕령 장군은 심지어 여섯 차례 혹독한 고문을 받다 옥사하였다. 충장로를 걸을 때면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 장군과 광주민주화운동 때 죽은 시민들이 떠오른다. 교과서 편찬을 하는 분들에게 이 시조를 꼭 넣어주실 것을 당부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뉴스페이퍼 2019.04.27
/ 2022.03.2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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