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12년 반감기라는 '삼중수소' 계속 방류하면 안 쌓일까 (daum.net)
[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12년 반감기라는 '삼중수소' 계속 방류하면 안 쌓일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대한민국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개인 화기인 소총은 다뤘을 것입니다. 소총에는 조준점을 조절하는 가늠자와 가늠쇠라는 장치가 있죠. 가늠자와 가늠쇠를 정렬해 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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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12년 반감기라는 '삼중수소' 계속 방류하면 안 쌓일까
독의 유무를 정하는건 용량이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대한민국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개인 화기인 소총은 다뤘을 것입니다. 소총에는 조준점을 조절하는 가늠자와 가늠쇠라는 장치가 있죠. 가늠자와 가늠쇠를 정렬해 조준해야 정확하게 사격할 수 있습니다. 가늠쇠에는 흔히 ‘야광’이라 부르는 물질이 칠해져 있습니다. 야간에도 가늠쇠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형광 혹은 인광 물질이 칠해진 겁니다. 필자는 운 나쁘게도 칠이 벗겨진 소총을 지급받은 탓에 야간 사격훈련에서 고생한 바 있습니다.
형광이나 인광 물질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습니다. 물질 외부로부터 에너지가 흡수돼야 빛을 낼 수 있죠. 하지만 소총에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어떤 장치도 없습니다. 이렇게 에너지 공급이 어려운 곳에 빛을 요구하는 대상은 소총뿐만이 아닙니다. 나침반이나 시계, 비상구 표지판 등도 있죠. 인류는 여기에 방사능 물질을 사용했습니다. 방사능은 물질 구성 특정 원소의 원자핵이 불안정해 스스로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방사선의 세기를 말합니다. 이 방사선이 강한 에너지를 갖는 거죠.
수소는 원소 중 가장 간단한 원소입니다. 보통 원자핵에 중성자 없이 양성자 한 개가 있습니다. 자연에서 이런 형태의 수소가 99.958%를 차지합니다. 이 원소를 ‘경수소’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수소에는 다른 동위원소도 있습니다. 경수소 원자핵에 한 개의 중성자가 더 있는 수소를 ‘중수소’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두 개의 중성자를 가진 동위원소도 있습니다. 이를 ‘삼중수소’라고 하죠. 삼중수소는 불안정해 핵 안의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며 전자를 덤으로 내놓고 헬륨으로 변합니다. 이것도 핵붕괴의 일종으로 베타붕괴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방사선을 방출하죠. 과거 소총의 가늠쇠에는 이런 삼중수소가 섞인 형광 물질을 발랐습니다.

日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 결정
자연적 정제, 과학적으론 가능하다지만
방사성 핵종, 희석될뿐 사라지지 않아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중심에 삼중수소 물질이 등장했죠. 이 물질을 중심으로 죽음의 바다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방사능 수치가 안전하다고도 말합니다. 대체 진실은 무엇일까요?
과학은 수학의 언어이기도 하니 숫자로 살펴보죠. 일본은 125만t의 오염수를 400배 희석해 5억t으로 묽게 만들어 방류 허용 기준 이하인 ℓ당 1500베크렐로 낮춰 30년에 걸쳐 방류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수치는 안전한 걸까요?
콩은 단백질과 칼륨이 풍부한 건강식품입니다. 그런데 자연에 있는 칼륨의 극미량(0.012%)은 방사성동위원소인 칼륨-40입니다. 게다가 칼륨-40의 방사능은 삼중수소보다 340배 큽니다. 커피도 콩의 한 종류이니 커피 공화국에 사는 우리는 방사성 물질이 있는 음료를 별 생각 없이 마시고 있었던 셈입니다.
커피를 예로 들었을 뿐 방사성 물질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접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삼중수소 음용수의 기준치는 ℓ당 1만베크렐입니다. 게다가 12.3년의 반감기를 갖는 삼중수소는 약 12년마다 방사선량이 절반으로 줍니다. 제가 지급받은 소총 가늠쇠의 방사성 물질은 세월을 보내며 그 빛이 눈에 띄게 흐려졌던 것 같습니다.
자연현상에는 열역학 제2법칙이 있습니다. 고립계에서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것이라서 400배로 희석된 오염수가 태평양에 퍼지면 다시 원래대로 모일 일은 절대 없겠죠. 희석은 농도를 묽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체나 환경에 피해가 가지 않는 조건으로 양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이는 이미 오염을 방제하는 일반적인 기술로 사용되고 있죠. 그러니까 희석된 처리수는 안전하다는 것이 숫자를 앞세운 과학의 문장입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허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오염수 방출에 유독 ‘삼중수소’만 지목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설득하려는 태도가 그것입니다. 게다가 오염수가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유럽 청정 산악지역 '알프스'로 명명
ALPS(다핵종제거설비) 이름만 깨끗
유럽의 청정지역을 대표하는 산악줄기인 알프스(ALPS)에 대해 아실 겁니다. 일본 원전 오염수 처리 장치의 이름도 ALPS(다핵종제거설비)입니다. 의도적인지 모르겠으나 처리수의 청정함을 상징했겠죠. 오염수 정화는 핵종을 걸러내는 것입니다. 가령 물속에 녹아 있는 스트론튬-90, 세슘-137 등 62종의 양전하 이온성 핵종은 전기적 특성을 이용해 걸러낼 수 있습니다. 방류 허용 국제기준을 맞출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삼중수소를 포함해 전기적 극성이 없어 걸러지지 않고 희석되는 방사성 핵종은 12종입니다. 삼중수는 정상적인 물과 구분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독 삼중수소를 논란의 중심으로 옮겼을 겁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수준인 7급 사고입니다. 정전으로 냉각설비가 마비되며 핵연료봉이 녹아내린 겁니다. 사람이 즉사할 수 있는 고선량의 방사성 물질은 지하수와 만납니다. 후쿠시마 원전이 지하수가 풍부한 지역에 있는 것도 자연과 인류에게 불운이었습니다. 12년이라는 반감기는 삼중수소에 해당할 뿐 나머지 11종의 핵종은 반감기가 수백·수천 년에 달하는 것도 있습니다.
일본이 40년 안에 폐로를 마무리한다지만 무려 880t의 핵연료 잔해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인간은 물론 로봇조차 가까이할 수 없을 정도니 폐로는 요원해 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오염수의 핵심은 원전 폐로 전까지 녹아내린 핵연료가 오염수를 계속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죠. 오염수는 과거형도 아니고 현재형도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겁니다.
피폭 허용치를 연간 1밀리시버트 이하라고 정했지만 이 기준치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입니다. 그러니까 정부가 책임을 지는 기준인 겁니다. 과학적으로 통계를 낸 적이 없고 의학적인 안전 수치라고 보기도 힘듭니다. 처리수의 방사성 핵종은 희석된 물질일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광활한 바다를 도니 생태계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바퀴벌레를 먹지 못합니다. 불결하다는 관념 때문이죠. 유기농으로 청결하게 키우면 먹을 수 있을까요? 사람은 경험에 의존하는 본성을 지녔습니다. 아무리 과학으로 관념을 바꿔도 먹지 못하는 것은 역겹다는 경험 때문입니다. 숫자를 앞세워 희석된 처리수가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수산물은 마음 놓고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방사선 피폭에 따른 질병과 파괴된 생태계를 경험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해양 방류 말고는 방법이 없을까요? 처리수를 극초저온으로 고형화해 지하에 묻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니면 수증기로 만들어 원자 상태에서 증발시켜 우주까지 내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수백억~수천억 엔의 비용이 듭니다. 이에 비해 해양에 방류할 경우 34억엔이 들죠.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감추고 서두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염수 처리를 경제성이라는 저울에 올린 것입니다. 무너진 원전과 코로나19로 약해진 지반 위에 올림픽을 올렸습니다. 일본에 올림픽 개최는 원전 사고로부터 탈출했다는 상징이겠죠.
그렇다고 해묵은 대일 감정을 꺼내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일본 정부는 자국에서조차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반일 감정을 정치적 도구로 삼아 일본 내의 지지부터 끌어내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일본 정부는 국내외 여론이 악화하자 오염수 저장탱크 23기를 증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도 겨우 3만t을 추가로 보관하고 방류 시점을 5개월 지연한 것뿐입니다.
이는 모두 그들의 계획일 뿐입니다. 오염수 처리와 방류 계획은 물론 실행도 불확실합니다.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고 적절한 대응을 미리 준비해야겠지요. 언론도 삼중수소만으로 국민을 흔들며 정부의 외교적 부족함을 메우려 들면 안 됩니다. 이번 일의 핵심은 삼중수소에 대한 이해도, 피폭 수치도 아닙니다. 국민이 안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간단히 답해야 합니다. 그 배경에 과학적 증거가 필요할 뿐인 거죠.
오염수는 분명 더 많아질 겁니다. 자연에서는 항상 많은 양이 많은 일을 하게 돼 있습니다. 유명한 연금술사 파라켈수스(1493~1541)의 말이 떠오릅니다.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의 유무를 정하는 것은 오직 용량뿐이다.’
글=김병민 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ㅣ아시아경제 2021.06.02
/ 2202.03.0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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