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로마제국이 멸망한 건 납 중독 뿐아니라 기후변화도 원인이었다 (2022.03.08)

푸레택 2022. 3. 8. 11:50

[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로마제국이 멸망한 건 납 중독 뿐아니라 기후변화도 원인이었다 (daum.net)

 

[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로마제국이 멸망한 건 납 중독 뿐아니라 기후변화도 원인이었다

당신은 세상 이야기를 누구에게서 듣고 있나요. 우연히 인터넷에서 로마의 멸망에 관한 짧은 동영상을 접했습니다. 아마 우연이라기보다 알고리즘에 의한 노출이었을 겁니다. 최근 세계사에 관

news.v.daum.net

[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로마제국이 멸망한 건 납 중독 뿐아니라 기후변화도 원인이었다

당신은 세상 이야기를 누구에게서 듣고 있나요.

우연히 인터넷에서 로마의 멸망에 관한 짧은 동영상을 접했습니다. 아마 우연이라기보다 알고리즘에 의한 노출이었을 겁니다. 최근 세계사에 관심이 생겨 인터넷을 검색한 게 발단이겠죠. 편리할 것 같은 플랫폼의 이런 기능이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관심이라는 자유의지조차 기록으로 남는다는 두려움도 들고, 과연 보여주는 정보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튜버는 납중독을 로마 멸망의 원인과 결과로 규정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흡입력 있게 풀어가더군요. 강연을 한다면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화장실과 상하 수도관 등 수로의 도시공학적 시스템이 로마에 구축돼 환경적 통제가 유의미하게 작동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시설을 구성한 물질이 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20세기 후반에 납의 독성이 밝혀지면서 이것이 로마 붕괴의 지배적 원인이라 주장하더군요. 당시 로마 제국 시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도시에 살았으니 로마 시민의 몸속으로 납이 축적되었으리라는 사실은 분명 설득력이 있습니다.

납이 생명체에게 유해한 물질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납중독 때문에 멸망했다는 단순한 일차 방정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 고도 문명을 이룬 거대한 제국의 멸망이라는 복잡한 이야기 속에 어떤 방식으로 끼워 넣느냐를 고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에게 이야기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 이야기를 믿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문명을 이룬 것이기도 하죠. 그런데 믿음은 인간을 심리적으로 약한 존재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 믿음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건을 두고 확증편향도 일어나고 바넘효과(Barnum effect)도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며 일반적인 이야기에도 자신의 이야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가짜 뉴스와 불분명한 근거로 강한 주장이 넘쳐나는 인터넷 플랫폼에서 진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상하수도 등 도시공학적 시스템
시설물 구성 물질 중 납 포함
시민들 몸속에 쌓여서 멸망 주장
현존하는 2백여개 가설 중 하나

먼저 로마의 납에 대한 이야기는 정리하고 넘어가야겠군요. 로마 제국의 멸망과 납 연관성은 1965년 미국 역사학자 길 필런이 로마인의 납 노출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는 수로 시스템은 물론이고 식기와 화폐, 화장품 등 대부분 생활용품에 납이 사용되었음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금속염이 쉽게 용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큰 영향은 석회 성분이 많은 식수 대신 포도주를 즐겼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죠. 포도주의 과발효된 아세트산은 납과 반응해 아세트산 납(Lead Acetate, Pb(CH3COO)2)으로 바뀝니다. 아세트산 납은 연당(sugar of lead)으로 불릴 정도로 단맛이 납니다. 로마인들은 식수 대신 포도주를 마시고 또 이는 감미료 역할도 했던 것이죠. 납중독의 다양한 증상은 결정권자의 반사회적 행동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문명의 흥망성쇠에 충분히 관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멸망의 지배적 원인이라기에는 부족합니다. 여기에 다른 질문을 해 봅니다. 포도주는 지금도 대중적 식음료가 아닙니다. 다른 대체 식품도 많았을 텐데 왜 그들은 비싼 포도주를 선택했을까요.


최근 역사학자들은 당시 로마인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지니고 있었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 포도주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당분과 알코올 같은 각종 기호 식품에 의존합니다. 하지만 당시는 지금과 달랐죠. 페르시아에서 사탕수수가 재배된 게 5세기이고, 담배가 신대륙으로부터 유럽으로 건너온 것은 콜럼버스 대항해 시대가 돼서야 가능했으니 당시로는 포도주가 최선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질문을 할 수 있겠군요. 이렇게 포도주를 소비하게 한 그들의 주요 스트레스는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로마의 몰락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현존하는 가설만 200여개에 달하죠. 대표적 원인은 제국이라는 체제 자체의 한계성이었으며, 여기에 인구 증가와 권력층의 퇴폐적 문화와 폭정이 큰 뼈대에 살을 붙입니다. 타락한 군주이자 반그리스도의 상징과 같은 네로 황제가 폐륜은 물론 로마 시내를 불태우며 시를 읊었다는 폭정은 잘 알려져 있고, 하늘의 신과 동등함을 내세우며 격투기에 이용되는 짐승에게 노예를 먹이로 준 칼리쿨라 황제 같은 비정상적 인물이 너무나 많습니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로마를 호시탐탐 노리며 불안정한 메커니즘의 중심을 지속해서 흔들었던 외부 침략이었던 거죠. 이미 역사에 알려진 이야기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체제의 한계+인구증가+폭정 탓
온화한 기후·신종 전염병도 한몫
포도주 아세트산·납 결합땐 단맛
스트레스 해소 위해 즐기다 납 중독
생물학적 재앙 자연의 힘에 굴복

그런데 로마의 몰락을 다룬 대부분 이야기에는 자연 환경적 배경이 무시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플롯을 배열하니 환경을 놓치기 쉽습니다. 지금 지중해라는 이름만 들어도 온화하고 안정적인 기후가 떠오릅니다. 사실 로마 전성기에는 지금의 지중해 기후보다 훨씬 더 온화한 기후 최적기였지요. 서리에 민감한 작물인 올리브와 포도를 지금보다 더 풍성하게 거둘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포도주는 대중적 음료가 될 수 있었죠. 과거 올리브 경작 시설이 지금의 경작 한계선보다 위쪽에 남아 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시간을 가둔 여러 증거물이 2세기 이후 로마의 자연 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과학이 빙하와 나이테에 갇힌 과거 흔적과 긴 핵산 가닥에서 꺼낸 증거를 보면 당시 기후 변화와 함께 신종 감염병이 수 차례 등장해 모든 사회 균형을 무너뜨렸고, 그로 인해 로마인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긴 도시화와 개발이 오히려 전염병의 확산을 부추긴 셈이죠.


고대인들은 신을 만들고 상징으로 세상의 근원과 거동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신화는 허구를 넘어 인류가 이런 상징화된 인물이나 사건에서 교훈을 얻고 삶에 적용하는 지혜를 길러줍니다. 고대인들은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를 숭배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이 여신의 이름에서 행운(fortune)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처럼 제국의 번성기인 2세기 중반까지 로마는 여신의 모든 축복을 숭배하기도 했지만, 인간의 삶을 뒤바꿔 버릴 수도 있는 운명의 여신이기에 두려워했던 것이죠. 두려움의 대상은 난폭한 군정도 전쟁도 아닌 바로 거대한 자연이었습니다.

로마의 멸망은 사회 구조적 문제와 물리적 기후 변화와 생물학적 재앙인 자연의 힘이 버무려진 결과였죠. 지금의 기후 변화는 현세 인류가 대기에 오염물질을 뿜어서 벌어진 일이고, 당시는 반대인 소빙하기였지만, 요동치는 온도계로 인한 자연의 실험을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던 것은 지금의 우리와 유사합니다. 로마인들은 우리보다 더한 고통을 받았을 터이고, 그때까지의 번영과 질서를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수백 개의 원인이 차례로 착륙하며 약해질 대로 약해진 문명사회는 맥없이 무너져 버립니다. 과학으로 로마의 멸망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에 이제 기후와 질병이라는 환경적 배경을 끼워 넣을 수 있게 됐습니다. 로마의 멸망을 인간의 역사로만 해석하려니 도통 시원하게 관통하는 줄기가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이제 로마의 멸망이 오직 납중독이었다는 주장이 얼마나 형편없는 편견인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찾은 요소를 어떻게 이야기 속에 끼워 넣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로마 멸망은 자연이 인간 사회에 물리적이고 생태학적인 실험을 한 이야기입니다. 유례없는 문명을 이뤘다고 하는 인류 사회도 자연은 가장 약한 부분을 기막히게 찾아내 균열을 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지금의 상황과 너무도 유사한 것을 저만 생각한 것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지금의 기후 변화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겪으며 얻은 교훈이 있을까요. 이들을 뉴스에서나 다루는 사건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폭염과 홍수로 안타까워하고, 매일같이 확진자 수나 셀 일이 아니란 겁니다. 우리는 물리적이고 생태학적 변화를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상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훈이 생기고 미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으니까요. 기후변화범정부간 협의체(IPCC)가 최근 6차 평가보고서에서 기후 위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 또한 심각하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음에도 큰 이슈가 되지 못하고 조용히 묻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잔혹한 동화 이야기를 믿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아니 믿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이런 잔혹 동화를 제대로 들어 볼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 늑대 이야기를 들려준 할머니를 신뢰하는 것처럼 이야기와 교훈의 전달에는 메시지는 물론 메신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낍니다. 당신은 세상 이야기를 누구에게서 듣고 있나요.

김병민 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ㅣ아시아경제 2021.09.02

/ 2022.03.08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