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백신 불평등과 오미크론, 그리고 과학의 희망 (daum.net)
[김우재의 보통과학자]백신 불평등과 오미크론, 그리고 과학의 희망
“인간의 이기심이 글로벌 협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미크론이 발생한 아프리카 대륙 전체 접종완료율은 7%에 불과합니다. 선진국들이 약속한 백신지원을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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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백신 불평등과 오미크론, 그리고 과학의 희망
mRNA 백신의 길고 지루한 역사(6)
“인간의 이기심이 글로벌 협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미크론이 발생한 아프리카 대륙 전체 접종완료율은 7%에 불과합니다. 선진국들이 약속한 백신지원을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이 부스터샷을 독점하는 사이 후진국에선 변이가 등장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겁니다. 팬데믹은 ‘모든 사람이 안전할 때까지 아무도 안전할 수 없다(no one is safe until everyone is safe)’고 합니다.” - 오병상 칼럼니스트
“과학의 네트워크는 잘 작동하고 있으며, 과학자들이 다시 함께 뛰기 시작했다.” - 태원준 국민일보 논설위원
지속된 백신불평등의 경고와 오미크론 변이의 발생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의 등장으로, 거대제약사들이 투자를 주저하던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연구는 활로를 찾게 된다. 이제 모더나와 화이자라는 두 회사의 mRNA백신은 인류를 팬데믹에서 구할 희망으로 여겨지며, 더불어 두 회사의 주가는 끝도 없이 치솟고 있다. 하지만 두 회사의 백신은 대부분 북미와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 우선적으로 공급되고 있으며, 최근엔 델타변이와 거리두기 완화의 영향으로 늘어난 확진자 탓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부스터샷을 결정해 백신공급량은 더욱 모자랄 지경이다. 전세계가 백신을 공격적으로 접종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의 인구 100명당 누적 접종률 지도를 보면, 백신접종을 시작도 하지 않은 북한과 에리트레아를 제외하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접종률은 지난 1년간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백신불평등 혹은 백신양극화에 대한 우려는 올해 들어 활발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미국이 부스터샷 접종을 결정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불평등을 거론하며 크게 반발했다. WHO의 브루스 에일워드 수석대표는 지난 8월 20일 코로나19 팬데믹이 불가피하게 2022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는데, 그 이유는 “부유한 나라에 백신 공급이 쏠리고 가난한 나라로 백신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일워드에 따르면 부유한 국가들은 지금도 부스터샷 접종을 위해 제약회사 앞에 줄을 서고 있다. 피플스 백신은 바로 이런 부유국의 로비 때문에, 이들이 가난한 나라에 기부하기로 한 백신의 7분의 1만이 전달되었을 뿐이고, 아프리카의 경우 전체 인구의 5%만이 백신을 접종한 상태라고 말한다. WHO는 백신불평등 해소를 위해 약 27조원의 기금 조성에 나섰다. ‘액트(ACT)-엑셀러레이터’라고 명명된 이 긴급 프로젝트는 향후 1년 동안 세계 모든 국가의 백신접종률을 70%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WHO는 백신 불평등이 지속될 경우, 경제적 손실이 62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역사적으로 국가 간의 경쟁은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경쟁과 자국 이기주의를 내세울 수록, 팬데믹을 벗어날 수 없다는 딜레마를 보여준다. 오미크론의 변이의 등장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오미크론은 WHO가 ‘우려변이'으로 지정한 5번째 코로나 변종이다. 지난주 전세계가 '오미크론' 변이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유는, 오미크론이 인체침투용 스파이크 단백질 부위에 32개의 돌연변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 코로나19바이러스의 우점종인 델타변이는 스파이크 돌연변이가 16개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오미크론 변이의 전염력이 델타변이보다 훨씬 빠를 것으로 예측한다.
오미크론 변이는 11월 9일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병원에서 보고됐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이 바이러스가 면역기능이 결핍된 에이즈 환자의 몸 속에서 폭발적인 진화과정을 거쳐 탄생한 변이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견되는 변이의 90%를 차지한다고 알려지며, 이 변이가 델타 변이를 누르고 우점종이 된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홍콩은 물론 캐나다에서고 오미크론 변이가 확인된 것으로 볼 때, 이 변이바이러스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퍼지는 상황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유럽과의 항공편을 통제하지 않고 있는 한국의 경우도 오미크론 변이가 퍼지는 상황은 막을 수 없다. 이재갑 교수는 한국 정부가 델타 변이를 막는다고 했지만, 델타 변이가 우점종이 되는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음을 주목하며 “한국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확인되는 시점엔 이미 국내에서 상당히 퍼져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과학적인 권력 그리고 오미크론의 필연성

아직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팬데믹은 우리에게 모든 답을 얻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교훈을 주었다. 현재 상당수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백신불평등의 지속이 오미크론 변이를 촉발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할만한 증거는 충분하다. 며칠전 CNN 보도에서, 웰컴트러스트의 이사 제레미 파라는 ”새로운 변종은 왜 세계가 백신 및 기타 공중 보건 도구에 대한 보다 공평한 접근을 보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고든 브라운 전 총리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대량 백신 접종이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바이러스는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억제되지 않고 퍼질 뿐만 아니라,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있다"며 “가장 빈곤한 국가에서 새로운 변이가 등장하고, 이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 완전히 예방 접종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오미크론 변이가 현재 가장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감염병에 대한 수치스러운 기억을 지닌 나라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오래된 인종차별을 걷어내고 민주화를 이룬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선출된 타보 음베키는 과학계 및 의료전문가의 일치된 견해를 무시하고 에이즈의 원인이 HIV가 아니라는 미국 과학자 피터 듀스버그의 견해를 받아들였고, 에이즈 퇴치에 필요한 예산을 전혀 집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홍당무와 마늘을 먹는 민간치료로 에이즈가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타보 음베키의 과학에 대한 무지와 이를 넘어 반과학적인 태도로 남아공의 HIV 보균자는 400만명을 넘어섰고, 하루에 수백명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2000년 한해에 사망한 15~49세의 남아공 성인 남성의 절반이 에이즈로 사망했을 정도이니, 음베키의 과학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심각한 사태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권력자의 과학에 대한 태도는 끔찍한 국가적 재난이 될 수 있다.
남아공의 인종격리정책을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부르고, 만델라의 정치적 여정은 아파르트헤이트와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만델라는 자신의 집권 기간 중에 이미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에이즈에 대해 “시간이 없다”며 대응을 미뤘고, 이를 음베키에게 모두 맡겨두었다. 만델라가 다시 정치에 전면으로 등장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바로 에이즈 치료, 연구 및 교육을 위한 기금 마련 캠페인이었다. 그의 수인번호 '46664'를 따서 명명된 넬슨 만델라 재단의 이 캠페인에서, 만델라는 자신의 둘째 아들과 며느리가 에이즈로 사망했다고 알렸고, 이를 통해 남아공의 에이즈에 태도는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남아공 정치지도자들이 전세계에 보여준 교훈은 "정치 지도자에게는 인간적인 용서와 화해의 제스처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과학을 옹호하고 실천하는 태도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남아공의 인권변호사 파티마 하산은 NPR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백신 불평등을 ‘백신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불렀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권력을 지닌 정치인의 과학적 태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은 법이나 제도로 강제할 수 없다. 오직 한 사회가 과학에 대해 가진 태도와, 그런 태도가 문화로 스며든 정도에 따라 정치 지도자의 과학적 태도가 건강하기를 기대하고, 또한 그렇지 않을 경우 견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만큼 정치 지도자의 과학적 태도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은 어렵다. 에이즈로 큰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남아공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과학에 대한 태도에서 수준미달임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모고엥 모고엥 남아공 대법원장은 코로나 백신을 '사탄주의'라고 부르며, 자신이 백신반대론자임을 당당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법원장처럼 대중적 영향력이 큰 고위관료가 백신반대론자라는 사실과 이들이 당당하게 반과학적 태도를 언론에 드러낸다는 것으로부터, 남아공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나타나게 된 또 하나의 필연성을 발견하게 된다. 백신 불평등은 분명 오미크론 변이를 만든 거대한 원인임에 틀림 없지만, 백신에 대한 남아공 내부의 반과학적 태도 또한 이번 사태의 한 축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김현성 페이스북 칼럼니스트는 오미크론 변이의 발생과 전파가 우연의 결과가 아님을 알리는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남아공의 사례를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소위 '민족해방' 을 위해 식민 제국과 싸워 온 투사들이 '민족' 또는 '전통' 에 천착한 나머지 합목적적인 합리를 배척하다가 큰 일을 그르치는 모습이 형태는 다르지만 똑같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현대의 정치 지도자들도 배워야 하는 점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이다.
모두가 안전해져야만 한다. 과학만이 희망이다

오미크론 변이는 델타변이처럼 전세계에 퍼져나갈 것이다. 현재로서는 기존 백신이 이 변이를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경우 백신 접종률 자체가 낮기 때문이다. 백신불평등 혹은 백신쏠림 현상으로 아프리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무법지대가 되었고, 그곳에서 발생한 새로운 변이는 전세계를 거꾸로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에게는 국경의 개념이 없으며, 세계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반드시 전세계적인 대응을 필요로 한다. 오미크론 변이뉴스가 타전된 직후, 전세계 주식시장은 얼어붙었다. 당연한 일이다. 백신불평등을 단순히 거대제약회사의 자본주의적 욕망과, 선진국들의 백신민족주의 혹은 자국이기주의를 비판함으로써, 그리고 대안으로 인본주의를 제시함으로써 해결하려는 시도 또한 나이브하다. 왜냐하면 백신불평등은 단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인플레이션까지 심화시키는 경제적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는 글로벌공급망으로 연결되어 있고, 여기서 생기는 병목현상의 심화는 반드시 경제적 혼란으로 나타나게 된다. 최근 코로나19의 급증으로 베트남과 대만의 공장이 폐쇄됐고 이 문제는 미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질서 뿐 아니라 그 모순을 그대로 노출한다. 전세계의 경제질서는 이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중의 갈등을 단순히 대만이나 북한 등의 국제정치 및 군사문제로 인식하는 정치인은 그 이면에 놓인 두 거대국가의 미래를 건 싸움, 즉 첨단과학기술분야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두 국가가 120년 전처럼 세계대전의 형태로 전면전을 치룰 수 없는 이유는, 두 국가가 경제적 공동운명체로 이미 너무나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로나19로 나타나는 모든 경제적 피해는, 전세계가 어떤 방식으로든 공동으로 떠앉아게 될 부채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자본주의의 실체와 모순을 드러냄과 동시에, 인본주의를 강제한다. 아프리카까지 모두 백신을 접종받지 않는다면, 이 사태는 결코 종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시민건강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는 '코로나19 사태 종식의 필수조건은 전세계 공평한 백신 접근 보장'이라는 성명서를 내고 “모두가 안전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단지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우리가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오미크론 변이가 미디어를 강타하자마자, 모더나와 화이자는 몇 개월 안에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mRNA백신 개발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당연한 일이다. 코로나19처럼 급격한 변이를 동반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유일하고도 완벽한 방어전략은, 변이바이러스의 유전체서열만 알면 바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mRNA백신 뿐이다. 현재 백신불평등으로 인해 얼룩져 있지만, mRNA백신 기술 자체는 인류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희망이다. 한 신문의 논설위원은 “오미크론, 공포와 희망”이라는 사설의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썼다. “과학의 네트워크는 잘 작동하고 있으며, 과학자들이 다시 함께 뛰기 시작했다.” 정치가 실천해야할 인본주의가 무너진 현실에서, 희망은 과학 뿐이다. 코로나19에 대항하는 mRNA백신을 개발하며 보통과학자들이 보여준 평범한 인본주의적 이상이 기업과 정치의 영역에서 조금이라도 퍼져나가길 희망해본다. 코로나19는 과학적 인본주의의 시험대이자, 그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될 것이다.
글=김우재 동아사이언스 2021.12.03
※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 2022.03.04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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