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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혁신의 그늘과 인류애의 폭력 사이에서 (2022.03.04)

푸레택 2022. 3. 4. 20:44

[김우재의 보통과학자]혁신의 그늘과 인류애의 폭력 사이에서 (daum.net)

 

[김우재의 보통과학자]혁신의 그늘과 인류애의 폭력 사이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은 지구는 하나이며 지구 위에 사는 인류도 하나라는 사실이다. 세계 각국의 모든 정부가 코로나 방역을 사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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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혁신의 그늘과 인류애의 폭력 사이에서

mRNA 백신의 길고 지루한 역사 (5)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은 지구는 하나이며 지구 위에 사는 인류도 하나라는 사실이다. 세계 각국의 모든 정부가 코로나 방역을 사활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자국 이기주의를 앞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장차 또 다른 팬데믹이 올 때 백신 개발자들의 개발 의욕을 꺾지 않으려면, 지재권 면제 또는 강제실시권 발동보다는 차라리 전 세계 정상들이 모여서 생산 능력을 갖춘 나라마다 로열티를 지급하고 기술이전을 받아서 글로벌 차원의 생산 능력 및 분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타결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진섭 변리사

모더나와 미국 정부의 특허권 갈등, 백신은 누구의 것인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고 있지만, 팬데믹이 심각해질 수록 돈을 버는 기업도 많다. 이들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기업들은 현재 전세계 백신접종의 상당수를 담당하고 있는 화이자, 모더나, 얀센, 바이오엔테크 등의 다국적 거대제약사들이다. 얼마전 미국 정부가 추가접종(부스터샷)을 결정하기 전에도 화이자와 모더나 등의 거대 제약사들은 정치권에 대놓고 추가접종을 요구하는 로비로 백신 판매를 통한 이익추구의 욕망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거대 제약사의 수익률에 대한 집착은 기업의 생존을 위한 일종의 본능이며, 기업의 입장에서는 미덕일 수 있다. 비극은 팬데믹 상황의 백신처럼 전인류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당연히 공공재로 취급되어야 할 의약품이, 각종 기업의 특허권 분쟁과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 정부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효율적으로 팬데믹을 막는데 사용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방글라데시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를 비롯한 10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예술가, 정치 지도자들은 이미 코로나19 백신의 특허를 유예하자는 선언을 했고, 이후 주요20개국(G20) 선언과 WHO의 공식 입장 발표를 통해 선진국의 의료진과 취약층 접종이 끝나면, 백신의 글로벌 분배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가장 많은 백신을 확보하고도 자국민의 보호를 위해 후진국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취하지 않고 있던 미국은 팬데믹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가장 많이 받았고,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지난 5월 5일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제약회사의 특허권을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을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가간 백신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우려한 WHO는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놀랍게도 한국을 포함한 유럽연합, 영국, 스위스 등은 미국의 제안을 반대하고 있다. 미국이 제안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특허강제실시’를 위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파격적인 제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특히 유럽연합의 중심국인 독일은 가장 강력하게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고 나섰다. 독일 정부는 미국의 백신 특허권 면제 제안은 “백신 생산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고, 제약사의 지적재산권은 “혁신의 원천”이라는 제약회사의 논리로 그들의 이익을 옹호했다. 독일에는 코로나19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개발한 바이오엔테크 등의 주요 거대 제약사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엄청난 자금을 지원받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한 모더나는 지난 10월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들의 기술을 사용할 경우, 백신 관련 특허 침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향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동시에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자신들의 지적재산권을 라이센싱해서 다른 회사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얼마전, 모더나는 돌연 태도를 바꿔 NIH 소속 과학자 3명을 제외하고 모더나 사의 과학자들의 단독 개발로 특허를 제출했다. 이 문제로 미국 정부와 모더나는 현재 심각한 갈등에 빠졌다. 

과학자들이 수십년간 매달려 팬데믹을 종식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 mRNA 백신을 개발했지만, 우리는 그 결과물을 마음껏 활용할 수 없다. 수많은 개인과 기업, 정부가 백신의 개발과 사용의 이해 관계에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코로나19 mRNA 백신과 관련된 특허만 691건이 넘고, 기술이 아니라 특허야말로 한국이 mRNA 백신 개발에 진입할 수 있는 진입장벽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싸고 현재 전세계가 겪고 있는 위기는,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반공유재의 비극’이다.  

‘반공유재의 비극’과 신약개발의 딜레마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도로에서 택시들이 멈춰 서 있다. 경제학자 마이클 헬러 교수는 반공유재의 비극을 ‘그리드락(Gridlock)’, 즉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교통정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AP/연합뉴스 제공


‘반공유재의 비극’은 “다수의 주인이 있는 재산인 경우, 이들의 존재 자체가 그 재산의 사용을 방해해 공동체의 복리증진에 활발히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재산이 과소 이용되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98년 경제학자 마이클 헬러의 논문에 처음 등장한 이 표현은, 잘 알려진 생태학자 개릿 하딘의 ‘공유재의 비극’의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비극으로 알려져 있다. 공유재의 비극은 주인이 없는 재산이 금새 고갈되어 황폐해지는 현상을 뜻하는 경제학적 용어다. 공유재의 비극이 자원이 남용되어 벌어지는 참사라면, 반공유재의 비극은 자원이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사용할 수 없어 벌어지는 참극이다. 헬러 교수는 반공유재의 비극을 ‘그리드락’, 즉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교통정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13세기 유럽의 라인강에서 벌어진 참극이다. 당시 각 귀족들은 라인강 근처에 성을 짓고 각자 통행료를 징수했는데, 바로 이런 소유권의 중첩 때문에 결국 수백년간 아무도 라인강을 사용하지 않게 됐고 결국 전 유럽이 피해를 입었다. 라인강의 비극은 현대에도 이어진다. 대도시의 토지 개발이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가 된 이유도, 영화계와 음악계의 과도한 지적재산권 보호로 인해 훌륭한 영화나 음악의 제작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도, 미국의 이동통신이 90% 주파수 대역대의 특허소송으로 느리고 비싸지는 이유도, 애플이나 삼성 같은 거대 IT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을 특허소송에 쏟아붇는 배경에도 ‘반공유재의 비극’이 놓여 있다.

그리드락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생명공학의 신약개발에서 발생한다. 코로나19 mRNA 백신의 특허수에서 알 수 있듯이, 거대제약사와 바이오벤처가 둘러놓은 특허로 인해 신생기업의 신약개발은 엄청난 진입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거대제약사 또한 거대 IT 회사들처럼 경쟁사와 특허소송을 하는데 엄청난 비용을 지출한다. 현재 전세계 거대제약사 앞에 놓인 딜레마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특허덤블로 인한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인류에게 필요한 신약을 개발하지 못한다는 웃을 수 없는 코미디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싸고 각국과 거대제약사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이 갈등의 핵심에는, 우리가 공유재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공유재에 부여했던 각종 소유권들, 예를 들어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과학연구결과에 무차별적으로 부여한 지적재산권이 놓여 있다.

혁신의 그늘과 인류애의 폭력 사이에서

반공유재의 비극을 피하는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유권과 권리를 규정하는 각국 정부와 세계 기구들이 공유재의 소유권과 권리에 대해 합의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건 분명하다. 특히 지금처럼 무차별적으로 허용되는 대기업들의 특허와 지적재산권의 남발은, 반드시 반공유재의 비극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공유재가 자원이 남용되는 비극이라면, 반공유재는 자원이 이용되지 못하는 비극이다. 특히 '반공유재 비극’의 핵심은 세분화된 소유권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 소유권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장이, 개인과 기업에 혁신의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도 잊어선 안된다. 적정한 수준의 소유권은 분명 건강한 경쟁을 촉진하고 시장을 활성화시켜 인류에게 혁신을 선물한다. 인류애를 기술의 혁신을 가로막는 폭력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소유권의 범위를 무한정 확장해서는 안된다. 가장 좋은 사례가 바로 백신이다. 백신에 대한 소유권은 백신 개발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해 인류 전체가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작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모더나나 화이자의 기업 이익을 인류 전체의 이익과 비교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코로나19 백신 특허권 면제 방안은,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백신공급에 오히려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다. 수십년 전 전세계의 생물학자들은 인간유전체 정보를 인류 전체의 공공재로 만들기 위해 사기업 셀레라 지노믹스와 미국 정부 사이에서 길고 지루한 타협과 투쟁을 해왔다. 생명공학 기업들이 유전자 자체에 특허를 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길고 긴 투쟁의 역사 덕분이다. 과학지식의 공공재로서의 가치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두갑 서울대 교수는 코로나 백신 특허를 둘러싼 논쟁을 이렇게 표현한다.

“코로나 백신 특허를 둘러싼 논쟁은 21세기 지식경제 사회에서 혁신과 발명을 통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요구와, 기초과학에 대한 공공자금 투자를 통해 공공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긴장과 갈등을 보여준다. 이번 코로나 백신 개발 과정에서 드러나듯이, 시민의 세금은 공공 연구비라는 형태로 기초 생의학 연구의 발전과 백신 개발 과정 전반을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제약사와 생명공학 회사들 또한 사적 자본을 동원해 백신 개발에 필수적인 여러 혁신과 발명을 이루어 백신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말처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드러난 21세기 지적재산권에 대한 담론은 시민의 삶의 질과 생존에 직결된 중요한 문제다. 인류애와 혁신 사이에서 치열한 고민이 지속되지 않는 한 인류는 코로나19를 종식시킬 무기를 개발하고도 더 길고 참담한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백신의 소유권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코로나19 mRNA 백신을 개발한 수많은 보통과학자들이 자신의 작업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것이다. 

글=김우재 동아사이언스 2021.11.18

※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 2022.03.04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