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읽는 세상이야기]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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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부터 썼다는 로이드 안경은 심훈의 트레이드마크다. 심훈은 늘 젊다. 서른다섯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 정장을 한 사진 속 얼굴은 상록수 같이 푸릇푸릇하다.
불후의 명작 <상록수>는 심훈이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 공모에 당선한 작품이다. 당시 농촌계몽운동은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소설은 안산 샘골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던 최용신과 당진에서 야학 등 농촌운동을 펼쳤던 심훈의 장조카 심재영을 모델로 했다. 이들은 소설 속에서 채영신과 박동혁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실제 최용신과 심재영은 서로 만난 적도 없지만 소설 속에서는 애인 사이로 그려지고 있다.
이 소설에서 전 국민에게 배워야 힘이 있다고 역설하는 심훈의 강한 의지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심훈은 시도 썼다. 스스로 “나는 시인이 되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며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파도치는 정열에 마음이 부대끼면 죄수가 손톱 끝으로 감방의 벽을 긁어 낙서하듯 한 것이 그럭저럭 근 백수나 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을 통해 보여주는 심훈의 독립에 대한 뜨거운 마음은 시가 아니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싶다.
해방의 그날이 오면, 기뻐서 두개골이 깨어지더라도 종로의 인경을 들이받겠다는 다짐이나 자신의 살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 앞장 서 두드리겠다는 데 이르면 그만 참을 수 없는 감정의 격랑에 휘말리게 된다. 안타깝게도 심훈은 해방의 감격을 누리지 못한 채 이렇게 시만 남겼다. 이 시 앞에 서면 친일 행각이 얼마나 부끄럽고 초라한지 알 수 있다.
배준석 시인(문학이후 주간)
/ 2022.03.04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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