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한겨레] 자정까지 2만1천부 극비 인쇄.. 공장감독도 몰랐다 (daum.net)
[1919 한겨레] 자정까지 2만1천부 극비 인쇄.. 공장감독도 몰랐다
천도교 인쇄소 보성사 활약
경성 한복판서 위험한 임무
이종일 사장, 족보로 위장
인쇄 뒤 인쇄판 직접 파기도
<편집자 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 숨 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1919년 2월27일 경성/엄지원 기자】
“비록 종잇장에 불과하지만 이것들이 조선의 운명을 바꿀 것이오. 조선 사람으로서 조선 독립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독립국이라니, 참 좋은 일이오.”
보성사 사장 이종일(61)씨가 제 옆에 탑처럼 쌓인 원고물 뭉치를 흐뭇이 바라보며 말하였다. 27일 심야 본지가 경성부 경운동 소재 천도교 신축교당을 찾아갔을 때 이씨는 온종일 긴장한 채로 작업을 하느라 피로해 보였으나 한편 이제 독립선언을 목전에 두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3월1일 독립선언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으니 그와 동지들은 이제부터 전국 각지로 이 2만1천매의 독립선언서를 보내어 운동을 도모할 참이다.
일경의 감시가 삼엄한 경성 한복판에서 이처럼 ‘불온’한 선언문이 수만부나 찍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기적적인 일이다. 이 위험천만한 기획이 진행된 곳은 수송동 보성사 인쇄소다. 천도교 월보를 편집하여 발행하는 보성사는 이번에 독립선언서를 집필한 최남선(29)씨의 신문관과 더불어 조선반도의 2대 인쇄소라 할 만하다. 한때 수지가 맞지 않으니 폐쇄함이 낫지 않으냐는 천도교 간부의 주장에 교주 의암 손병희(58) 선생이 “한 나라가 많은 돈을 들여 군대를 양성하는 것은 유사시에 대비함이 아닌가. 우리 보성사도 그 역할을 다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하였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민족적 거사에 쓰일 날이 마침내 찾아온 것이다.
선언서를 인쇄하는 데 필요한 활자판의 조판 작업은 집필자인 최씨가 운영 중인 신문관에서 했다고 한다. 천도교 대표자 중 핵심인물인 최린(41)씨는 “보성사 직공의 기술 부족으로 수일 전에 육당(최남선)이 자기가 경영하는 신문관 직공을 시켜서 조판을 짜서 내 집에 갖다 두었다”고 전해왔다. 하나 신문관의 조판은 보성사의 인쇄기에 맞지 않는 부분 등이 있어 이미 완성된 활자판을 놓고 이종일씨는 다시 조판 작업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선언서에 한자로 표기된 국호 ‘조선’이 도치되어 ‘선조’로 조판된 것을 인쇄물을 찍어낸 뒤에야 알게 된다. 다급한 채자(인쇄소에서 활자를 골라 뽑는 일)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3월1일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들이 이종일 선생에게 낭독을 요청했을 때 그는 “한자를 고치고 읽었다”고 회고한다.
인쇄는 오후 6~7시 무렵 시작하여 자정 전까지 이어졌는데 이같은 작업이 어찌나 극비리에 이뤄졌는지 이씨가 신임하는 공장감독 김홍규(44)씨마저도 “인쇄에 착수할 때에는 사정을 몰랐었다”며 “인쇄가 완성되자 이종일씨가 ‘이것은 독립선언서로, 비밀이므로 한장이라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해서 사정을 알게 됐다”고 전하였다. 일본 경찰의 요시찰 대상인 이씨는 대량의 인쇄물을 찍어내는 것이 혹여 주목을 받지 않을까 하여 미리 자기 가문의 족보를 만드는 것처럼 위장하였으며, 인쇄가 끝난 뒤엔 인쇄판을 직접 파기하였다고 하니 철두철미하기 이를 데 없는 운동가임이 분명하다.
참고문헌
김삼웅, <의암 손병희 평전>(채륜·2017)
이종일·최린·장효근 등 신문조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1>(국사편찬위원회)
한겨레 2019.02.28 / 2022.03.0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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