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도 죽지않은 불로초가 마당과 들에 널려있다 (daum.net)
고진하 목사시인의 원주의 집 불편당 마당
[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3) 죽여도 죽지않은 불로초가 마당과 들에 널려있다
ㅣ야생초 지혜3: 쇠비름
불편당은 온통 여름풀로 뒤덮였다. 앞마당과 뒤란, 장독대 뒤편으로 무성히 자란 잡초 일색이다. 누가 와서 보면 호랑이가 새끼 치겠다고 하겠구나. 하지만 우리는 여름풀을 아껴 베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름풀은 우리의 식량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이 낡은 한옥으로 솔가했지만 처음부터 잡초를 식재료로 사용했던 건 아니다. 귀촌에 대한 갈망이 커 고집을 부려 이사할 때만 해도 가족들은 잡초로 무성한 마당을 보며 한숨을 내쉬곤 했다. 당연히 가족들에게 잡초는 뽑아버려야 할 원수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잡초와 전쟁을 치렀다.
그런 어느 날 마당에서 잡초를 뽑던 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잡초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홀대받는 얘들에게도 조물주의 뜻이 있지 않겠는가.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식물의 가갸거겨…를 배우기 위해 두툼한 식물도감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집 주위에 자라는 대부분의 잡초들이 식용 가능할 뿐 아니라 약성도 뛰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잡초로 해놓은 요리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마트에서 파는 채소에 평생 길들여진 터라 낯선 풀로 만든 음식을 먹는 일은 두려웠다.
하지만 설마 죽기야 하겠어…? 가족들은 서로 용기를 불어넣으며 토끼풀로 샐러드를, 개망초로 된장무침을, 괭이밥으로 새콤달콤한 물김치를 담가 먹었다. 그렇게 수십 종류의 풀들로 요리해 먹기를 일 년여, 야생의 풀들이 향도 그윽하고 건강에도 좋다는 걸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가족은 잡초 없는 식탁을 생각할 수 없는 잡초 마니아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야생의 풀들을 식용 혹은 약용으로 활용해 왔다. 내가 사는 마을의 나이 든 농부들도 작물과 함께 자라는 밭의 잡초들이 먹을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배추나 무, 고추, 마늘, 들깨 등의 작물을 키우기 위해 잡초들을 다 뽑아버리거나 제조제를 살포해 죽인다. 며칠 전에도 막 동트는 새벽에 마을길을 한 바퀴 휘돌아오는데, 혼자 사는 충주댁이 고추밭 고랑에 돋아난 쇠비름을 뽑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한 후 나는 충주댁이 뽑아놓은 싱싱하게 자란 쇠비름 한 포기를 손에 들고 물었다.
“아주머니, 이거 요리 잘 해놓으면 먹을 만한데요?”
충주댁이 나를 보고 벙긋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몇 번 삶아 먹어보려 했는데 비려서 못 먹겠데유.”
먹어보려 했다는 대꾸가 고마워 대화를 이어갔다. 쇠비름 전도사인 나는 쇠비름의 영양가와 뛰어난 약성에 대해 한바탕 썰을 풀었다.
문득 며칠 전에 읽은 책의 강렬한 귀띔도 살풋 떠올랐다. 《사피엔스》를 쓴 이스라엘 사상가 유발 하라리는 농업 혁명 얘기를 하면서, 수렵채집 시대에 살던 고대인들이 야생에서 채취해 먹던 식물이 농업 혁명 이후 사람 손을 타고 자란 농산물보다 더 영양가가 풍부하다는 것. 그러니까 밭에 기른 농작물보다 충주댁이 뽑아서 버리는 잡초들이 더 좋은 영양과 약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예컨대 조그만 야생사과 한 알이 온갖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어 키운 큼지막한 사과 열 알보다 영양가가 훨씬 높다는 것, 한참 동안 이런저런 썰을 풀었지만 충주댁에게 내 말은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었을까.
“그렇게 좋아하시믄 가져가 잡수세유.”
“고마워요, 아주머니.”
새벽부터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싱싱한 쇠비름을 두 팔 가득 안고 돌아왔다.
시골 농부들은 쇠비름을 아주 싫어한다. 뿌리까지 뽑아 밭둑에 내던져도 비만 조금 내리면 다시 살아나 뿌리를 내리니까. 쨍쨍한 폭염에도 타죽지 않고, 사납게 제초제를 뿌려대도 잘 죽지 않는다. 바랭이, 달개비와 함께 농부들이 가장 싫어하는 풀. 쇠비름은 유난히 여름철의 뜨거운 햇볕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햇볕이 강할수록 오히려 더 생기가 나며, 잎과 줄기에 수분을 많이 저장하고 있어서 아무리 가물어도 말라죽지 않는다. 쇠비름의 이런 성질을 잘 보여주는 전설도 있다.
옛날, 중국에서는 하늘에 태양이 10개가 나타나서 모든 강과 시냇물이 마르고, 강한 햇볕에 땅이 거북등처럼 갈라졌으며, 곡식과 나무와 풀들이 모두 누렇게 말라 죽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원망하면서 산속에 있는 동굴에 숨어 살았다. 이 때 후예라고 하는 몹시 힘이 센 장수가 나타났다. 그는 백성들을 강한 뙤약볕으로부터 구해 내기 위해 활 쏘는 법을 익혔다. 마침내 활 쏘는 법을 완전히 터득한 그는 태양을 향해 활을 쏘아 하나씩 떨어뜨렸다.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자 마지막 하나 남은 태양은 두려워서 급히 쇠비름의 줄기와 잎 뒤에 내려와 숨었다. 이렇게 해서 태양은 후예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그 후 태양은 쇠비름에게 은혜를 갚기 위하여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도 말라죽지 않게 하였다. 그 덕분에 한여름 강한 햇볕에 다른 식물들이 모두 축 늘어져 있지만 쇠비름은 저 혼자서 싱싱하게 살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쇠비름의 강한 생명력을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잘 풀어내고 있는데, 나는 지상의 어떤 풀보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쇠비름을, ‘식물계의 변강쇠’라 부른다. 식물의 생태를 인간 습속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 좀 민망하지만, 쇠비름이 지닌 강한 힘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권력, 재력 등 인간의 힘을 숭상하지 않지만 식물의 강한 힘은 숭상하고 싶다. 그 강한 힘은 자기 외의 남을 무찌르는 힘이 아니라 남을 살리는 힘이 아니던가.
옛날 우리 조상들도 쇠비름의 이런 생태적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쇠비름을 장명채(長命菜)라 불렀다. 오래 먹으면 장수했고. 늙어도 머리칼이 희어지지 않았으니까. 쇠비름을 오행초(五行草)라고도 부르는데 제 몸에 다섯 가지 색깔, 즉 음양오행설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기운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잎은 푸르고, 줄기는 붉으며, 꽃은 노랗고, 뿌리는 희고, 씨앗은 까맣다. 이 다섯 가지 색깔은 우리 오장에 좋다고 한다. 잎의 푸른색은 간장에 좋고, 줄기의 붉은색은 심장에 좋고, 꽃의 노란색은 위장에 좋으며, 뿌리의 흰색은 폐장에 좋고, 씨앗의 검은색은 신장에 좋다니, 하늘이 인간에게 선사한 참 특별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쇠비름은 추운 극지방을 제외하고 지구에 널리 퍼져 있는 세계 8대 식물이다. 언젠가 그리스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들었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인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도 쇠비름이 많이 자라더라고. 그래서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크레타 섬 사람들은 심장병이나 관상동맥질환으로 죽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그 연유는 쇠비름으로 만든 샐러드를 자주 먹기 때문이라고.
원주 자신의 집 불편당 앞에 선 필자 고진하 목사 시인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쇠비름에는 사람의 몸에 가장 유익한 기름 성분이 많이 들어 있었다. 쇠비름의 잎이나 줄기가 매끄럽고 윤이 반짝반짝 나는 것은 그 속에 들어 있는 기름 성분 때문인데, 이 성분이 곧 오메가-3다. 오메가-3라고 하는 지방산은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콜레스테롤이나 중성 지방질 같은 몸 안에 있는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며, 혈압을 낮추어 주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지상에 자라는 식물 가운데서 쇠비름만큼 오메가-3가 많이 들어 있는 식물이 없다.
쇠비름은 또 다른 중요한 약성을 지니고 있는데, 갖가지 악창(惡瘡)과 종기를 치료하는 데 놀랄 만한 효험이 있는 약초다. 쇠비름을 솥에 넣고 오래 달여 고약처럼 만들어 옴, 습진, 종기 등에 바르면 신기하다고 할 만큼 잘 낫는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 어릴 적에 약국에서도 팔던 ‘이명래 고약’이라고 있었는데, 그 고약의 원료가 바로 쇠비름이었다고.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쇠비름으로 술을 담가 여름철에 벌레에 물렸을 때 바르는데, 매우 효험이 좋다.
쇠비름은 이처럼 놀라운 약성을 지니고 있지만, 문제는 그걸 어떻게 먹느냐 하는 것이다. 쇠비름 특유의 미끈거림과 역한 냄새 때문에 먹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미끈거림과 역한 냄새를 잡을 요리법이 필요하다. 우리 집에서는 몇 가지 쇠비름 요리를 개발해 먹고 있다. 여름철에 시원한 국물을 내어 먹을 수 있는 ‘쇠비름 냉채’, 황설탕으로 담근 ‘쇠비름 효소’, 밀가루를 버무려 만든 ‘쇠비름 전’, 간장에 넣어 만든 ‘쇠비름 장아찌’, 끓는 물에 삶아서 말린 ‘쇠비름 묵나물’ 등. 특히 묵나물은 여름철에 만들어 두었다가 가을이나 겨울철에 갖가지 양념을 넣어 요리하면 고사리보다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쇠비름은 인류가 가장 먼저 먹기 시작한 식물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1만 6천 년 전 그리스의 한 구석기 시대의 동굴에서 쇠비름 씨가 발견되었다고 하니까 말이다. 쇠비름은 너무 흔한 풀이라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이런 흔한 풀이 가장 좋은 약초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불로초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죽여 없애려고 애를 써도 결코 죽지 않는 쇠비름이야말로 진정한 불로초가 아닐까.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어찌하여 이 불로초를 뽑아 없애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일까. 뽑아 없애려고 애면글면하지 말고 이 야생의 보물을 채취해 먹고, 또 씨앗을 받아 공터나 밭에 열심히 한 번 심어 가꿔보자.
글=고진하 목사시인 한겨레 20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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