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1) 야생초 지혜1: 질경이
나는 등산가가 아닙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산길을 걷지만 나는 그냥 한가로운 산책자일 뿐입니다. 굳이 산책이라 하는 까닭은, 보통 등산가들처럼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에 「꽃뱀 화석」이란 졸시에서도 썼지만, 나에게 산책은 천천히 걸으면서 산이라는 책을 읽는 일이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덴마아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도 산책을 칭송했죠. 산책은 더 없는 행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시에 일상의 고통으로부터 걸어 나가는 거라고. 그리고 자기 인생의 최고의 사상은 자기가 걷는 동안에 발견한 거라고.
그러나 오늘의 산행은 한가로이 산책을 하면서 덤으로 식용할 수 있는 풀을 채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사과 세 알과 도시락이 담긴 배낭에 지고 아내와 함께, 집에서 가까운 백운산을 오르기 시작했지요. 계류를 끼고 오르는 길엔 거의 인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직한 계곡의 물소리가 우리 팔짱을 바짝 당겨 끼고 호젓함을 달래는 길벗이 되어 주었죠. 저마다 명찰 하나씩을 유치원생처럼 가슴에 착용한 나무들도 우릴 반겨주었습니다. 소나무, 전나무, 당단풍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함박꽃나무, 고로쇠나무, 붉나무, 개옻나무, 떡버들……등등.
처음 대면한 이들이 통성명을 하듯 나무들은 가슴에 찬 명찰로 자기들의 존재를 알려주었죠. 나는 좀 딱한 생각이 들어 나무들에게 말했죠. 연두와 초록, 다채로운 꽃빛으로 물든 그대들의 얼굴이 명찰인데 뭐하러 거추장스레 이름표를 달고 있어? 옆에서 걷던 아내가 의아한 듯 벙긋 웃으며 입을 뗐습니다.
“당신 바보처럼 뭘 그렇게 중얼거려요?”
나는 나무들 이름표를 가리키며 대꾸했습니다.
“나무들이랑 통성명을 했지.”
“아유, 누가 시인 아니랄까봐?”
“후후…”
“그런데 우리가 뜯으려는 보물이 안 보이네요.”
“좀 더 올라가면 나타날 거유.”
시골 산길과 들과 길에 흔하디흔한 질경이
아내가 찾는 보물은 질경이였습니다. 길바닥에 널린 아주 흔하디흔한 잡초. 사람들의 구둣발에 마구 짓밟히며 살아가는 풀. 지난번 혼자 등산할 때 분명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질경이 군락지를 보았다고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었죠. 그렇게 큰 소리를 치고 왔는데 누가 다 뜯어가 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살짝 들었습니다. 물론 질경이는 내가 사는 동네 골목길에도 있지만, 자동차 매연 같은 것 때문에 그 청정함을 믿을 수 없어 산에 있는 질경이를 뜯으려고 온 것이었습니다.
백운산 입구부터 한 시간쯤 걸어 올랐을까요. 우리는 발 아래 땅만 보고 걸었습니다. 마치 천국은 저 드높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발 아래 있다는 듯이! 드디어 우리 발 아래 있는 천국을 발견했죠. 나보다 눈이 밝은 아내가 저만치 산길에 돋아 있는 질경이들을 보고 반갑게 소리쳤습니다.
“저기 쫙 깔렸군요. 당신이 봤다던 게 저거군요.”
“허허 참, 그렇다니까. 보물이 저기 있잖아!”
아내는 한 술 더 떠 소리쳤죠.
“저건 막연한 보물이 아니라 아주 귀한 보약이죠.”
그래, 보약! 여러 해 동안 잡초를 뜯어 잡초요리를 해 먹으며 숱한 실험을 한 아내는, 잡초 가운데서도 특히 질경이에 대한 강한 애정을 갖고 있죠. 사실 질경이는 거의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이 없거든요.
질경이의 효능과 관련해 중국에서 전해져오는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한나라 광무제 때에 마무라는 이름난 장군이 있었답니다. 마무는 연속으로 승리를 거두며 도망가는 적을 추격하다가 가뭄과 기근을 만났습니다. 병사와 말들은 허기와 갈증, 그리고 심한 요혈증으로 아랫배가 볼록하고 피오줌을 누면서 차례로 죽어갔죠. 그런데 그중에 말 세 마리만이 피오줌을 누지 않았어요. 이상하게 여긴 마부(馬夫)가 유심히 살펴보니 이 말들은 이상한 풀을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부는 그 풀을 뜯어다가 국을 끓여서 모든 병사와 말에게 먹였고, 하루쯤 지나자 피오줌을 그치고 기력을 되찾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광무제는 그 풀을 마차 앞에서 발견한 풀이라 하여 ‘차전초’(車前草)라 부르게 했죠. 차전초가 바로 질경이입니다. 질경이는 지금도 길바닥을 서식처로 삼아 자라고, 사람들 발에 밟혀서 제 종족을 널리널리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질경이의 서식처가 길바닥이라는 게 놀랍지 않은가요. 길바닥은 식물이 살기에 무척 척박한 환경입니다. 늘 짓밟혀야 하니까요. 그러면 질경이는 왜 길을 서식처로 삼을까요. 다른 식물보다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일까요. 질경이는 다른 식물보다 약한 식물이랍니다. 다른 식물과의 경쟁에 이길 만큼 강한 식물이 아닌 거죠. 그래서 길바닥을 서식처로 택한 겁니다. 질경이가 자라는 곳엔 다른 식물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질경이는 단독자로 홀로 살아가죠. 단독자로 산다는 건 무척 고독한 일입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오래 전 읽은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말이 떠올랐죠.
“하느님 앞에 단독자로 홀로 선다는 것, 그것은 지극히 고독한 일이다. 그것은 무리를 거슬러 혹은 떠나서 가장 진실된 자기의 모습으로 되돌아감을 뜻하기에 말이다.”(『공포와 전율』에서)
길바닥에 널려 있는 질경이를 보고 내가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에 대해 얘기하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질경이는 철학자가 어렵사리 터득한 단독자 개념을 이미 살고 있군요.”
“허허, 그런 셈이지. 그렇지만 조물주가 질경이에게 그렇게 살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그렇게 살긴 어려웠을 거요.”
그렇습니다. 길 위에 사는 질경이는 끊임없이 짓밟힙니다. 그렇게 짓밟히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뭘까요. 질경이는 잎 속에 강한 다섯 줄기의 강한 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질경이는 이처럼 부드러운 잎 속에 강한 실 줄기를 지니고 있기에 밟혀도 죽지 않는 겁니다.
또 질경이가 길바닥에서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다른 식물은 잎이 줄기에 붙어 있지만, 질경이는 잎이 지면에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잎이 줄기에 붙어 있다면 밟히면 꺾이거나 하겠지만 지면에 붙어 있으니까 발에 밟혀도 잎이 충격을 덜 받는 겁니다. 이처럼 질경이는 잎을 지면에 가까이 둠으로써 사람이나 자동차 바퀴에 밟혀도 거뜬히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이나가키 히데히로, 『풀들의 전략』 참조)
앞서 올라가며 질경이를 채취하던 아내는 언젠가 책에서 읽었다며 질경이가 가진 뛰어난 약성(藥性)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질경이 씨는 설사를 멎게 하는 약으로 예로부터 이름이 높았습니다. 중국 북송(北宋)의 위대한 문학가인 구양수는 어느 날 상한 음식을 먹고 설사가 심하게 났습니다. 의사를 불러 치료를 받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죠. 남편이 설사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부인이 말했습니다.
“시장에 가면 좋은 약이 있습니다. 값도 비싸지 않은데 약효가 아주 뛰어납니다.”
구양수가 대답했습니다.
“내 체질은 좀 특이하여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약으로는 고칠 수 없을 것이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시장에 가서 설사약 한 첩을 지어 왔습니다. 구양수는 부인이 정성껏 다려주는 약을 마지못해 먹었죠. 그런데 한 첩을 먹고 나자 바로 설사가 멎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효과가 있는 약이었습니다. 그 약은 오직 볶은 질경이 씨 한 가지로만 되어 있는 단방이었죠. 질경이 씨는 설사를 멎게 하는 효과가 매우 빠릅니다. 특히 어린아이의 소화불량으로 인한 설사에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질경이 씨를 살짝 볶아 가루를 내어 먹이면 됩니다.
질경이가 가진 약효에 대해서는 나도 마을의 이웃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노인은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 내외와 손주들과 함께 야외로 소풍을 갔답니다. 앉아서 놀만한 장소가 눈에 띄었는데 가시나무가 있어서 치우려고 하다가 손가락을 가시에 찔려 피가 났습니다. 피를 닦을 헝겊이나 종이가 없어서 난감했는데, 노인은 급한 대로 길가의 질경이 잎을 몇 장 뜯어 피를 닦았죠. 그런데 놀랍게도 곧 피가 멎고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그 덕분에 노인은 질경이 잎이 피를 멎게 하고 상처를 낫게 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질경이가 지닌 효능은 공자가 편찬한 『시경』에도 나옵니다. 『시경』의 부이편(芣苢篇)에 보면 ‘질경이를 뜯고 또 뜯네! 쉬지 않고 질경이를 뜯네!’라는 노래 구절이 나옵니다, 부인들이 질경이를 뜯으면서 왜 이런 노래를 불렀을까요. 남편들이 질경이를 먹고 정력이 세어져서 아들을 잘 낳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답니다. 질경이 씨를 먹으면 정력이 좋아지고 정자가 많이 생산되어 자식을 많이 낳을 수 있다는 거죠. 또 질경이는 여성의 자궁과 방광을 튼튼하게 하여 아이를 잘 낳을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산부가 난산(難産)으로 고생할 때 질경이를 달여 먹으면 아이를 순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로부터 질경이는 조산약(助産藥)으로도 이름이 높았다다고 하죠.(네이버 블로그 「최진규의 약초학교」 참조)
우리는 이처럼 자기가 알고 있는 질경이에 얽힌 얘기를 주고 받으며 뜯다보니 청정한 질경이가 바구니 가득 찼습니다. 아내가 먼저 일어서며 말했죠.
“여보, 이제 그만 뜯어도 될 것 같아요.”
아내는 잡초를 뜯을 때도 언제나 필요한 만큼만 뜯습니다. 산나물을 탐하는 이들이 그 종자까지 말려 버리듯이 뜯는 걸 늘 경계하죠.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잡초들도 하느님의 생명처럼 그느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겁니다.
“오늘 뜯은 질경이로 무슨 요리를 할 거요?”
“뜯은 양이 꽤 많으니까 삶아 말려서 묵나물도 만들고, 일단 오늘 저녁엔 질경이튀김을 해 먹어 보려구요.”
우리는 산에서 거저 얻은 짐벙진 선물, 보약이 담긴 바구니를 어깨에 둘러매고 산길을 내려가다 개울물 소리가 들리는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물가에 자리 잡은 우리는 도시락을 열었죠. 도시락에 담긴 밥을 입에 넣기 전 밥 한 덩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고시래!’를 했습니다. 고시래는 밥 먹기 전에 신에게 먼저 바치는 오랜 우리 관습이죠. 내가 그렇게 고시래를 하자 킬킬대고 웃던 아내도 밥 한 술을 떠 획 던지며 고시래를 했습니다.
『월든』을 쓴 데이비드 소로우가 말했던가요. “내 직업은 자연 속에 계시는 신을 늘 방심하지 않고 찾는 것”이라고요. 길바닥에 살아 있어 늘 짓밟히고 살지만, 그렇기에 신은 질경이 같은 존재를 더 은신처로 삼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듯 짓밟히고 살아가야 하는 삶은 고난의 연속이고, 홀로 살아가야 하니 고독하지만 남과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려는 특이한 삶의 의지를 지닌 질경이. 그래 오늘은 네가 우리 스승이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산하는데, 야생과 공존하는 삶을 추구하는 우리를 응원하려는 듯 긴 꼬리가 어여쁜 물까치 한 쌍이 한참을 따라오며 오달진 목소리로 우짖었습니다.
글=고진하 목사시인 한겨레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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