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여행만리]느리고 더딘 걸음..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daum.net)
예당호 느린호수길은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물위를 걷는 수상 산책로다.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한없이 여유롭고 더딘 풍경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아래 사진들은 예당호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풍경들
국내 최장 현수교인 예당호 출렁다리. 코로나19로 운영을 중단했다가 최근 문을 다시 열었다
ㅣ예산 예당호 슬로시티 여정-느린호수길, 느린꼬부랑길 걷다보면 코로나 시름 잊는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일상이 된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크게 숨 한 번 쉬어보고 싶은 마음 가득합니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신록이 하루하루 짙어져 녹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여행만리는 오랜 경계의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에 치유와 위로가 가득한 곳을 다녀왔습니다. 충남 유일의 슬로시티인 예산군입니다. 국내 최장 길이의 예당호 출렁다리와 느린호수길, 느린꼬부랑길이 있는 이름 그대로 더딘 여행이 가능한 곳입니다. 답답한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여유를 느끼며 걸어보기 좋습니다. 그동안 통제됐던 출렁다리도 문을 열었습니다.
◇ 국내 최장 예당호 출렁다리와 느릿 느릿 호수길을 걷다
예산에는 예당호가 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3.7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다. 주변을 한 바퀴 돌면 40㎞가 넘는다. '내륙의 바다'처럼 넓고 푸르다. 예당호는 전국에서 이름난 낚시터다. 이른 아침 저수지에서 피어오른 물안개와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든 좌대에 앉은 강태공의 모습이 여유롭다. 저수지 가장자리에는 수많은 좌대와 덕이 설치돼 있다. 붕어와 잉어가 많지만 주로 가물치ㆍ동자개ㆍ미꾸라지 등이 잡힌다.
지난해에는 국내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가 예당호에 생겼다. 길이 402m, 폭 5m 현수교로 성인(70㎏ 기준) 3000여명이 동시에 건널 수 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통제됐다 지난주 다시 문을 열었다. 다리 입구에서 체온을 측정하고 마스크 착용을 마치면 입장이 허락된다. 조심스럽게 출렁다리를 건너본다. 한발 한발에 흔들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리 중간에 있는 주탑 전망대에 서면 더 넓은 예당호와 수려한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낮에도 좋지만 밤은 더 황홀하다. 붉은빛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다리에 붉은색, 파란색, 보라색 등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무지갯빛 조명이 화려하다. 이에 맞춰 음악분수 쇼도 즐거움을 더한다. 음악분수는 다양한 콘셉트와 모양을 연출한다.
예당호에는 출렁다리뿐만 아니라 호수의 수변을 끼고 이어지는 산책로가 더 좋다. 출렁다리 주변의 부잔교(폰툰다리)와 나무 덱으로 조성한 호반 산책로의 정취는 훌륭하다. 코로나19를 피해 '거리두기'에도 딱 맞는 길이다. 산책로의 이름은 '느린호수길'이다. 출렁다리에서부터 중앙생태공원을 잇는 5.4㎞ 코스다.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물위를 걷는 수상 산책로다. 비교적 수심이 얕은 물가에는 버드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반쯤 물에 잠긴 나무가 원시의 숲인 듯 신비로움을 더한다. 바람이 잔잔한 날이면 물위로 솟아난 가지가 그대로 수면에 반사돼 데칼코마니 작품을 빚는다.
그 무성한 가지 사이로 물닭이 유유히 헤엄치고 백로와 왜가리가 목을 길게 빼고 물고기를 기다린다. 이따금씩 그늘 짙은 숲속으로 하얀 백로가 날개를 펼치면 선경인 듯 황홀하다. 걷는 여행자의 발걸음도 한없이 느려지고 느려진다. 더딘 풍경 속에서 느끼는 삶의 행복이다. 예당호에는 '황금나무'로 불리는 버드나무도 있다. 만수위 때면 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자란다. 해 질 무렵 온통 석양빛으로 물든 수면 위에서 역광을 받고 서 있는 나무는 카메라를 드는 순간 작품이 된다.
◇ 옛날 옛날에~ '느린꼬부랑길' 1코스 옛이야기길 걷다보면 코로나 잊는다
슬로시티 대흥은 예당호 주변을 아우른다. 그 가운데 대흥면 교촌리, 동서리, 상중리가 중심이다. 슬로시티 대흥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발끝으로 천천히 누려 보는 것이다. 바로 '느린꼬부랑길'을 걸어보면 된다. 세 가지 코스로 나뉜다. 삶과 자연 역사의 숨결을 마주하는 길이다. 1코스(5.1㎞) 옛이야기길을 걸었다. 슬로시티 방문자센터~배 맨 나무~봉수산자연휴양림~대흥동헌~방문자센터로 되돌아온다. 길을 잃고 헤맬 만큼 복잡한 마을이 아니니 발길 가는 대로 돌아봐도 좋다.
먼저 배 맨 나무를 만난다. 수령 1000년이 넘은 느티나무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나당 연합군과 백제 부흥군을 공격하러 왔다가 배를 묶은 나무로 유명하다. 이어 봉수산자연휴양림을 지나 북쪽 애기폭포 방면으로 길은 이어진다. 백제 부흥의 마지막 보루였던 임존성이 지척에 있다. 임존성은 백제 멸망 후 백제 유민들이 나당연합군에 맞서 최후까지 격전을 벌였던 성이다. 가족을 잃은 분노와 다시 나라를 세우겠다는 열망 때문이었을까. 부흥군은 한때 돌과 몽둥이만으로 10만명이 넘는 소정방의 당나라 군대와 신라군을 격퇴했다.
산 어깨를 따라 이어진 임존성은 유장하고 웅장하다. 그 안에 깃든 역사 말고도 성곽 자체만으로도 찾아볼 만하다. 계단처럼 만들어진 석성을 오르면 까마득한 돌성벽 위에 서게 된다. 그 성벽을 따라가다 보면 발 아래로 예당호와 대흥면 일대가 한눈에 펼쳐지는 장관을 맛 볼 수 있다. 호수의 물빛이 반짝거리는 오후 무렵에 더 아름답다. 임존성을 내려서면 길은 마을로 이어진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대흥동헌은 예산에서 유일하게 남은 관아 건물이다. 동헌은 고을의 수령(지금의 군수)이 집무를 보던 곳이다. 1407년에 짓고 조선 중기에 보수했다. 현재 '임성아문(任城衙門)'의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과 동헌이 남아 있다.
동원을 나서면 1964년부터 30여년 동안 국어교과서에 실린 훈훈한 이야기 하나를 만날 수 있다. 한밤중에 형은 아우의 볏단에, 아우는 형의 볏단에 벼를 나르다가 서로 만난다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다. 그 실제 주인공인 이성만과 이순 형제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이야기가 전설이 아닌 실화로 다가온다. 대흥면사무소 옆에 '예산 이성만 형제 효자비'가 있다. 대흥면사무소 앞에는 '의좋은 형제' 동상이 있고 마을 들머리에 '의좋은 형제 공원'이 조성돼 있다.
느린꼬부랑길 2코스는 '느림길(4.6㎞)'이다. 자연의 지혜로움에 귀 기울이며 느리게 사는 삶의 의미를 만나는 길이다. 3코스는 '사랑길(3.3㎞)'이다. 대흥향교 앞 수령 600여년 된 은행나무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은행나무의 별칭은 '사랑나무'다. 이 나무에 느티나무 뿌리가 내려 150년간 한몸으로 살고 있다.
예산=글ㆍ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 여행메모
▲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예당호에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당진분기점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예산수덕사 나들목에서 빠지는 것이 편하다. 국사봉로와 예당관광로를 따라 10여분 달리면 닿는다.
▲ 먹거리=예당호 주변에 어죽과 붕어찜 음식점이 많다. 광시암소한우마을은 30여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부드러운 육질과 저렴한 가격 등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타운이 형성됐다. 삽교읍에는 소머리국밥(사진)과 돼지곱창구이 식당이 몰려있다. 한일식당의 소머리국밥은 먹다보면 담백한 국물에 흠뻑 빠져든다. 수덕사 입구에는 산채정식과 산채비빔밥을 내놓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 볼거리=추사고택, 황새공원, 덕산온천, 리솜스파캐슬, 수덕사, 수덕여관, 충의사, 이남규 고택 등이 있다.
글=조용준 여행전문기자 아시아경제 2020.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