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걷고 또 걷고 기차를 타고

[조용준의 여행만리 ] 물소리·새소리·바람소리, 불현듯 마주하는 깨달음의 '소리'.. ‘합천 해인사 소리길로 떠나는 비대면 여정’

푸레택 2022. 2. 2. 21:29

[조용준의 여행만리]물소리·새소리·바람소리..불현듯 마주하는 깨달음의 '소리' (daum.net)

 

[조용준의 여행만리]물소리·새소리·바람소리..불현듯 마주하는 깨달음의 '소리'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사회적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 중입니다. 여행지를 소개하기엔 다소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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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걸을 수 있는 해인사 소리길은 이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길이다. 소요시간은 3시간정도지만 시간은 의미가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느리게 걸어 보는게 포인트다. 사진은 해인사 소리길 초입에서 7km 떨어진 야로면에 있는 500년 된 느티나무
 

해인사 소리길 탐방로
 

지난 장마로 계곡물이 불어나 물살이 세다
  

소리길에 있는 오토캠핑장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


ㅣ합천 해인사 소리길로 떠나는 비대면 여정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사회적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 중입니다. 여행지를 소개하기엔 다소 조심스럽지만 비대면(언택트)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추천합니다. 이번 주말이 아니어도 코로나19가 주춤해지면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경남 합천으로 갑니다. 합천하면 가장 먼저 해인사가 떠오를 것 입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해인사 주차장까지 차로 바로 달리지는 마시길. 지친 세상시름을 잠시라도 잊게 만들어주는 해인사 소리길을 놓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해인사로 오르는 홍류동 계곡은 '흐르는 물조차 붉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옛 선조들은 여름엔 녹음, 가을에는 단풍잎이 흐르는 물에 떨어져 계곡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을 보며 이같은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계곡이 해인사 소리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총 7km로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 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느리게 걸어 보시길 권합니다. 마을과 숲, 계곡을 잇는 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여유롭고 풍요해집니다. 그뿐인가요. 소리길 인근 야로면에는 SNS상에서 인증샷 명소로 유명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잠시 들러 인증샷 한 장 남겨도 좋을 듯합니다. 영상테마파크는 1920∼1980년대 배경을 재현한 시대물 특화 오픈세트장입니다. 일제감점기 서울과 1970년대 종로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해인사 소리길은 코라나19에 찌든 마음을 씻어내고 혼자 걷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대부분 경사가 완만한 숲길이거나 나무 덱이라 부담 없이 걸을만하다. 소리길은 이름만큼 풍경도 멋지다. 우거진 숲과 시원한 계곡이 함께해 눈과 마음이 모두 즐겁고 시나브로 세상 시름이 덜어지는 느낌이다. 소리길의 '소리(蘇利)'는 이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불가에서는 '극락으로 가는 길'이란 의미도 있다. 하지만 한글로 적으면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들으면서 걸을 수 있다는 뜻도 생긴다.


소리길 시발점은 대장경기록문화테마파크 주차장이다. 각사교를 건너 오른편 소리길 입구로 들어선다. 입구 화강암 표지석에는 "우주만물과 소통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 귀를 기울이면 세월 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계곡으로 내려가자 우뚝 솟아 있는 암봉과 장엄하고 우렁찬 물소리가 선계를 연상케 한다. 이곳을 찾은 옛 선인은 "호젓이 더딘 걸음으로 숲언덕을 찾아드니/ 돌무더기 어지러운 구비마다 물결이 부딪히네/ 꽃은 지고 새 우는데 인적은 드물고/ 구름까지 깊어 예 놀던 곳 알 수 없어라"고 읊었다.

'계곡에서 흘러온 꽃잎을 따라 올라간다'는 축화천에서 나무계단과 덱을 지나 흙길로 내려서면 낟알이 익어가는 논과 살짝 붉은빛을 띠는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탐방객을 맞는다. 소리길 오토캠프장을 지나면 '주차장 1.7㎞, 해인사 5.4㎞, 청량사 2.1㎞'란 안내판이 있는 무릉동 사거리가 나온다. 왼쪽은 청량사 방향이고 오른쪽은 구원리 마을이다. 해인사 방향으로 직진하면 곧바로 소리길 탐방지원센터에 닿는다. 이곳에서부터는 구불구불 이어진 좁다란 숲길과 맑고 장엄한 계곡길이 숨바꼭질을 한다. 물소리는 아득하게 멀어졌다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졌다가 하기를 되풀이한다.

수려한 계곡을 따라가며 중간에 폭포와 마주치는가 하면 갖가지 전설과 옛 시인묵객의 노래가 전해오는 명소들이 여행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소리길이 안내하는 대로 걷다 보면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현판이 걸린 홍류문에 이른다. 입장료를 내고,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최치원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는 농산정(籠山亭)이다. 농산정은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정자 앞 계곡에는 그의 칠언시가 새겨져 있는 암벽 치원대(致遠臺)가 있고, 크고 작은 바위에는 누군가 새긴 글이 가득하다. 농산정이란 명칭은 치원대에 새긴 시에서 비롯됐는데, 최치원의 행적을 기리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농산정을 지나면 숲은 짙어지고, '풍월을 읊는 여울'이란 뜻의 음풍뢰, 붓을 씻었다는 체필암, 시를 읊었다는 완재암, '빛을 머금은 바람이 춤추는 여울목'이란 뜻의 광풍뢰, '옥을 뿜듯이 폭포수가 쏟아진다'는 분옥폭, '비 갠 뒤 밝은 달 그림자를 담는다'는 제월담 등 절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세상의 번잡함을 잊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걷는 내내 계곡물 소리가 따라나서는 해인사 소리길은 노송이 푸름을 더하는 여름도 좋지만 단풍 비경이 펼쳐지는 가을, 하얀 눈이 뒤덮인 겨울에도 걷기 좋은 길이다.

명진교를 건너면 촉지판, 황토포장, 나무 덱을 설치해 휠체어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탐방 구간이다. 나무 덱 입구에서 고개를 숙여 하심(下心,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나무를 지나면 소리길의 백미로 손꼽히는 낙화담(落花潭)에 닿는다. 숨이 멎을 듯 웅장한 바위벼랑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장쾌하고, 짙푸른 못은 흰 물거품을 흩날린다. 힘찬 물소리에 맞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영산교를 건너면 소리길도 이제 막바지다. 영산교에서 성보박물관을 지나 조릿대 소리를 따라 걷는다. 그 끝에 천년고찰 해인사가 자리한다.

'해인'은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삼라만상의 번뇌들이 멈추고 깨달음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해인사에 들어서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그 이름값이리라. 우리나라 3보 사찰의 하나인 해인사는 사찰 전체가 국보라 할 만큼 위대한 유산을 품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과 장경판전(제52호)이다. 고려 때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부처가 전해준 깨달음의 진리를 새겨 놓은 목판으로 경판의 수가 8만 1258개, 글자 수는 5200만여 자에 이른다. 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보관용 건축물이 장경판전이다. 장경판전 건물의 앞면은 위 창이 작고 아래창이 크다. 반면 뒷면의 창은 위가 크고 아래가 작다. 공기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건물 내부의 온도차를 줄여나가도록 하는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소리길을 걷고 해인사에서 15km 떨어진 야로면 구정리 마을로 간다. SNS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인증샷 명소가 여기 있다. 마을수호신처럼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사방으로 난 길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태풍 영향으로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도 느티나무는 든든하게 자리 잡고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들로 나가려면 항상 지나치는 이 나무는 둘레가 6m나 되고 넉넉한 그늘이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유치원생들은 소풍 장소로, 할머니들은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로, 농부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이웃의 소식을 전하는 토론의 장으로 애용하고 있다. 깊은 뿌리를 내리고 가지와 잎을 키워내며 마을사람들과 함께 긴세월을 살아온 나무이기에 더욱 대단하다.

합천에는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추억여행지도 있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1920∼1980년대 배경을 재현한 시대물 특화 오픈세트장이다. 경성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KBS 대하드라마 '서울1945' 세트장으로 일제강점기 경성역 거리를 그대로 재현했다. 또 한쪽에는 1970년대 근대화된 서울 종로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드라마 '각시탈' '경성 스캔들' '미스터 선샤인'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택시운전사' '암살' '밀정' 등 많은 작품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또 다른 명소는 실제 청와대를 70% 규모로 축소한 세트장으로 1층에는 백악실, 인왕실 등의 공간들로 구성돼 있다. 외관만 보면 실제 청와대와 매우 비슷하다.

합천=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 여행메모

△ 가는길=
해인사소리길을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김천분기점을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나들목에서 나온다. 성주나들목에서 33번 국도를 따라 좌회전한 뒤 수륜면 소재지 삼거리에서 해인사쪽으로 우회전하면 된다.

합천영상테마파크


△ 볼거리=황매산, 오두산, 해인사 성보박물관, 남명조식선비길, 합천호둘레길, 함벽루, 가야산 등이 있다.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아시아경제 2020.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