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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 (4) 천록·해치·거북.. 해학 넘치는 돌짐승 만나러 궁궐로 가자

푸레택 2022. 1. 26. 13:40

천록·해치·거북..해학 넘치는 돌짐승 만나러 궁궐로 가자 (daum.net)

 

천록·해치·거북..해학 넘치는 돌짐승 만나러 궁궐로 가자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4)사람들은 물길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세운다. 개울물에 평편한 돌을 듬성듬성 놓아 사람들이 밟고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는 가장 기본적인 돌다리다. 드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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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4)

모든 사악한 것들이 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의미를 가진 상상의 동물 천록. [중앙포토]

 

사람들은 물길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세운다. 개울물에 평편한 돌을 듬성듬성 놓아 사람들이 밟고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는 가장 기본적인 돌다리다. 드넓은 궁궐에도 여기저기 개울이 있는데, 궁궐의 초입에 만나는 물길을 금천(禁川)이라 부르고 그 격에 맞는 치장을 갖춘 특별한 돌다리를 세운다. 금천 위에 세운 다리를 일반적으로 금천교(禁川橋)라 부른다.

궁궐 대문을 들어서면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제일 먼저 이 돌다리를 만나게 되는데, 왜 하필 궁궐 문을 들어서자 그 초입에부터 금천교를 건너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분명 궁궐이라는 곳의 상징성과 함께 그곳에 인위적으로 끌어들인 물길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니 그 위에 놓인 돌다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대체로 물길은 이쪽과 그 너머의 영역을 구분할 때 경계 짓는 역할을 한다. 불교에서 부처가 계신 절로 들어가는 초입에 건너는 물길을 세심천(洗心川)이라 한다. 세속의 땅에서 부처의 세계로 들어 가기 위한 물길을 건너면서 세속의 때를 물길에 흘려보내고 정화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궁궐 역시 임금이 계시는 지엄한 곳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궁궐 깊숙이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초입에 그 경계의 의미로 물길을 두었던 것이다.

 

창덕궁 금천교. 궁궐의 초입에 만나는 물길을 금천(禁川)이라 부르고 그 격에 맞는 치장을 갖춘 특별한 돌다리를 세운다. 금천 위에 세운 다리를 일반적으로 금천교(禁川橋)라 부른다. [중앙포토]

 

궁궐마다 만나는 금천교는 제각각의 그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사람도 저마다 이름을 지니는 것처럼 궁궐의 금천교도 제 이름이 있다. 경복궁의 금천교는 영제교(永濟橋)이고, 창덕궁은 금천교(錦川橋), 창경궁은 옥천교(玉川橋)라 부른다. 영제교는 물길을 건넌다는 의미이고 창덕궁의 ‘錦川橋’는 禁川橋와 한자가 다른, 비단처럼 고운 물길에 세운 다리라는 뜻이다. 창경궁의 옥천교는 옥같이 맑은 물길 위에 세운 다리다.

경복궁에 가면 두 번째 남문 흥례문(興禮門) 으로 들어서고, 바로 안쪽에 그리 넓지 않은 어구(御溝:궁궐에서 흘러나오는 개천)위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건물을 지으면서 철거됐던 흥례문이 2001년 복원되면서 어구의 영제교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경복궁의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에 위치한 어구는 풍수지리사상에 입각한 배산임수의 개념으로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조성된 명당수다.


왕이 정치를 펼치는 법전인 근정전 남쪽에, 왕의 신성한 공간과 외부 공간을 구분 짓는 물길을 두고 이를 금천이라 한 것이다. 경복궁의 영제교는 잡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사람들이 궁 안으로 들어가기 전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으라는 의미의 경계 지점에 세운 금천교이다. 궁궐에 들어오는 관리들 역시 금천교를 지나면서 그 아래 맑은 물에 몸과 마음을 정화한 다음 국정을 논하라는 뜻으로도 보인다.

영제교는 두 개의 홍예를 틀어 다리 상판을 받쳐 세우고 다리 위에는 삼도(三道)에 왕의 어도(御道)를 구분해 신분에 따른 위엄을 나타내고 있는데 어도는 바로 광화문에서 시작한 경복궁의 남북을 관통하는 축선으로 궁궐 내전영역까지 연결되고 있다. 바로 경복궁의 중심 축 선상에 다리 양쪽 난간에 하엽(荷葉:연잎)을 두르고 안상(眼象)을 뚫어 꽤 정성스레 치장한 금천교를 세운 것이다. 영제교의 길이는 13.3m이고 그 폭은 10.3m에 달하는데, 다리 폭이 이처럼 넓은 이유는 왕의 어가(御駕)와 양 옆의 시위행렬이 통과해야하기 때문이다.

 

옥천교의 전경. 창경궁의 옥천교는 옥같이 맑은 물길 위에 세운 다리다. [중앙포토]

 

이제 어구를 살펴보면, 양쪽의 석축에는 네 마리의 돌짐승이 사뭇 무서운 표정으로 각기 물길을 응시하며 금세라도 물에 뛰어들 자세로 웅크리고 있다. 이 돌짐승들은 궁궐을 지키는 서수(瑞獸:상서로운 동물)로 물길을 타고 궁궐로 침입하려는 나쁜 기운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영조 때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경복궁 유관기(遊觀記)에는 이 돌짐승을 천록(天鹿)이라고 적고 있는데 천록은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로 몸에 비늘이 덥혀 있고 외뿔이 달렸으며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능력을 지녔다고 묘사했다.

그런데 참, 악한 무리를 겁주고 제압하기 위해 인상을 쓴다고 잔뜩 찌푸린 모습을 보자니 이게 무서운 표정인가? 이런 헐렁한 인상으로야 어디 나쁜 기운을 제압할 수 있을까 걱정되어 다시 살펴보니 은근히 그 짓궂은 표정이 맹랑하다. 물길을 바라보고 경계를 서고 있는 것은 맞는데 혓바닥을 낼름 내밀고 ‘메롱!’ 이다.


천록 만든 석공이 그 역할을 잘못 알고, 궁궐을 지키려고 무섭게 위세를 부리기는커녕 즐겁게 장난칠 궁리를 하는 악동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고, 아니면 천록이 물속에 노니는 물고기와 서로 희롱하고 있는 건가? 쯧쯧. 아무튼 원래 천록이 혀를 길게 빼고 있는 형태적 특징에서 근거한 거라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 한국인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낯설지 않고, 또 이를 보고 덩달아 허허 웃을 수 있으니 참 순한 민족이다.

그런데 영제교를 장식하고 있는 서수 조각이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다리의 네 군데 엄지기둥에는 여의주를 움켜쥔 용이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이빨도 드러냈는데 그 표정 역시 사납지 않다. 중국이나 일본의 궁궐을 지키는 서수조각은 대단한 사실적 묘사로 인해 그들의 자세는 위엄을 넘어 살벌하기까지 하다. 이들은 궁궐을 엄중하게 지키고 있는 위압적인 표정으로 일반 사람이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게 만들고 그야말로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그러나 한국인의 심성은 그렇게까지 냉혹하지 못해서인지 우리 궁궐에서 만나는 서수조각은 대부분 익살이나 해학(諧謔)으로 물들어 있는데, 이는 화강암이라는 단단한 돌과 소통할 줄 아는 조선 석공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유다. 조선의 석공은 돌의 심성을 거슬리면서까지 매끄럽고 사실적인 묘사를 하지 않았고, 이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드는 위압을 끌어내려하려하지 않았다.

 

경복궁 영제교. 양쪽의 석축에는 네 마리의 돌짐승이 사뭇 무서운 표정으로 각기 물길을 응시하며 금세라도 물에 뛰어들 자세로 웅크리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 석수쟁이에게는 돌이 지니는 온기를 남겨두는 인정이 있었다. 영제교의 천록 뿐 아니라 창덕궁 금천교의 백택, 히죽거리는 엄지기둥 해치들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뒤태에 숨긴 ‘꼬랑지’의 장난기는 직접 만나 보시는 게 좋겠다.

창덕궁의 금천교는 궁궐의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종 때 박자청이 축조했다. 홍예 북쪽에는 현무(玄武)를 의미하는 거북을 놓았고, 남쪽에는 성군의 출현을 상징하는 백택(白澤)을 조각해 놓았다. 두 개의 홍예 사이 험상궂은 나티까지 이들은 모두 궁궐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다리 위의 네 군데 엄지기둥(동자석)에는 해치가 있는데, 이들 역시 영제교의 천록처럼 영 그 임무에 충실해 보이지 않는다. 도무지 엄히 궁궐을 지키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는 ‘히쭉!’ 웃고 있는데다가, 더욱 가관인 그 뒷모습은 꼬리를 도르르 말아 올리고 영락없이 장난칠 궁리를 하는 개구쟁이다.


영제교의 천록이나 금천교의 해치가 만드는 헐렁한 인상은 조선 석공의 너그러운 솜씨에서만 표출되는 여유로운 해학으로 해석해야 되겠다. 이탈리아의 섬세한 대리석 작품과는 다른, 다소 엉성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우리 땅의 질기고 강한 돌, 화강암과 조선 석수쟁이가 소통해 만들어 내는 완벽한 자연의 완성이다. 나는 이들을 만나러 오늘도 궁궐에 간다.

글=이향우 조각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