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오늘 하루' 공영구 (2021.12.29)

푸레택 2021. 12. 29. 18:13

■ 오늘 하루 / 공영구

모처럼 저녁놀을 바라보며 퇴근했다
저녁밥은 산나물에 고추장 된장 넣고 비벼먹었다
뉴스 보며 흥분하고 연속극 보면서 또 웃었다
무사히 하루가 지났건만 보람될 만한 일이 없다

그저 별 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고 자책하면서도
남들처럼 세상을 탓해보지만
늘 그 자리에서 맴돌다 만다

세상살이 역시 별 것 아니라고
남들도 다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살라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 생각났다

사실 별 것도 아닌 것이 별 것도 아닌 곳에서
별 것처럼 살려고 바둥거리니 너무 초라해진다
한심한 생각에 눈 감고 잠청하려니
별의별 생각들 다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오늘 하루 우리 가족
건강하게 잘 먹고 무탈한 모습들 보니
그저 고맙고 다행스러워
행복의 미소 눈언저리까지 퍼진다

- 시집 《오늘 하루》 (시와반시, 2009) 중에서 -

오늘 삶이 어제와 다를 바 없고, 내일의 일상이 오늘의 판박이라면 참 재미없겠다 싶다가도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별건가 하는 생각이 그 감정을 지그시 누른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매일 익숙한 몸짓과 비슷한 태도로 하루씩 잇고 사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때로는 그 권태의 무게가 가슴을 강하게 짓누르기도 하지만, 그럴 땐 창문을 크게 열어 놓고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면 그만이다.

그러면서 산다. 세상에 신나고 비까번쩍하고 보람된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늘 우리의 꿈은 풍성했지만 현실은 그 꿈을 냉큼 실현시켜주지 않는다. 드러내진 않지만 차츰 자책과 자조가 늘면서 '인생 뭐 있어?'란 말도 나오는 것이고 또 그렇게 받아들인다. 이백도 그러지 않았던가. ‘떠도는 인생 꿈과 같으니 기쁨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되나’라고. 

솔로몬도 말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살아있는 동안 즐겁게 누려라'. 고개를 끄덕이며 인생은 그저 배불리 먹고 남들 웃을 때 따라 웃고 남들 화낼 때 같이 핏대를 올렸다가 식구들 무탈한 것 보고 잠들면 하루치 분량의 행복으로는 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것 말고 뭐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뒤통수를 확 후려쳐줄 창조적인 각성이라도 느닷없이 와준다면 몰라도. 한 이동통신사에서 퍼뜨린 ‘비비디 바비디 부~’란 주문을 외우면 무엇이든 생각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이런 마법의 주문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들이 간절할런지는 몰라도 현실은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거나 퇴보할 뿐임을 어쩌랴. (글=권순진 시인)

/ 2021.12.29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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