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 리가 없지 / 권순진
양초 문질러 마룻바닥 윤내며
빡빡 구구단 외던 입으로
꿀꿀이 오줌보에 바람을 불어넣었지
지금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야 마땅할
술래잡기, 말타기, 곰배팔이, 비석치기도
정말로 하고 놀았지
집에 오면 두 주먹과 열손가락으로
빚어내는 그림자 염소랑 토끼 따위
염소수염 까닥까닥 미동할 때
목젖 다 드러내며 까르륵 웃어재꼈던
몸으로 친했던 놀이를
요즘 아이들 알란가 몰라
아버지가 기꺼이 내어주신 넓은 등이
운동장이 되고 말 잔등이 되기도 하는 것을
민첩한 엄마의 오자미 저글링에
입은 헤 벌어지고 넋은 다 빼앗겨서
존경의 마음 은근했던 역사적인 그 유희를
요즘 아이들 알기나 할까
명랑한 누이와 누이의 친구들이
앞마당 한가운데서 벌이는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흥겨운 가락에 내 어깨가 들썩였던 사실을
요즘 아이들 까무라쳤다가 깨어나도 알 리가 없지
- 시집 『낙법』 (문학공원, 2011)
[감상]
‘감자꽃’의 시인 권태응의 ‘풀밭에 놀 때는’이란 시가 있다. 그 시 속에 나오는 놀이로 ‘삠삐기 쏙쏙 찾아 뽑기’ ‘네 잎 달린 클로버 찾아내기’ ‘두꺼비집 짓기’ ‘고누 묻기’ ‘비삿돌 골라 갖기’ ‘장독대에 고여 놀 예쁜 돌 찾기’등이 있다. 거의 자연이 주는 즐거운 놀이들이다. 이 가운데도 내가 잘 모르는 놀이가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알 턱이 없다. ‘술래잡기’는 그냥 들어서나 알 테지만 ‘말 타기, 곰배팔이, 비석치기’ 따위도 아마 모르지 싶다.
설령 안다한들 실제로 하며 노는 아이는 없다. 지금 아이들에겐 죄다 3D(지저분하고 힘들고 위험한) 놀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없는 놀이라 여긴다. 마당과 골목이 사라졌으니 고무줄놀이와 숨바꼭질, 딱지와 구슬치기는 실종되었고 같이 놀아줄 동무도 없다. 온몸으로 오감을 동원하여 노는 전래놀이는 이제 현실적으로 복원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껏해야 '민속'이란 이름을 붙여 재기차기 따위가 특정 장소에서 잠깐 행해질 뿐이다.
법규로 정한 아파트 놀이터의 미끄럼틀은 빗물만 흘러내리고 그네는 저 푸른기와집에서나 출렁이며 바람을 가르고 있다. 함께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장난감으로 만회하려는 생각이 장난감 중독을 야기하고 무한정 방치되고 나날이 진보하는 컴퓨터 모바일 환경이 인터넷 게임중독을 부추긴다. 친구는 없고 오로지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게임에서 지는 것을 못 견뎌하는 위험한 습성만 배양되고 있다. 바보상자 앞에서 손과 발은 굼뜨고 둔해져만 간다.
교육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는 이스라엘의 유아 교육기관은 글자를 가르치지 않는다. 영·유아기는 심신의 균형 있는 발달과 감각을 키워주는 데 중점을 두는 시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신 자유놀이를 통한 교육, 생활도구와 현장중심의 소그룹 활동, 대화와 토론 위주의 ‘헤브루타’식 교육을 한다. 모범적 어린이 교재로 알려져 있고 히브리어로 '지혜의 빛'이라는 뜻을 가진 ‘오르다’는 게임식으로 된 것이 많다.
오르다 게임은 의미 그대로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습관이 몸에 베이도록 고안되어 있다. 게임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서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법, 승패를 인정하고 다른 해결책을 찾는 법, 힘을 모아이기는 법, 앞을 내다보는 예지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법 등을 배운다. 우리 아이들도 놀이를 제대로 즐겼으면 좋겠다. 또래 동무와 함께 흙과 바람 속에서 잘 노는 아이들을 길러 사랑과 우정 그리고 행복의 밑천을 만들어줘야겠다.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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