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나흘 폭설' 박성우, 눈이 내리네, Snow Frolic-from Love Story (2021.12.18)

푸레택 2021. 12. 18. 09:20

■ 나흘 폭설 / 박성우

​폭설이다
버스는 나흘째 오지 않고
자두나무 정류장에 나온 이는 자두나무뿐이다

산마을은 발 동동거릴 일 없이 느긋하다

간혹 빈 비닐하우스를 들여다보던 발길도
점방에 담배 사러 나가던 발길도
이장선거 끝난 마을회관에 신발 한 컬레씩을 보탠다
무를 쳐 넣고 끓이는 닭국 냄새 가득한 방에는
벌써 윷판이 벌어졌고 이른 낮술도 한자리 차고앉았다

허나, 절절 끓는 마을회관 방엔 먼 또래도 없어
잠깐 끼어보는 것조차 머쓱하고 어렵다 나는
젖은 털신을 탈탈 털어 신고 다시 빈집에 든다

아까 낸 눈길조차 금시 지워지는 마당,
동치미 국물을 마시다 쓸고 치직거리는
라디오를 물리게 듣다가 쓴다 이따금
눈보라도 몰려와 한바탕씩 거들고 간다

한시도 쉬지 않고 눈을 쓸어내던
싸리나무와 조릿대와 조무래기 뽕나무는
되레 눈썹머리까지 폭설을 당겨 덮고 누웠다

하얀 어둠도 눈발 따라 푹푹 쌓이는 저녁
이번엔 내가 먼저, 긴긴 폭설 밤을 산마을에 가둔다
흰 무채처럼 쏟아지는 찬 외로움도 예외일 순 없다

ㅡ『자두나무 정류장』(창비) 中에서

https://youtu.be/MmP6z-qrHQ4

https://youtu.be/2v2oSI4Kotg

https://youtu.be/gtFKm4ZeyfM

https://youtu.be/v0zICo0dwf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