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함양 군내버스 / 조향미
함양 백전 녹색대학 가는 버스는 오십분 간격이다
버스가 떠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일찍 차에 오르니 할머니만 다섯 먼저 타고 계시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노친네들은 서로 거리낌 없다
할매는 올해 나이가 몇이오
나는 아직 얼마 안돼요 칠십서이
아직 젊구마 한참 농사 짓것네
그래도 오만데가 아푸고 쑤시오 할매는 얼마요
나는 칠십아홉 저 할매하고 동갑이오
칠십 셋은 아직 괜찮소 여섯 넘기면 영 힘에 부치요
손수레와 도리깨를 옆에 둔 할머니가 칠십, 제일 젊다
중년 아낙들이 상자 보따리를 들고 새로 탔다
저기 뭣이꼬 삼이까
삼은 아닌 거 같은데 더 무거버 뵈는데
젊은 할머니가 호기심을 참지 못한다
새댁이 그기 멋이요
친정 엄마가 싸주는 거라요
아이고, 추석도 하마 지냈는데 친정어마씨가 꼭꼭 챙기놨구마
자식들한테 저래 싸주마 맘이 시원하제
하모요, 오목조목 싸주면 묵을 놈이 묵으니께 주는 마음 좋고
싸갖고 가먼 어매가 주는 거니께 묵으면서 좋고 안 그러요
할매는 콩도리깨를 샀구마 올해는 콩이 질어서 타작 좀 하겄네
콩이 잘 되야제 팥 없이는 살아도 콩 없이는 못 사니께
할머니는 도리깨로 마당 가득 콩타작을 하여
둥글둥글 메주 띄워 간장 된장 청국장 단지 단지 담아
전국 각지 오남매에게 또 오목조목 싸 부칠 것이다
묵을 놈이 묵으니께 주는 마음 시원하제
- 시집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실천문학사, 2006)
[감상]
‘군내버스’는 시골 노인네들에겐 자가용버스나 다름없다. 중간에 손을 들면 태워주고 짐이 많을 땐 집 앞에까지 데려다 준다. 버스 안에서는 일가친척이나 가까운 이웃처럼 허물없이 대화가 오간다. 이렇듯 삶이 녹아든 시골 버스 안의 대화는 고스란히 시가 되고, 시의 삽화는 곧 삶의 진경으로 펼쳐진다. 버스에 동승한 사람들의 건강한 대화를 솔깃하게 들을 수 있고, 이를 쓸어 담을 수만 있다면 원고지 칸을 메우는데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군더더기와 곁가지 말들이 왜 없을까만 대체로 재구성이 필요치 않는 날것 그대로의 맛이다.
때로는 재채기 소리의 녹취까지도 요긴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긍정적인 마음을 마련하지 않고는 이런 시를 쓸 수 없고 시적 완성도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고 풀어쓰면 시가 될 것 같지만 사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귀를 기울이다 보면 중간에 찌르르하게 가슴팍을 전율시키는 대목이 반드시 있고, 그걸 놓치지 말아야 하고 그것으로 행간을 요긴하게 감싸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시에서도 그런 언술들이 넘쳐난다.
‘자식들한테 저래 싸주마 맘이 시원하제’ ‘하모요, 오목조목 싸주면 묵을 놈이 묵으니께 주는 마음 좋고’ '싸갖고 가먼 어매가 주는 거니께 묵으면서 좋고 안 그러요' 이런 훈훈한 사랑이 그렇다. 도시에서 이 같은 정경을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림 턱도 없다. 지금은 전국 도로 포장률이 80%를 훨씬 넘어섰지만 비포장도로를 부릉부릉 덜컹거리면서 오가는 시골 버스 안이라야 '운 좋게'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 버스 안이고서야 이런 사람 냄새 가득한 아름다운 참견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다소 장황하다싶지만 그 참견을 고스란히 받아 적는 눈썰미와 청력 또한 시인의 역량이 아니고 무엇이랴. 무릇, 기교가 승하면 진실에서는 그만큼 멀어지는 법이다. 이렇듯 시에서도 진실의 단순 소박한 얼굴이 치장과 기술이 많이 걸려있는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경우가 많다. 도시농촌 할 것 없이 지금 세상에 나이 70줄은 노인도 아니다. ‘칠십서이’면 젊다는 소리를 듣고도 남는다. 그 ‘젊은이’들이 콩 농사지어 ‘둥글둥글 메주 띄워 간장 된장 청국장 단지 단지 담아’ ‘전국 각지 오남매에게 또 오목조목 싸 부칠 것’을 생각하면 힘이 절로 난다.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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