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님 / 김규동
이북에
누님 두 분 계십니다
큰누님은 이름이
김용금(金龍金)이고
작은누이는
김선옥(金鮮玉)이라 합니다
누구시든지 혹 소식 아시는 분은
안 계시는지요
이 넓은 천지지간에
손톱만큼이라도
소식 아시는 분
안 계실런지요
안 계실런지요
ㅡ 시집 『느릅나무에게』 (창비, 2005)
[감상]
1983년 6월30일 밤 10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면서 시작된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이 장장 5개월간 이어졌다. 처음엔 TV로만 내보내다가 7월 6일부터는 라디오로도 동시 방송하여 당시 KBS의 모든 공간과 자원은 오로지 이 방송을 위해서만 기능했다. 5일 동안은 뉴스를 제외하고 어떠한 정규방송도 내보내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헤어진 가족을 찾기 위해 여의도에는 10만 명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이 어마어마한 이벤트로 총 6백여 명의 이산가족이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이별의 사연을 들을 때나 극적인 상봉 장면들을 대할 때마다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절경은 그 자체로 이미 시를 압도한다. 이 장면들 하나하나가 한국 현대사의 명장면들이고 국민 모두가 그들과 함께 통곡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패티김의 애잔한 목소리는 그 여름 내내 국민의 귀를 맴돌았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이들의 모습은 전부 우리들의 눈과 가슴에 박혔었다. 단일주제의 깨지지 않을 최장생방송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78%란 사상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 그해 여름은 정말 뜨거웠다.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이 ‘특별생방송’은 실로 거대 담론이며 일대 사건이었다. 다른 노림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전두환이 잘한 일 가운데 하나가 이 사태를 방치한 거였다. 더러는 가만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고 선정일 때가 있다. 방송과는 별도로 여의도 KBS본관 벽과 광장에는 이산가족을 애타게 찾는 이들이 붙인 벽보가 수도 없이 펄럭였다. 나붙은 벽보의 행진은 피와 눈물로 그린 집단 초상화였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퍼즐을 맞추고서는 "맞다, 맞아" 소리치고 통곡했던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다시 36년이 흘렀다. 어제 또 다른 한국 현대사의 명장면이 연출되었다. 일반 국민들이야 이럴 때 그저 기쁘고 일이 잘 풀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막혔던 금강산 길도 뚫리고 개성공단도 다시 가동되기를 희망한다.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 1세대의 자유로운 상봉과 통일을 향한 발걸음도 빨라지기를 기대한다. 평생을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을 시어에 담아냈던 김규동 시인의 한을 뒤늦게나마 풀어드렸으면 좋겠다. 선생은 북에 남은 가족들을 절절히 그리워하다가 살아생전 한을 풀지 못하고 2011년 86세로 타계하셨다.
지금은 전쟁도 이념도 분단의 아픔도 없는 곳에서 몹시도 그립던 어머니와 누님들을 와락 품에 안고 오순도순 지내시겠지만 남은 한이 선생만의 것이랴. 평양과 서울 이원으로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하면서 이춘희 김동건 아나운서를 진행자로 내세우고, 간간이 현송월이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불러주어도 괜찮겠다. 36년 전 우리가 흘렸던 눈물이 100드럼이었다면 1,000드럼쯤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릴 것이다. 그 눈물의 적분으로 당연히 통일도 앞당기리라. 일이 잘 성사된다면 노벨평화상은 공치사 좋아하는 트럼프가 거머쥐어도 상관 않겠다. (글=권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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