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News] “그슬린 나무 보니 왜 검정이 애도의 색인지 알 것 같네요”

푸레택 2021. 10. 17. 22:28

안도현 시인 등 모천사회적협동조합
안동 '산불 피해현장 문인 답사' 초청
이하석·송찬호·장석남·손택수 등 10여명
"피해 보상 어떻게" 궁금증 쏟아져
"책만 읽다 글자 너머 책 읽었죠"

지난 2일 오후 경북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산불 피해 현장에서 이하석·송찬호·황현진 등 문인들이 남부지방산림청 직원 김성환(맨 오른쪽)씨의 설명을 듣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이곳은 올해 2월21일 오후에 발생해 다음날까지 20시간 동안 이어진 산불 피해 현장 일부입니다. 이 산불로 307 헥타아르에 걸쳐 모두 38만 그루의 침엽수가 불에 탔습니다. 이 나무들은 올해 말에 벌목을 하고 내년 초에 새롭게 조림을 할 계획입니다.”

2일 오후 경북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의 한 야산. 10여명의 문인들이 남부지방산림청 직원 김성환씨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하석·송재학·송찬호·안도현·안상학·장석남·손택수·김성규 등의 시인들과 소설가 황현진·이주란, 평론가 하응백 등이 그들. 이들은 남부지방산림청과 모천사회적협동조합이 주관한 ‘산불 피해 현장 문인 답사’ 행사에 참석한 터였다. 모천사회적협동조합은 지난해 초 40년 만에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귀향한 안도현 시인과 역시 예천 출신인 조현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등이 주도해 만든 단체로, 계간지 《예천산천》을 발행하고, 낙동강 원류인 내성천을 지키는 운동과 지역민 대상 인문학 강연 등의 행사를 진행해 왔다.

임하호가 내려다 보이는 현장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시커멓게 타거나 그슬린 채 생명의 초록빛을 잃은 모습이었다. 타서 떨어진 가지와 솔방울들이 곳곳에 나뒹구는 가운데 고사리며 떡갈나무, 신갈나무, 싸리나무, 아까시나무 등이 새롭게 올라오고 있었다. 구절초와 갯쑥부쟁이 같은 가을 꽃들과 산부추, 잔대, 용담 같은 다년생 화초들도 보였다.

임하호가 내려다 보이는 경북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의 산불 피해 현장. 검게 탄 나무들 사이로 새로 돋아난 풀들이 생명의 초록빛을 내뿜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지난 2일 오후 경북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산불 피해 현장에서 문인들이 임미경 산림치유지도사의 강연을 듣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공교롭게도 경북소방학교가 지척인 산불 현장에서 문인들은 산불과 관련된 궁금증을 질문으로 쏟아냈다. ‘산불이 나면 산주에게는 어떻게 보상을 하나, 실화 책임자에게는 어떤 책임을 묻나, 산불 피해를 입어 벌목을 한 장소에 새로 심는 수종은 어떻게 결정하나, 인공 조림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자연 복원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같은 질문들이었다.

현장 답사에 앞서 문인들은 안동시 낙동강변에 있는 남부지방산림청에 들러 산불 피해와 예방에 관한 사전 교육을 받았다. 지난해 4월 병산서원 코앞인 안동시 풍천면 인금리에서 발생해 꼬박 만 이틀 동안 번졌던 산불과 역시 지난해 3월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에서 발생한 산불 등이 입힌 피해와 진화 작업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영상을 시청했다. 전국 산의 32%가 소나무숲인데 병충해와 산불에 가장 취약한 것 역시 소나무라는 사실도 배웠다.

조병철 남부지방산림청장은 “해마다 평균 500건 정도의 산불이 일어나다가 최근 3년간은 매년 600건으로 횟수가 늘었고, 산불의 80% 이상은 담뱃불과 논·밭두렁 태우기 등 사람이 원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런(산불 현장 문인 답사) 행사를 일반인 대상 등으로 더 확대·발전시켜 산불 예방 홍보와 교육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산불 현장 답사를 마친 문인들은 산림치유지도사 임미경씨의 강연 ‘숲과 사람’을 들었다. 임씨는 “서울에서 상담사로 일하다가 언어로 하는 상담의 한계를 절감하고 몸과 마음이 두루 망가져서 경북 영주의 산촌으로 귀촌했다”며 “병원에서도 원인을 못 찾았는데,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1년 반 만에 회복됐다”는 말로 숲이 지닌 치유의 효과를 설명했다.

안동 임하댐 주변 산불 피해 현장의 검게 탄 소나무 둥치 주변에 연보랏빛 갯쑥부쟁이꽃들이 어우러져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행사 이튿날인 3일 오전 문인들은 경북 봉화의 백두대간수목원을 탐방했다. 설명을 맡은 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물자원보전실 허태임 박사는 “수목원의 목적은 수집·교육·전시·보존·증식 등 크게 다섯으로 나눌 수 있다”며 “예전에는 산불이나 벌채 등으로 피해를 입은 산의 녹화를 위해 우선 양육이 빠른 한 가지 수종을 심고는 했지만, 지금은 여러 수종을 섞어 심어서 숲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인간이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인 데에서 보듯 단일 종은 병충해와 질병에도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답사에 참여한 송찬호 시인은 “장례식장의 상주들이 검은 옷을 입듯이, 불에 타 검게 변한 나무들을 보니 검은색이 애도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새삼 알겠다. 오늘 수목원을 탐방하면서 나무와 풀을 보고 내가 잠깐의 위안을 받았듯이 내가 나무와 풀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 줌으로써 그들 역시 위안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택수 시인은 “늘 책상 앞에 앉아 글자로 된 책만 읽다가 글자 너머의 책을 읽고 가는 듯하다. 유자서(有字書, 글자가 있는 책)와 무자서(無字書, 글자가 없는 책)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도현 시인은 행사 주최측을 대표해 “작년에는 제가 오랫동안 살았던 전주 지역 문인 20여명을 초대해 1박2일 동안 ‘예천음식문화기행’을 했고, 올해는 이렇게 산불 현장 답사 행사를 통해 동료 문인들과 만났다. 앞으로도 다양한 행사를 기획해 전국의 문인들을 예천과 경북 지역으로 초대하려 한다”고 말했다.

글=안동/최재봉 선임기자

[출처] 한겨레 2021.10.04

/2021.10.17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