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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⑤] '귀화식물은 죄가 없다'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2021.10.16)

푸레택 2021. 10. 16. 12:57

[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⑤] 귀화식물은 죄가 없다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베트남 엄마’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후기 시인의 시 「가족도감 1」은 고향을 두고 온 모든 생물이 마주한 타향살이의 먹먹함을 대변한다. 수업시간에 귀화식물을 자세히 알려주고 싶을 때 나는 이 시를 읽어주곤 한다.

엄마는 귀화식물,
주로 시골에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원산지는 베트남,
겁이 많고 키가 작다

한국 전역의
산과 들에 피어나지만
엄마는 한국말이 서투르다

꽃말은 안녕하세요,
몸은 질기고 열매는 검붉다

가슴속 씨방에는
원산지에서 따라온
그리움이 멍울처럼
뭉쳐 있다

식물을 분류할 때 그 종의 출생지를 따져서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자생식물’과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외래식물’ 또는 ‘귀화식물’로 구분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도입 시기와 방법에 따라 외래식물(귀화식물)을 조금 더 자세히 구분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통칭해서 귀화식물이라 칭한다.

불교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는 은행나무, 『향약구급방(1236년)』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는 메밀과 부추, 통일신라시대에 국내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하는 수양버들 등은 특정한 목적에서 일찍이 들여온 식물이다. 너무 오래전 국내에 도입되어 지금은 거의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외에 개화기 이후 물밀 듯 들어온 귀화식물을 일반인뿐만 아니라 식물학자들조차도 다소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그들을 이해한다.

귀화식물의 대명사를 나는 망초로 본다. 그 이름과 그들 삶의 방식 때문이다. 망초는 북아메리카가 고향인 두해살이식물이다. 이우철 교수의 『한국 식물명의 유래』에 따르면 구한말 쇄국정책을 완화하자 서방의 문물과 함께 이 식물이 들어온 뒤에 나라가 망하였다고 해서 '망초'라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그 무렵 문물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금이 간 도자기 틈, 나무상자의 거친 결 사이사이, 누군가의 신발 틈과 머리카락에 숨어들어 온 망초의 씨앗이 지금은 한반도 전역에 퍼져 자란다. 정원의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가 망초일 것이다. 망초는 깊은 산 속에는 절대 자라지 않는다.

마당, 도로변, 경작지, 버려진 집터, 항구와 같이 인간의 활동이 빈번한 곳에 무리를 이루며 산다. 내 마당과 정원에 침입한 망초는 아무 죄가 없다. 인간에 의해 타국에서 건너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갈 뿐이다.

비슷한 식물로 큰망초가 있다. 남미가 고향이고, 남부지방에 자라던 것이 바닷가를 따라 번식해 중부지방에서도 발견이 된다. 형제 식물 ‘실망초’는 망초에 비해 꽃이 2~3배 정도 크고 잎이 뒤틀려 있는 점이 특징이며 ‘큰망초’와 마찬가지로 남미가 고향인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식물이다.

망초. 구한말 개항 이후 유입되어 전에 볼 수 없었던 이상한 풀이 전국에 퍼지자 나라가 망할 때 돋아난 풀이라 하여 '망초'라 부르게 된 것.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망초는 깊은 산 속에는 절대 자라지 않는다. 마당, 도로변, 경작지, 버려진 집터, 항구와 같이 인간의 활동이 빈번한 곳에 무리를 이루며 산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나는 특히 개망초를 좋아한다. 줄기와 가지 끝에 흰색의 머리모양꽃이 여럿 모여 피는데, 중앙부에 노란색의 관모양 꽃이 달리고 그 둘레로 흰색의 혀모양꽃이 장식처럼 꾸며 핀다. 영락없는 달걀프라이 모양이다.

계란꽃이 아니라 개망초가 맞다고, 더욱이 개망초는 우리 꽃이 아니라 북미가 고향인 귀화식물이라고, ‘망초’로도 부족해서 부정적 의미의 접두어 ‘개’자를 붙인 이름 개망초가 진짜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계란꽃과 함께 했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다 지워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여전히 개망초를 자생식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망초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는 땅이면 어디든 잘 자란다.

달리 말해 사람에 의해 교란된 곳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 마당에도 과거의 내 고향에도 가장 많은 땅을 점유하는 꽃이 바로 개망초다. 개항 이후 우리가 걸었던 많은 길에는 개망초가 한들대며 피어 있었을 것이다.

그 이름에서 우리 민족의 설움이 읽히기도 한다. 개항을 전후로 맞이한 한반도의 고난과 역경을 지켜본 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보듬어 주고 싶기도 한다. 형제 식물인 ‘주걱개망초’는 잎에 톱니가 있는 개망초와 달리 톱니가 거의 없는 주걱 모양의 잎을 달고 있다.

개망초. 개망초는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는 땅이면 어디든 잘 자란다. 달리 말해 사람에 의해 교란된 곳에서 자라는 것이다. 꽃은 영락없는 달걀프라이 모양이다. 그래서 계란꽃으로도 불린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황소개구리나 배스처럼 우리 토종식물의 삶을 방해하는 종을 생태계교란종이라 부르며 특별히 관리한다. 귀화식물 중에도 드물게 생태계교란종이 있다.

가시박이다. 가시박은 병충해에 강한 장점 때문에 오이나 호박 등의 박과 작물의 접목묘 대목용으로 1980년대 후반에 도입되었다. 그 목적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식물계의 ‘황소개구리’가 되어 우리나라 하천 변에서 천덕꾸러기 행세를 하고 있다.

북미 원산의 이 식물은 유럽·지중해식물보호기구(EPPO)에서도 해로운 외래식물로 지정하였고, 일본 국토교통성에서는 지속적인 제거 작업을 권장하고 있다. 가시박은 발아력과 생존력이 무척 강인한 식물이다.

봄에 싹을 틔워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연중 발아와 개화를 계속한다. 열매는 물을 따라 멀리 이동하고 물이 빠진 이듬해 집단으로 싹을 내고 넓게 번식하여 면적을 넓힌다. 특히 4대강 사업 이후 그 물길을 따라 엄청난 번식에 성공했다. 과거의 그 하천 주변에는 우리 식물 쥐방울덩굴이 살았다.

1990년대 후반의 하천정비사업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이후 쥐방울덩굴이 살던 자리는 거의 가시박 차지가 되었다. 가시박은 아무 잘못이 없다. 서로 다른 곳에 살던 가시박과 쥐방울덩굴이 한 곳에서 만나 경쟁하도록 만든 인간의 탓이다.

쥐방울덩굴이 사라지면서 꼬리명주나비도 그 긴 꼬리를 감추어 버렸다. 크고 화려한 날개와 명주실처럼 아름다운 긴 꼬리를 가진 꼬리명주나비는 ‘쥐방울덩굴’에 기대어 산다.

나비의 애벌레는 주로 다양한 식물을 먹는데 반해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는 오로지 쥐방울덩굴만을 먹고 진주 같은 작은 알들을 쥐방울덩굴 잎에 촘촘히 낳고, 그곳에서 일평생을 산다.

그래서 쥐방울덩굴을 찾으면 으레 꼬리명주나비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쥐방울덩굴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꼬리명주나비도 홀연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데이비드 아텐버러(David Attenborough)는 그의 유명한 저서 『식물의 사생활』에서 식물이 없다면 어떤 종류의 동물도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다고 역설한 바 있다. 과연 몰랐을까. 식물도 지난 정부의 사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가시박. 가시박은 병충해에 강한 장점 때문에 오이나 호박 등의 박과 작물의 접목묘 대목용으로 1980년대 후반에 도입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식물계의 ‘황소개구리’가 되어 우리나라 하천변에서 천덕꾸러기 행세를 하고 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가시박은 물을 따라 멀리 이동하고 물이 빠진 이듬해 집단으로 싹을 내고 넓게 번식하여 면적을 넓힌다. 특히 4대강 사업 이후 그 물길을 따라 엄청난 번식에 성공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쥐방울덩굴. 쥐방울덩굴은 하천가에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꼬리명주나비는 쥐방울덩굴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 4대강 사업 이후 쥐방울덩굴이 사라지자 꼬리명주나비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꽃은 트럼펫을 닮았다. 이 관 모양의 꽃 속으로 작은 곤충들이 들어가서 식물의 수분을 돕는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북한의 식물학자들도 귀화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다. 2009년 10월 박형선, 주일엽 등이 평양에서 편찬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외래식물목록과 영향평가』에서는 귀화식물의 종류와 그들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새로운 식물을 학습할 때 국내 식물도감보다 북한의 식물도감을 먼저 보는 편이다.

그 이유는 용어 때문이다. 일본식 한자를 섞어 쓴 국내 도감의 설명과 달리 순우리말로 풀어쓴 북한의 도감은 훨씬 쉽게 읽힌다. ‘미국개기장’에 대한 정보를 찾을 때도 그랬다.

남한의 식물학자들은 그 이름을 두고 기장을 닮았지만 먹지는 않기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의 접두어 ‘개’를 붙여서 개기장이라는 의미에 북아메리카에서 들여왔다는 뜻을 더해 ‘미국개기장’이라 부른다.

같은 식물에 대해 북한의 식물학자들은 부정적인 의미인 ‘개’를 지우고 그 식물들이 사는 습한 환경인 ‘벌’을 접두어에 붙여 ‘벌기장’이라 부른다.

식물을 학습하는 입장에서 내게는 후자가 더 쉽게 기억된다. 특히 순우리말로 적힌 설명을 읽을 때 식물에 대한 이해가 더욱 또렷해진다. 북한의 식물학자들이 벌기장을 설명한 원문은 다음과 같다.

북아메리카 나라들과 거래 과정에 우연히 전파되여 (중략) 우리나라에 귀화된 종으로 인정된다. 벌기장이 자라는 생육지들에서는 정상적으로 꽃피고 열매를 맺으면서 매우 조밀한 밀도로 단순군락을 형성하면서 생육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지역에서는 다른 본래의 종들을 억제하는 현상이 명백히 나타난다. 그러나 (중략) 자기 생육지를 유지하는 능력이 대단히 약한 것으로 하여 식물상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은 관찰되지 않는다.

미국개기장. 북미가 고향인 한해살이 벼과 식물로, 자생식물인 개기장에 비해 잎이 크고 길며 줄기가 튼튼한 편이다.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 원뿔모양 꽃차례에 녹색 꽃이 성글게 핀다. 이따금씩 율무밭에 침입하여 불청객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낯선 외래식물이 자국에서 부정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고 정확하게 짚어주는 것이 내게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활동으로 국내에 도입된 많은 귀화식물이 본의 아니게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게 나는 내심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식물은 아무 죄가 없다. 그들은 “원산지에서 따라온 그리움이 멍울처럼 뭉쳐 있”어서 낯선 타국에서 더 강인하게 살아갈 뿐이다.

글=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출처] 뉴스퀘스트 2020.12.15

/ 2021.10.16(토)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