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노랗게 빨갛게 단풍이 드는 세 가지 이유
ㅣ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7 단풍
제법 찬바람이 붑니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길어진 옷소매에서도 가을이 깊어지는 것을 느끼죠. 10월 1일 추석(秋夕)도 지났고, 그 뒤로 한로(寒露)·상강(霜降) 등 차가운 단어들이 들어있는 절기가 이어집니다. 한 달 뒤면 훨씬 더 추워지고 곧 겨울이 닥칠 것입니다. 숲속 동물들도 먹이를 저장하거나 겨울잠 잘 준비를 하고, 식물들도 겨울을 준비하죠.
가을이 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울긋불긋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입니다. 단풍이라고 하죠. 코로나19가 없던 시절, 가을이 깊어지며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공원이나 산에 단풍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주말이면 단풍 구경에 도로가 막힐 정도였지요. 푸르게만 인식했던 숲이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가는 모습은 오래전 인류에게도 신비한 장면이었을 겁니다. 세상이 왜 붉게 물들어가는지 의문도 품으며 자연에 관심이 더 커지고 자연에 더 가까워졌겠죠. 다양한 물감으로 색칠한 그림 같은 가을 풍경은 우리 인간들이 색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예술적 감성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거예요. 많은 예술가들은 오랜 세월 자연이 만든 멋진 그림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흉내 내고자 노력해왔죠. 우리 주변에 어떤 종류의 나무가 어떤 색으로 물드는지 둘러보면서 ‘나는 무슨 색이지?’ 하고 나만의 팔레트를 가꿔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 단풍은 왜 생기는 걸까
식물에게도 양분이 필요하고 그 양분을 만들어낼 장소가 필요하죠. 그게 바로 잎입니다. 잎은 광합성을 해요. 물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햇빛을 이용해 양분을 만들어내는 거죠. 동물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멋진 일인데요. 가을이 되면 대부분의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고, 풀들은 아예 몸체가 모두 말라서 죽게 됩니다. 가을이 되면 햇빛의 세기가 약해지고 낮의 길이도 짧아져요. 그렇게 되면 광합성으로 만들어내는 당분보다 호흡활동으로 사용하는 당분이 많아져서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단풍이 드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에너지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물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무들은 뿌리로 물을 빨아들이고 광합성하면서 다시 잎으로 물을 내뿜죠. 물 덩어리이기도 한 잎은 온도가 낮아지면 얼어서 조직이 파괴돼 죽겠죠. 어차피 죽을 잎이라면 미리 죽이는 쪽을 선택합니다.
잎이 줄기와 붙어있는 부분에 ‘떨켜(이층·離層)’라는 조직이 있는데 가을이 되면 떨켜가 물과 양분이 오가는 길을 막아 더 이상 못 가게 합니다. 이동이 어려워지면 잎은 서서히 죽게 되는데요. 죽어가면서 광합성을 더 이상 하지 못하니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초록빛을 잃고 잎이 가진 카로티노이드·안토시아닌·탄닌 등의 색소 종류와 양에 따라 그 빛깔이 겉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세 번째 역시 물과 연관이 있어요. 겨울이 되면 여름보다는 강수량이 적어지고 땅도 얼어서 땅속 뿌리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광합성을 해서 증산작용으로 잎에서 물을 뿜어내고, 뿌리는 물을 흡수하지 못하면 결국 말라죽겠죠. 이러한 이유로 나무는 잠시 광합성을 멈추는 것입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기보다 한 박자 쉬며 다음을 준비하는 거예요.
◇ 소나무는 왜 단풍이 안 들까
가을이 되어도 잎을 그대로 단 채 초록으로 유지하는 나무들도 있습니다. 흔히 늘푸른나무(상록수)라고 하죠. 늘푸른나무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잎이 바늘처럼 가느다란 소나무·잣나무·전나무 같은 바늘잎나무(침엽수)와 동백나무·사철나무처럼 넓은잎나무(활엽수)이면서도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늘푸른넓은잎나무(상록활엽수)가 있습니다. 둘 다 수분 증발을 줄이고, 얼지 않는 부동액 같은 성분을 잎 내부에 갖고 있죠. 겨울에 잎을 떨어뜨리고 봄이 올 때까지 쉬기보다 빛이 적어도 조금씩이라도 광합성을 하면서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역시 에너지의 효율을 위한 거죠. 그렇다면 소나무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잎이 그대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잎은 수명이 있습니다. 흔히 보는 잎떨어지는나무(낙엽수)들은 잎의 수명이 6~7개월입니다. 그에 비해 늘푸른나무들은 2~7년 등 그 수명이 상대적으로 길죠. 아직 잎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이듬해 새잎이 나오기 때문에 나중에 첫 잎이 떨어져도 푸른빛을 이어가게 됩니다. 우리에겐 늘푸른나무들이 잎을 안 떨어뜨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나무는 잎을 떨어뜨립니다. 그 수명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옛날 사람들은 늘푸른나무를 숭상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변하는 때 홀로 변치 않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는 늘푸른나무에게서 신성함·강인함·특이함·개성·고집과 같은 인상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스스로 균형 잡고 절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소나무를 숭상했겠죠. 시대가 빨리 변하면서 주변 친구들부터 지식인, 언론, SNS 등 다양한 매체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균형감과 나다움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출처] 중앙일보 2020.09.19
/ 2021.09.29 옮겨 적음
https://news.v.daum.net/v/20201019090048382
'[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년중앙] 땅에 떨어진 낙엽은 쓸쓸함보다 새 삶을 노래한다 (2021.10.01) (0) | 2021.10.01 |
---|---|
[사색의향기] '산행을 하며' 백승훈 시인 (2021.10.01) (0) | 2021.10.01 |
[소년중앙] 하늘 날고 땅 굴러가는 열매들 “다 계획이 있단다” (2021.09.29) (0) | 2021.09.29 |
[소년중앙] 곤충은 열매 먹고 새는 곤충 먹으며 돌아가는 생태계 (2021.09.29) (0) | 2021.09.29 |
[소년중앙] 색·모양·꿀.. 여름꽃이 치열하게 제 매력을 가꾸는 까닭 (2021.09.28) (0) | 2021.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