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수구초심 본능 '황어'의 아름다운 일생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2021.09.07)

푸레택 2021. 9. 7. 18:59

■ 수구초심 본능 '황어'의 아름다운 일생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회귀본성 따라 봄철 제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일생 마감.. 강 중류, 수심 20~50㎝ 정도의 맑은 물이 흐르는 자갈 바닥에 산란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 물살을 가르며 하천을 오르는 황어

황어(黃魚)는 일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낸 다음 알을 낳기 위해 헐떡거리며 강을 거슬러 돌아온다. 가파른 물길을 만나는 날에는 퍼드덕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 물살을 가르며 오른다. 황어는 강에서 부화해 바다로 나가 일생을 보내고 나서 하천에 올라와 산란하는 종류와 그와 달리 바다에 내려가지 않고 평생 하천에서만 사는 육봉(陸封)하는 것이 있다. 한국산 황어는 모두 바다와 하천을 드나드는 회유어(回遊魚)이다. 이들은 잡식성으로 수서곤충·어린 물고기·물고기알·새우·가재·다슬기와 식물의 잎줄기, 씨앗까지도 마구잡이로 먹는다.

황어(Tribolodon hakonensis)는 잉엇과의 물고기로 몸길이 30~50㎝ 남짓이고, 가장 큰 것은 50㎝, 1.5㎏이 넘는 것도 있다 하며, 한국, 일본, 중국 동북부, 러시아에 퍼져 산다. 몸은 길고, 양 옆으로 약간 눌려진 상태로 머리는 원추형에 가까우며, 입의 아래턱이 위턱보다 짧고, 입술은 말굽 모양으로 비스듬히 위쪽을 향했으며, 위턱의 뒤끝은 눈구멍 앞부분의 바로 아래에서 끝난다. 주둥이 앞 끝은 뾰족하고, 꼬리는 옆으로 납작하며, 등은 청갈색 혹은 황갈색이다. 배는 은백색이며, 몸바탕 색깔이 누르기에 황어(黃魚)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여태껏 강보다 더욱 먹이가 풍부한 바다에서 마음껏 먹어 번들번들 기름기가 도는 것이 등치를 한 짐 되게 늘렸다. 잘 먹어 훌쩍 큰 녀석들이 기꺼이 제가 태어난 곳으로 설렁설렁, 기우뚱거리며 뒤처지는 놈 하나 없이 지느러미와 몸통을 휘저으며 바글바글 올라온다. 산란은 암컷 한 마리와 여러 마리 수컷이 어울려 낮에 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수정란은 15도 수온에서 5일 뒤 부화하고, 바다로 내려가 3~4년 후에는 성어가 된다.

황어는 연어·뱀장어·은어들처럼 강과 바다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회유어로 모천(母川)을 찾아 들어 산란하는 원초적인 귀소본능(歸巢本能, homing instinct)을 가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로지 남해안과 동해안으로 흘러 드는 강에만 황어가 산란하러 온다.

강에서는 알을 낳으러 돌아오는 한두 달 동안 황어를 잡고, 바닷가에서는 가을부터 봄까지 잡으며, 바다낚시는 한겨울이 제철로 이때 잡은 것이 가장 맛나다. 주로 회나 매운탕으로 먹지만 말리거나 삭힌 젓갈과 식해 등의 발효식품을 만들어 저장해 두고 먹기도 한다.

민물(강)에서 부화해 짠물(바다)로 나가 일생(3~4년)의 대부분을 거기에서 보내면서 듬직하게 다 자란 다음 3∼4월에 ‘황어 반 물 반’ 무리지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진 애쓰며 소강(溯江)한다. 산란기인 3~4월에 황어 수컷의 배에 붉은 띠가 나타나고, 지느러미도 붉은색으로 변하는 혼인색(婚姻色, nuptial coloration)이 생긴다. 그리고 사마귀 모양의 돌기들인 추성(追星, nuptial organ/ pearl organ)도 나타나고, 예전과 다르게 몸 옆에 3줄의 적황색 띠가 생긴다.

자연의 이차성징, 혼인색·추성

혼인색과 추성에 대한 설명을 조금 보탠다. 어류 말고도 양서류나 파충류도 번식기가 되면 몸 표면에 독특한 빛깔, 즉 혼인색을 나타내는데 거의 수컷에 한정된다. 혼인색은 역시 산란기에 생기는 독특한 빛깔로 황어나 피라미의 수컷(불거지), 납자루·연어·은어·가시고기 수컷들에서 특별나다. 이 화려한 색은 짐짓 암컷을 구슬리고, 꾀어 짝짓기를 재우치고 돕는다.

그리고 추성이란 산란기의 피라미나 은어 수컷에서 볼 수 있는 특징으로 피부 표피가 두꺼워져 무사마귀 모양으로 꺼칠꺼칠하게 울퉁불퉁 돌출되는 것이다. 머리나 몸, 가슴지느러미 위에 나타나는 돌기로 이 또한 주로 수컷에서 더 많이 생긴다. 이 추성돌기로는 산란기에 집(텃세)을 지키고, 암컷을 꼬드기고 자극하며, 암컷이 상대인식을 쉽게 하는 일종의 이차성징(secondary sex characteristics)인 것이다.

더 예쁜 혼인색과 멋지게 생긴 추성을 가진 수컷이 암컷의 선택(뽑힘)을 받는 것은 당연하니 이를 성선택(性選擇, sexual selection)이라 한다. 머리를 다듬고, 좍 빼입은 몸단장에 듬직하게 맵시 내는 남자도 마땅히 여성의 눈에 띄기 위함이렷다! 두 말할 나위 없이 그 역(반대)도 성립한다. 이는 다윈이 주장했던 설의 하나로, 어려운 환경에 살아남는 자연선택(自然選擇, natural selection)도 중요하지만 번식을 통해 자손을 많이 퍼뜨리는 것도 진화의 핵심요소라는 것이다. 일례로 사슴의 뿔, 새의 아름다운 깃이나 지저귐, 사자의 갈기, 남자의 수염 등의 빼어난 형질이 배우자선택(자웅선택)에 쓸모가 있어서 후손을 많이 남기게 된다는 것이다.

황어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드디어 암컷 한 마리에 여러 마리의 수컷이 옆 서거니 앞서거니 한다. 수컷들이 산란을 부추기느라 암놈 몸을 슬슬 긁적거리고, 슬쩍슬쩍 비비면서 어르고 달랜다. 그리고 이들도 여러 마리 암수가 한 곳에서 떼거리로 셀 수 없이 많은 알과 정자를 잔뜩 뒤섞으니 이를 ‘집단산란(group spawning)’이라 하는데, 어류 말고는 이런 일이 드물다. 보통 모든 동물이 암수가 일대일로 짝짓기를 하니 말이다.

이들은 강 중류, 수심 20~50㎝ 정도의 맑은 물이 흐르는 평평한 자갈 바닥에다 산란한다. 지름 2㎜ 안팎인 알은 옅은 황색으로 끈적끈적하여서 모래·자갈 바닥에 잘 달라붙는다. 그리고 나면 어미 아비는 초주검이 돼 게거품을 물고 뻗어버리니 이렇게 그들도 허무하게 세상과 인연을 다하고 만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두고 죽는다고 하더니만 황어도 결국 귀소본능, 회귀본성이 발동하여 제가 태어난 강에 돌아와 새끼치고 죽는다. 정말이지 슬그머니 청춘 가고 불쑥 여든 줄에 접어드니 고향과 옛것만이…. 황어 네가 그랬듯 나도 고향으로 돌아가 아름답게 삶의 마침표를 찍어야지!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글=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출처] 월간중앙 201807호 (2018.06.17)

/ 2021.09.07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