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생태 과학 칼럼 모음

[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물 위의 스케이터 소금쟁이'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2021.09.05)

푸레택 2021. 9. 5. 07:17

△ 소금쟁이는 3쌍의 긴 다리를 이용해 물 위에서 자유자재로 떠다닌다.

 

■ 물 위의 스케이터 ‘소금쟁이’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잔털 덕분에 파도에 휩쓸려도 가라앉지 않아.. 물결 파동 이용해 먹이사냥·짝짓기에 나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자락의 숲길을 걷는다. 중간에 들르는 옹달샘에서 때때로 소금쟁이 한 마리를 만난다. 그 먼 곳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지만, 녀석은 신기하게도 물에 안 빠지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물 위를 떠다닌다.

소금쟁이는 노린재목, 소금쟁잇과에 속하는 수서(수생) 곤충으로 세계적으로 1700여 종이 알려졌고, 우리나라에서는 5속 9종이 서식한다고 한다. 이들 중 90%는 민물(담수)에 살고 나머지 10%는 바다(해수)나 민물과 짠물이 섞이는 기수(汽水)에 산다.

소금쟁이(Aquarius paludum)는 물 위를 미끄러지듯 휘젓고 다니면서 성큼성큼 걷기도(stride) 하기에 ‘water strider’라 부른다. 그런데 어떻게 물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걷기도 하는 초능력을 가졌을까. 그것은 발에 물이 묻지 않는 발수성(撥水性) 잔털이 1㎟에 100개가 넘게 나 있고, 온몸에도 이런 털이 가득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많은 잔털과 긴 다리로 체표 면적을 넓혀 40㎎밖에 안 되는 가벼운 체중을 분산시키는 것도 한 요인이다.

다시 말해 물의 표면장력(surface tension of water, 액체의 표면이 스스로 수축해 가능한 한 작은 면적을 취하려는 힘)은 소금쟁이의 다리가 물 위에 쉽게 떠 있을 수 있게 하고, 가느다랗고 긴 다리는 체중을 고르게 분산시킨다. 소금쟁이는 전신에 분포한 발수성 잔털로 인해 파도나 빗물에 몸이 젖지 않게 돼 몸을 가볍게 유지할 수 있다. 어쩌다가 파도에 휩쓸려도 잔털 사이에 들어있는 공기 방울의 부력으로 다시 물 위로 쉽게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물속으로 가라앉는 경우도 있다. 발에 기름이나 비눗물을 묻혀버리면 물 위에서 폴짝폴짝 뛰다가 결국 물에 빠지고, 우유 같은 표면장력이 약한 액체 위에 올려놔도 금방 가라앉는다.

수컷의 몸길이는 11∼14㎜이고, 암컷은 13∼16㎜로 암컷이 조금 더 크며, 대부분 소금쟁이는 날개가 있어 날 수 있다. 앞의 옹달샘에서 만난 그놈도 날개가 있는 종인가보다! 머리는 툭 튀어나왔고, 겹눈은 크고 둥그스름하며, 홑눈은 작거나 숫제 없는 종도 있다. 몸은 흑갈색 또는 검은색 바탕에 갈색 무늬를 띠며, 은빛 잔털이 빽빽하게 나 있다. 머리에는 V자 모양의 갈색 무늬가 나고, 몸은 원통형으로 길쭉하며, 대부분 날개가 있지만 없는 종도 있다. 또 날개가 큰 것과 작은 것도 있으며, 4마디로 된 1쌍의 더듬이(antenna)는 머리보다 짧다.

앞에서 소금쟁이 가운데 10%는 바다에 산다고 했다. 그래서 ‘소금쟁이’란 이름은 생김새가 소금가마니를 지고 다니던 소금장수와 비슷해서 생겨났다 한다. 키에 비해 팔다리가 지나치게 길고 비쩍 마른 체형인 사람을 빗대 소금쟁이라고도 부른다. 강원도나 경북지방에서는 소금쟁이를 ‘엿장수’라 부르기도 한다.

◇ 집단 안에 개체 수 많으면 서로 잡아먹기도

소금쟁이는 곤충인지라 구부러진 3쌍의 긴 다리를 갖는다. 간단히 말해서 앞다리는 물 위에서 먹이를 잡고, 가운뎃다리는 물을 저으며, 뒷다리는 방향을 잡는 데 쓰인다. 제일 짧은 앞다리는 눈 뒤에 있다. 이 앞다리로 물 위에 떨어진 먹이를 감지해 낚아챈 다음 앞다리의 발톱으로 먹잇감을 찌른다. 앞다리 발목 마디는 2마디이고, 발목 마디에 잔털이 많아 물 위에서 몸 앞쪽을 떠받치는 데 사용된다. 앞다리가 나머지 다리에 비해 매우 짧아서 잘 모르는 사람은 소금쟁이 다리가 2쌍 인줄 안다. 가운뎃다리는 앞다리보다는 길지만 뒷다리보다는 짧다. 주로 몸을 앞으로 미는 일을 하며, 가운뎃다리의 젓는 힘으로 물 위를 성큼성큼 걸어 다닐 수가 있다. 가장 긴 뒷다리는 빠르게 움직여서 몸의 운동(이동) 방향을 조절한다.

소금쟁이는 고인 물이나 유속이 느린 연못·늪·냇물에 산다. 그리고 물에 뜨는 부엽식물이나 물가의 돌에 올라와 쉬고, 물웅덩이가 생기기만 해도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나는 것을 보기는 어려우나 가끔 불빛에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원산지는 한국·일본·중국·동남아로, 한국·일본·중국·타이완·러시아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에서 관찰할 수 있다.

소금쟁이는 노린재목인지라 냄새를 내는 샘(취선, 臭腺)이 있어서 특유의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그렇지만 땅에 사는 노린재만큼 심한 냄새는 아닌 데다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달달한 향기가 난다고 한다.

열대지방에서는 1년 내내 발생하지만 온대 지방에서는 한 해에 2∼3회 새끼치기를 하고, 대부분 낙엽더미나 바위 밑에서 성충으로 월동한다. 일반적으로 알을 물속의 돌이나 수초에 달라 붙인다. 알은 우유색으로 투명하다가 나중에는 밝은 오렌지색으로 변한다. 번데기 시기가 없는 불완전변태(못갖춘탈바꿈)를 하기 때문에 부화한 알은 60~70일 동안 어미를 닮은 유생(애벌레) 시기를 거치면서 여러 번 허물벗기(탈피)를 하고 성체(어른벌레)에 이른다.

육식성으로 수면에 떨어진 거미나 벌, 파리 따위의 벌레나 죽은 물고기, 병들거나 죽은 동족 등을 먹이로 삼는다. 날카로운 빨대와 같은 뾰족한 입으로 먹잇감을 찔러 침을 집어넣고, 침(효소)에 녹은 체액을 빨아 먹는다. 그런가 하면 소금쟁이의 천적은 새나 물고기, 개구리이고, 집단 안의 마릿수가 너무 많으면 서로 잡아먹기(同種捕食, cannibalism)도 한다.

소금쟁이는 특이하게도 먹이잡이에 물결 파동을 이용한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의 진동에 거미가 반응하는 것처럼 녀석들은 먹잇감이 물 위에 떨어지면서 일으키는 물결(ripple)을 감지하고 달려가 먹이를 잡는다. 짝짓기를 할 때도 암수는 서로 물결을 이용한다. 그리고 생식 시기에는 수컷이 경고성 진동(warning vibration)으로 텃세를 부린다고 한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글=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출처] 월간중앙 201909호 (2019.08.17)

/ 2021.09.05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