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팔월의 아침 / 김영남
덥다고 너무 덥다고
저리 가라고 밀어 보내지 않아도
머물고 떠날 때를 알고있는 여름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잠깐 머물다
금새 떠날 것을 알면서도
호들갑을 떨며 아우성을 치던 우리는
언제 그랬냐고 정색을 하며
가을을 반기겠지
짧디 짧은 가을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마치 가을이 영원히 있어 줄 것처럼 칭찬하다가
언제 떠났는지도 모르고
어느샌가 입김 호호 불면서
또다시 추위를 나무라며
문지방 너머 목 길게 빼고
봄이 오기를 마냥 기다릴 거다
그러면서
나이만 먹는다고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투덜거려도 보고
용기 없어 하지 못했던 것에
미련도 되씹어 보며
커다란 나이테 하나를
또 끙끙 둘러메고 앉아
문밖 건너 진달래 붉은 향기
가슴에 밀려들면
혹 서러워 눈물 흘릴지도 모르겠다
빨리 지나 가기를 바라지나 말고
어여 오라고 손짓이나 말지
그냥 혼자 조용히 흐르는 세월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만큼
가만히 놓아두고 때를 즐기며
덥던 춥던 깃털처럼 가볍게
하루 또 하루를 즐겨 살아주면
그것이 행복이고 참살이가 아니련가?
망개 열매를 따먹고 살아도
이승이 낫다는데
지금 살아 숨쉬고 머무는 여기 산천이
천국이고 낙원이 아니면
그 어드메가 무릉이고 도원인가?
창너머 수세미 꽃에 벌이 드나드는
늦팔월의 아침이다
/ 2021.08.17(화)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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