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이름을 부르는 일 /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비 갠 아침, 산책하다가 코끝을 스치는 짙은 향기에 나도 모르게 큰 숨을 들이켰다. 매혹적인 향기의 진원지를 찾아 주위를 살폈지만, 어디에도 꽃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끝에 겨우 찾아낸 것은 다름 아닌 쥐똥나무꽃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심어놓은 쥐똥나무가 마침내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풀어놓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성한 초록 잎 사이로 수줍은 듯 자잘한 흰 꽃송이를 내어달고 있어 향기가 아니라면 십중팔구 그냥 지나치기에 십상이다.
쥐똥나무 흰 꽃 위로 꽃향기를 따라온 뒤영벌 한 마리가 붕붕거리며 꽃 사이를 분주히 날고 있다. 그 모습이 귀여워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꽃 이름을 묻는다. 쥐똥나무꽃이라 했더니 미심쩍은 듯 뭔 나무 이름이 그러냐며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쥐똥나무란 이름은 가을에 열리는 까만 열매의 모양에서 비롯됐다. 얼핏 보면 열매의 생김새가 쥐똥과 흡사하여 그리 이름 붙여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1000여 종의 나무가 있고 남한만 하여도 약 600~700여 종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울 판이니 처음 접하는 나무 이름을 들으면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생소함에 당황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무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옛사람들이 얼마나 나무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나무마다 지닌 독특한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옛 사람들은 나무의 외양과 쓰임새, 수피나 잎, 꽃, 열매, 가시 등의 특징을 찾아 거기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나뭇가지가 돌려나며 직각으로 퍼져 층을 이룬다하여 층층나무, 나뭇가지가 정확하게 3개씩 갈라지는 삼지(三枝)닥나무, 멍석을 깔아놓은 것처럼 땅에 바짝 붙어 자라는 멍석딸기, 줄줄이 이어 자라는 줄딸기, 껍질도 속도 하얗고 길게 늘어져서 국수를 연상한다하여 국수나무 등은 나무의 생김새를 보고 붙인 이름이다. 그런가 하면 대팻집나무, 참빗의 살을 만든 참빗살나무, 고기잡이 도구로서 작살에 쓰인 작살나무, 윷을 만들기에 적합한 윤노리나무, 키나 고리짝을 만든 키버들과 고리버들, 조리를 만드는데 사용한 조릿대 등은 나무 자체의 쓰임새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흰 빛의 얼룩얼룩한 수피를 갖는 백송(白松), 검은빛 수피를 가진 흑피목(黑皮木)에서 검은 피나무가 되고 다시 변하여 된 가문비나무, 회갈색의 흰 수피인 분피(粉皮)나무가 변한 분비나무, 검은 소나무라는 뜻의 흑송(黑松)이 검솔을 거쳐 곰솔, 붉은 수피로 대표되는 주목(朱木), 내수피가 짙은 황색을 나타내는 황벽(黃蘗)나무 등은 수피의 색깔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잎 모양의 특징에 따라 붙여진 이름도 있다. 박쥐가 날개를 폈을 때 모양과 같다하여 박쥐나무, 잎이 갈라지는 모양이 손가락 8개 달린 손바닥 같은 팔손이, 7개로 잎이 갈라지는 칠엽수(七葉樹)가 대표적이다.
풀꽃 시인 나태주는 '풀꽃2'란 시에서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이라고 했다. 식물학자도 아닌 다음에야 모든 나무의 이름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사람이나 식물이나 이름만 알아도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일찍이 시인 박남준은 '이름 부르는 일'이란 시에서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플 수가 있다니"라고 했다. 지구라는 초록별의 가족으로써 꽃 이름 하나, 나무 이름 하나 부르는 일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 싶다.
글=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출처] 글로벌이코노믹 2021-06-02
/ 2021.07.30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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