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의 날'을 아시나요? /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온통 초록 세상이다. 피어나는 꽃을 찾아 부지런히 눈길을 옮기는 사이, 초록 그늘은 소리 없이 한껏 짙어져 여름을 향하고 있다. 초록이 기운을 더할수록 꽃빛은 야위어 가는 게 자연의 순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꽃이 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요즘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꽃이 산딸나무 꽃, 아까시나무, 찔레꽃, 쪽동백과 때죽나무 꽃과 같은 흰색 꽃들이다.
며칠 전, 숲길을 걷다가 잠시 다리쉼을 하려고 무심코 앉고 보니 쪽동백나무 아래였다. 바닥에 떨어진 꽃을 보고 고개를 드니 수천수만의 은종을 달아 놓은 듯 수많은 쪽동백 꽃들이 바람을 타며 흔들리고 그 꽃 위로 벌들이 날고 있었다. 잉잉거리는 벌떼들의 날갯짓 소리를 들으며 달콤한 쪽동백 향기를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숲길에서만 얻을 수 있는 소확행이다.
이처럼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유독 흰색 꽃들이 많은 이유가 초록의 숲에서 흰색이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벌들을 유인하기 위한 꽃의 전략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초록 바탕 위에 흰색이 눈에 잘 띄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인간의 입장일 뿐이다. 우리 눈에 흰색으로 보이는 꽃도 곤충의 눈에는 흰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과 달리 자외선 수용체를 지니고 있는 곤충들에게도 같은 색으로 보일 수 없는 것이다.
곤충의 시각에서 보면 흰색이 흰색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색 꽃에 벌들이 많이 날아드는 이유는 생물이 지닌 보상작용(compensation) 때문이다. 흰색 꽃은 다른 색의 꽃보다 색소에는 투자를 최소화 하는 대신 꽃가루받이 매개자에게 건넬 꿀, 꽃가루, 향기와 같은 선물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자연 속에선 '수수작용(give & take)'이 생존의 기본이다.
지난 5월 20일 뉴스에 온몸에 벌을 붙인 채 찍힌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유엔이 정한 '세계 벌의 날' 을 알리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5월 20일은 각종 환경오염 및 도시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 등으로 최근 개체 수가 격감하고 있는 꿀벌을 보존하고 생태계의 지킴이로서의 꿀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유엔(UN)이 제정한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이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꿀벌은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생산량의 약 70%에 해당하는 농작물의 수분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꿀벌은 주변 환경에 매우 민감한 곤충으로 꿀벌의 건강한 서식은, 곧 그 지역의 자연 생태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인 것을 보여주는 환경 지표종이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벌과 기타 수많은 꽃가루받이 곤충에 의해 수분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산업농에 의한 농약과 비료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로 인해 벌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어 급기야는 '벌의 날'까지 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만약 식물의 수분(受粉)을 담당하는 벌이 사라진다면 이와 연관된 식물군도 함께 멸종에 이르게 될 것이다. 식물이 사라지면 토양이나 기타 환경 조건에 영향을 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자연계는 벌 뿐만이 아니라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존재하는 것이 없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나름의 존재의 이유가 있다. 우리가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끊임없이 인간의 책임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탐화봉접(探花蜂蝶)이라 하여 벌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고 환경보존과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지구상에서 벌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벌의 날'이 제정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글=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출처] 글로벌이코노믹 2021-05-26
/ 2021.07.30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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