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곶자왈의 백서향 향기 / 백승훈 시인
“바람 부는 날이면 모든 길이 바다로 간다.” 어느 시인의 말이다. 굳이 이 말을 떠올린 것은 꽃바람의 진원지를 찾아 바다 건너 바람 부는 제주에 왔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봄은 오고야 말 테지만 코로나로 인해 숨 막히듯 답답한 겨울을 보낸 뒤라서 남보다 앞서 봄을 만나고픈 마음이 컸다. 굳이 제주를 찾은 또 하나의 이유는 곶자왈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생태나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곶자왈 방문은 일종의 성지순례와도 같다. 곶자왈이란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된 고유 제주 방언이다.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표준어로 ‘덤불에 해당한다. 곶자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제주의 독특한 지형으로 청수 곶자왈은 제주도 내 최대 운문산 반딧불이 서식지인 만큼 청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생태 숲이기도 하다.
일행 중 한 명이 굳이 곶자왈에서 빌레나무를 보아야 한다며 앞장을 섰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때까지 나는 빌레나무를 알지 못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빌레나무는 한국에서는 2003년 7월 9일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翰京面) 곶자왈의 낮은 지대에서 처음 발견된 마에사속(Maesa屬)의 아열대성 목본식물이다. 암수 딴 그루의 상록활엽 소관목으로, 높이는 1m 내외이며, 긴 타원형의 잎이 엇갈려난다. 똑바로 자라지만, 줄기가 땅에 닿으면 뿌리를 내리는 습성이 있고, 꽃은 4~5월 무렵 잎겨드랑이에 황백색으로 핀다,‘ 고 나와 있다.
일찍이 유홍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만약 빌레나무를 만나게 된다면 이전과는 달리 곶자왈을 생각하면 빌레나무가 부록처럼 따라올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빌레나무를 볼 수는 없었다. 반딧불이 축제가 열리는 청수곶자왈을 찾았는데 방문객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던 우리 일행은 다음 날 제주곶자왈 도립공원을 다시 찾았다.
곶자왈지대는 토양의 발달이 빈약하고 크고 작은 암괴(자갈과 바위)들로 이루어져 과거부터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불모지로 자연스럽게 숲이 형성된 곳이다. 지질적인 특성으로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빗물이 지하로 스미어 제주의 지하수를 함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한겨울에도 푸른 숲을 자랑하면서 제주 생태계의 허파로 불린다. 지질 및 지형적인 특성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유지될 수 있는 미기후환경을 지니면서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이 공생하고 있다. 광량이 적고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함몰지엔 습도가 높아 초본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하여 곶자왈의 바위층엔 항상 이끼가 덮여 있고 습도가 높은 지역엔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이 무성하게 자란다.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산책하기에도 편한 제주곶자왈 도립공원의 숲은 군락을 이룬 종가시나무를 비롯하여 구실잣나무, 녹나무, 아왜나무, 센달나무, 동백나무 등이 어울린 상록활엽수림과 때죽나무를 비롯하여 팽나무, 단풍나무, 곰의말채, 산유자나무, 예덕나무 같은 낙엽활엽수림으로 형성되어 있다. 육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수종들이 대부분이어서 그 낯선 나무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곶자왈 숲 산책은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지금 곶자왈의 숲은 제주백서향의 향기로 가득하다. 천리향으로도 불리는 제주백서향은 맑으면서도 은은한 향기로 숲 전체를 환상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순백의 작은 꽃들이 모여 두상꽃차례를 이루어 피어 신부의 부케를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답지만 천리향이라 부를 만큼 매혹적인 향기를 지니고 있어 형기로 말을 거는 꽃이다. 비록 빌레나무는 보지 못하였으나 곶자왈 탐방로를 돌아 나온 우리의 몸엔 꽃향기가 은은히 배어있다. 화향십리(花香十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하였는데 제주백서향의 향기는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는 듯 영원한 제주의 향기로 기억될 것 같다.
글=백승훈 시인
[출처] 글로벌이코노믹 2021-03-03
/ 2021.07.28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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