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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이종필 건국대 교수 (2021.03.24)

푸레택 2021. 3. 24. 23:27


■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과학적 성과에 대한 우선권이나 기여도를 둘러싼 크고 작은 논란은 사실 어느 시대에나 있다. 20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이 깔리고 웹 기반 서비스가 보편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고 심사받고 게재되는 모든 과정이 우편으로 진행되었다. 이때 학술지의 편집자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남의 공을 가로챌 수 있다. 접수된 논문을 잠시 보류해 두고 편집자가 거의 똑같은 내용의 논문을 써서 먼저 출판한다든지, 좀 더 양심적인 편집자는 투고자에게 공동저자로 함께 논문을 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결과만 놓고 보면 후자의 경우가 다윈-월리스의 사례와 비슷하다. 그래서 다윈이 월리스의 업적을 가로챈 게 아니냐는 음모론도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편집자가 투고자의 업적을 가로채는 일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이긴 하다. 그러다 90년대 초반 인터넷이 보급되고 이를 이용해 예비논문(preprint)을 별도의 저장소(arxiv.org)에 보관하고 유통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미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관리하다가 지금은 코넬 대학교에서 운영 중이다.) 학자들이 이제는 논문을 쓰면 학술지로 보내는 대신 전자논문 형태로 예비논문에 먼저 등록한다. 모든 예비논문에는 고유번호가 부여되기 때문에 누가 언제 무슨 논문을 등록했는지 거의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예비논문은 전문심사위원의 상호검토를 거친 논문이 아니어서 정식논문이 아니긴 하지만 학계에 무척 유용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학술지가 예비논문의 고유번호만으로도 투고와 심사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학술지에 실리지 않더라도 예비논문 자체로 인용이 많이 되고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예비논문은 등록한 순서대로 고유번호가 찍히기 때문에 어떤 업적에 대한 우선권이나 기여도를 평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만약 다윈 시대에 예비논문 시스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윈은 42년 초고와 44년 원고를 예비논문에도 등록하지 않고 그냥 묵혀뒀을 가능성이 높다. 월리스는 자신의 58년 논문을 다윈에게 보내는 대신 예비논문에 등록하고, 다윈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최신 논문을 읽고 코멘트를 부탁했을 것이다. 이 논문을 본 다윈은 경악했겠지만, 주변의 라이엘과 후커가 다윈을 다그쳐 그때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42년 노트와 44년 원고를 즉시 예비논문에 등록했을 것이다. 과학의 역사에서 동시발견의 사례는 많다. 지금도 이런 일이 허다하다.

내가 작업하고 있던 일과 비슷한 일을 이 세상 어디선가 다른 사람이 조금 더 빨리 마무리해서 예비논문에 올릴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의 작업이 한 발 늦었다고 그냥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비슷한 일을 해서 먼저 예비논문으로 발표했음을 논문에 밝히는 게 상례이다. 물론 이 경우 남의 예비논문을 보고 벼락치기로 자신의 이름으로 비슷한 예비논문을 작성해 등록하는 도둑질이 있을 수는 있다. 어느 시스템이나 구멍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그래도 예비논문 이전보다는 이런 도둑질의 개연성이 훨씬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보통은 이렇게 앞서거나 뒤서거니 나오는 논문들은 대체로 동시발견의 업적으로 인정해 준다. 다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윈과 월리스가 제시한 종의 진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같은 종 안에서도 개체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즉, 개체변이가 있다. 모든 사슴의 목과 다리의 길이가 다 같지는 않다.

둘째, 어떤 변이는 자식에게 유전된다. 어떤 사슴의 평균보다 긴 목과 긴 다리는 자식에게 대물림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사슴의 긴 목과 긴 다리는 자손에게 전해질 수도 있다. 진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자손에게 대물림되는 형질변화이다.

셋째,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개체 간의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모두가 해피하고 안전하게 잘 살면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도 개체들이 늘어나다보면 한정된 자원 때문에 생존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도태된다. 사슴이 많아지면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따먹을 수 있는 사슴들이 더 많이 살아남을 것이다.

넷째, 도태되지 않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개체는 자손을 남긴다.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형질을 대물림할 수 있는 개체라면 계속 자손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긴 목과 긴 다리를 가진 사슴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고 만약 그 형질이 후대에 전해진다면 그 후손들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위의 네 항목은 진화가 일어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즉, 진화가 일어났다면 네 가지 요소가 다 갖춰졌다는 말이고, 반대로 네 요소가 다 작동한다면 반드시 진화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이 중에서 셋째와 넷째, 즉 생존경쟁을 통해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아 자손을 남기는 과정을 '자연선택'이라 한다. 자연선택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자연선택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공선택이라는 말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익숙한 단어를 쓰자면 육종이나 품종개량이 여기 해당한다. 벼나 옥수수를 인간의 요구에 맞게 개량하거나 개 또는 비둘기를 인간 취향에 맞게 품종을 관리하는 일은 말하자면 인공선택이다. 인간은 오랜 세월 이미 인공선택으로 종의 진화를 이룩한 셈이다. 인간의 인위적인 선택 대신 자연 속에서의 생존경쟁을 통한 선택이 자연선택이다. 그래서 《종의 진화》 앞부분엔 지루하리만치 길게 비둘기 이야기가 나온다.
 
다윈의 진화론 하면 또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다. 적자생존은 다윈의 개념이 아니라 당대 사회학자였던 허버트 스펜서(1820~1903)가 1864년에 출간한 《생물학의 원리》에서 처음 사용했다. 흔히 적자생존이 자연선택과 함께 다윈 진화론의 핵심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적자’로 옮긴 ‘the fittest’가 최상급임에 유의하자. 이 단어를 그대로 옮기자면 적자생존이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자연선택은 1등만 가리는 과정이 아니다. 자연이 1등만 가려서 선택했다면 아마 거의 모든 생물종은 멸종했을 것이다. 자연선택과 잘 어울리는 표현은 최상급인 'the fittest‘라기보다 최재천의 주장처럼 비교급인 'the fitter’이다.

이는 마치 군대에서 ‘선착순 집합’으로 얼차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 20명의 부대원에게 선착순 10명으로 나무 돌아오기 얼차려가 주어졌다면, 굳이 내가 1, 2등까지 할 이유는 없다. 나머지 10명보다만 더 잘 뛰면 된다. 자연선택도 이와 비슷한 과정이다.

《종의 기원》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굉장한 논란과 논쟁도 뒤따랐다. 모든 생물종이 진화하고 인간도 예외가 아니라면 우리가 원숭이의 후손이냐 하는, 진화론을 접했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가졌을 법한 의문이 그때에도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나 또한 어렸을 때 다윈의 진화론을 접하고서는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유인원에 가깝게 진화되는 원숭이가 있다는 건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이런 통념은 다윈의 진화론보다 중세까지 유행했던 존재의 큰 사슬에 더 가깝다. 즉, 모든 생물이 하나의 큰 사슬 속에 각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여기에 진화의 개념을 적용하면 하등생물이 진화해서 고등생물이 되고, 그 정점에 인간이 있다는 식이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종의 가지치기식 분화, 즉 공통조상론이다. 이에 따르면 아주 오랜 옛날에 인간과 원숭이의 조상이 같았다. 그 어떤 분기점에서 인류와 원숭이는 서로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원숭이는 인간이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자체로 계속 진화해 영화 《혹성탈출》에 나오는 시저 같은 똑똑한 새 종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인류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오랜 미래에는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태어날 종이 출현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원숭이와 우리는 오래 전에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점이 포인트이다. 분기점 이전의 공통조상은 지금의 원숭이도 인간도 아니다.

지금도 진화론 하면 우리가 원숭이의 자식이란 말이냐는 질문이 나오는데, 다윈 시절에는 어땠으랴. 가장 유명한 일화는 1860년 6월30일 옥스퍼드 박물관 도서관에서 있었던 영국 학술협회 회의자리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진화론의 열렬한 옹호자 토머스 헉슬리(1825~1895)와 진화론을 경멸했던 윌버포스 주교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윌버포스는 헉슬리에게 원숭이가 할아버지 쪽 조상이냐, 할머니 쪽 조상이냐 하고 조롱하듯 물었다. 진화론의 반대론자들이 크게 박수치고 환호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헉슬리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의 재능을 천하게 팔아먹는 돈 많은 주교가 되느니 차라리 저는 원숭이의 자손이 되겠습니다.”

진화론은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냐 아니냐는 논란보다 현실에서 훨씬 더 심각하게 오용되기도 했었다. 다윈의 외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은 인류의 유전학적 품종개량학인 우생학을 창시했다(1865년). 우생학이 20세기의 나치즘과 만나 어떤 참혹한 짓을 저질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생존경쟁과 자연선택, 적자생존 등의 단어는 당시 번성하던 제국주의와 궁합이 잘 맞는다. 즉, 제국주의가 약소국을 침략해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은 자연선택의 일환이며 이는 자연의 순리라고 주장할 수 있다. 자연선택이라는 방패는 국제사회의 약육강식을 숨기기에 더없이 좋은 피난처이다.

한편 다윈의 진화론은 유전기제에 대한 설명이 없다. 유전은 진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근대적인 유전학은 마침 다윈의 동시대에 오스트리아의 한 수도사였던 멘델이 자신의 수도원에서 완두콩을 키우며 잉태하고 있었다. 그러나 멘델의 유전법칙(1865)은 당대에 빛을 보지 못했고 35년이 지난 1900년에야 다시 재평가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 20세기 초반 생물학의 가장 큰 숙제는 진화론과 유전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리학자로서 나는 19세기 물리학의 눈부신 성취에 당연히 가장 먼저 눈길이 기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 봤을 때 19세기 과학 분야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가장 위대한 성취 하나를 꼽는다면 역시나 《종의 기원》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과 이후로 인간의 인식은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넜고 20세기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과학 자체의 발전의 맥락에서 보자면 다윈의 진화론은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의 원리가 생물학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과도 같다. 코페르니쿠스의 원리란 일종의 민주주의적 원리로서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원리이다. 만약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면 지구는 우주에서 대단히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에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내쫓아 버렸다. 말하자면 ‘the One'에서 ’one of them'이 된 것이다. 과학의 역사를 좀 길게 보면 대체로 코페르니쿠스의 원리가 확장된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원리에 입각해 진화론의 의미를 설명하자면, 한마디로 인간이 더 이상 특별한 생물종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윌버포스 주교가 그토록 진화론을 혐오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인간이 더 이상 특별한 종이 아니라는 인식은 우리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한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윈은 정말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출처] 동아사이언스-사이언스N사피엔스(2020.10.15),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 필자 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 2021.03.24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