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라일락꽃' 도종환, 방문객 정현종, '낮에만 피우는 슬픈 꽃 참나리' 최명운 (2020.12.13)

푸레택 2020. 12. 13. 07:37







■ 라일락꽃 / 도종환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인 빛이 
창백하게 흘러낼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낮에만 피우는 슬픈 꽃 참나리 / 최명운

용문사 가는 길 옆
표범무늬 한 참나리꽃
빗방울 아랑곳 않고
환한 미소로
수레바퀴 세월 견디며 피었다

희롱당한 슬픔
꽃술 열매 여물지 못하매
그만 다행인가
이파리 으뜸 주아 품어
떨어뜨리는 반쪽 잉태
으스름 달엔
순결지켜야 할 반사

비련의 너는
아름다운 모습 숨겨야 하는
슬픈 꽃송이구나

/ 2020.12.13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