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며 가슴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 태야의 계절 8월,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태양의 계절 8월이다. ‘7말8초’라 불리는 7월 하순에서 8월 초순은 여름휴가의 절정기다. 예전에 직장에 다닐 때에는 이 맘 때쯤이면 늘 강원도로 여름휴가를 떠나곤 했다. 해마다 속초의 한 콘도를 예약하여 하루는 바닷가에서, 하루는 산속의 계곡에서 아이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올해의 8월은 폭우와 함께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휴가를 떠나는 일도 쉽지 않지만 곳곳에서 물난리가 나서 산사태로 가옥이 무너지고, 도로가 끊기고, 농경지가 침수되어 막대한 수해를 입었다는 뉴스가 꼬리를 물고 있으니 휴가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매일 걷던 숲길 산책도 당분간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집중호우가 잦아진 요즘은 산이나 계곡을 찾는 일도 매우 조심스럽다.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고립될 수도 있고 많은 비로 인해 지반이 약해진 탓에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위험을 자초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비가 잦은 여름, 숲 해설을 할 때 자주 하는 질문 중에 하나가 숲에서 갑자기 비가 올 때 참나무 숲과 소나무 숲 중 어디로 비를 피할까 하는 질문이 있다. 언뜻 생각하기엔 잎이 넓은 활엽수인 참나무 숲을 좋을 거라 생각하여 많은 사람들이 참나무 숲을 택한다. 하지만 정답은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 주변엔 덩굴식물이 자라지 않아 쪼그려 앉기도 편하고 빗방울도 덜 떨어진다.
흔히 잎이 넓으면 빗방울이 덜 떨어질 거라 생각하지만 솔잎은 가늘어도 전체 잎의 양은 참나무보다 훨씬 많아 비를 덜 맞는다. 연구에 의하면 침엽수 숲은 강수량의 51% 정도가 증발하지만 활엽수 숲은 38% 정도 증발한다고 한다. 햇빛 좋은 날 소나무 숲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참나무 숲보다 훨씬 어두운 것을 느꼈을 것이다. 솔잎이 촘촘하여 햇빛이 잘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자원의 3분의 2는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고 한다. 나무가 많은 숲은 마치 스폰지와도 같다. 여름철 집중호우가 내릴 때에는 식물과 토양이 물을 머금고 있다가 가물 때에는 물을 내뱉어 이른바 녹색댐이 되어준다. 숲은 비가 많이 올 때, 넘치는 빗물의 양을 줄여 홍수를 조절하기도 하고 가물 때에는 계곡의 물을 마르지 않게 하며 수질을 깨끗하게 정화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이란 명목 하에 당장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져 많은 숲이 파헤쳐지고 사라지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집중호우가 잦아진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숲을 잘 가꾸고 보존하기만 해도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는 있을 텐데 말이다.
구로나야기 테츠코의 소설 ‘창가의 토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며 가슴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폭우 때문에 숲으로 가는 길을 접고 아쉬운 마음에 창 너머로 도봉산을 바라본다. 내리는 빗발 사이로 구름에 반쯤 가려진 도봉이 수묵화의 배경처럼 흐릿하다. 묵묵히 비바람을 견디고 있을 숲의 나무들을 생각한다. 아무리 거센 눈보라도 언젠가는 멈추게 마련이고 억수같이 퍼붓던 장대비도 때가 되면 그치게 마련이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비가 개이면 숲으로 가서 나무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ㅡ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출처] 글로벌이코노믹 (2020.08.05)
/ 2020.12.12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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