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쑥부쟁이 사랑 / 정일근
사랑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
가을 들어 쑥부쟁이 꽃과 처음 인사했을 때
드문드문 보이던 보랏빛 꽃들이
가을 내내 반가운 눈길 맞추다 보니
은현리 들길 산길에도 쑥부쟁이가 지천이다
이름 몰랐을 때 보이지도 않던 쑥부쟁이 꽃이
발길 옮길 때마다 눈 속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
이름 알면 보이고 이름 부르다 보면 사랑하느니
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 모든 꽃송이
꽃잎 낱낱이 셀 수 있을 것처럼 뜨겁게 선명해진다
어디에 꼭꼭 숨어 피어 있어도 너를 찾아가지 못하랴
사랑하면 보인다, 숨어 있어도 보인다
♤ '애기똥풀'과 '무식한 놈' / 안도현
안도현은 한국 서정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다. 안도현의 '애기똥풀'과 '무식한 놈'은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 두 작품을 함께 묶어 살펴보는 이유는 이 두 작품이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유사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주변의 사소한 자연물을 소재로 하여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고 시인이 걸어가야 할 바른 자세를 일깨워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 애기똥풀 / 안도현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이해와 감상
우리는 아침저녁 산책길에서 풀 한 포기, 돌멩이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무심코 지나가기가 일쑤다. 화자는 중년이 넘도록 자기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애기똥풀’의 존재을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며, 소외된 존재에 무관심했던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이 시는 ‘애기똥풀’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자기 반성적 고백을 드러내는데, ‘~요’, ‘고’의 어미로 문장을 마무리하여 반성적 태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이 시에서 ‘애기똥풀’을 사소하고 소외 당하고 있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우선 ‘애기통풀’은 4월 하순부터 초가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자주 다니는 길가나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쌍떡잎식물로서 양귀비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이다. 꽃이 자그마하고 노란 색깔이며, 줄기를 자르면 그 단면에서 노란 액체가 나오는데 이것이 마치 애기들의 똥과 같다고 해서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지만, 너무 흔하다 보니 예쁜 꽃인데도 잡초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1연에서 화자는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미안하게 여기며, ‘얼마나 서운했을까요’라는 표현으로 ‘애기똥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2연은 화자의 부끄러움과 반성적 고백을 드러내고 있다.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들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말이다. 이것은 사소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 특히 사물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이를 주관적이고 독특한 시각으로 표현해야 하는 시인으로서의 부끄러움과 자기반성을 표출한 것이다.
■ 무식한 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 이해와 감상
이 시의 화자는 ‘나’에게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한다며 '절교(絶交)'를 선언한다. 그런데 이 시에서의 '절교'는 '나'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화자 자신에게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화자는 들꽃에 대해 무관심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참회하고 있다.
형식상 2연으로 된 이시는 사실상 한 문장을 두 연으로 나누어 놓은 셈이다. 이처럼 마지막 행을 2연으로 독립시킨 것은 마지막 행에 시상을 집중시켜 '절교'를 단호하게 선언하기 위한 것이다.
1연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 못 하는 '나'를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에서 '너'는 다름 아닌 화자 자신이다. 그런데 화자는 화초류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해 절교 당하는 것은 그 조건의 수준이 너무 높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보통 무관심하거나 화초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해서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하고 이들을 통칭해서 들국화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민들레와 씀바귀, 진달래와 철쭉, 아카시아와 조팝나무,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례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사물의 이름을 혼동해선 안 된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은 쑥부쟁이와 구절초의 존재를 바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또한 쑥부쟁이와 구절초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자연을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식한 놈’일 수 있다.
2연은 고작 한 행으로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화자가 자신에게 ‘나여’라고 하면서. 절교를 선언하는 발상이다.발상이 매우 기발하다. 발상 자체를 바꾸어 봄으로써 자연을, 사람들을, 세계를 다른 방면으로 해석하고,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세계를 또 하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무식한 놈'은 구어체 표현을 사용하여 일상에서 목격한 잘못된 우리말 사용 실태를 서술하면서,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사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남상학 시인)
▲작자 안도현(安度眩, 1961~ )
시인.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이 당선되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보편성을 지닌 쉬운 시어로 본원성을 환기하는 맑은 서정을 담아내고, 개인적 체험을 주조로 하면서도 사적 차원을 넘어서 민족과 사회의 현실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내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모닥불》(1989),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 《그리운 여우》(1998), 《바닷가 우체국》(1999),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2004),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2015) 등이 있다.
/ 2020.11.18 편집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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