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2020.07.25)

푸레택 2020. 7. 25. 09:38








●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김재진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온다던 소식 오지 않고 고지서만 쌓이는 날
배고픈 우체통이
온종일 입 벌리고 빨갛게 서 있는 날
길에 나가 벌 받는 사람처럼 그대를 기다리네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까닭 없이 자꾸자꾸 눈물만 흐르는 밤
길에 서서 허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네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한 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빈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백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 김재진의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중에서

/ 2020.07.25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