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자연생태] 잠자리의짝짓기와 사랑의 징표 하트 (2020.06.21)

푸레택 2020. 6. 21. 16:55

 

● 잠자리의 짝짓기와 사랑의 징표 하트

사랑!!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체들은 생애 어는 순간에 종의 생존, 혹은 번식을 위해 짝짓기를 하게 된다. 동물계에서 성충 시기가 다년생인 척추동물들은 수 년에 걸쳐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며, 성충 시기가 1년 내외인 무척추동물들인 곤충들은 생애 일정 싯점에 제한적인 짝짓기 시기를 갖게 된다. 특히 잠자리는 번식기가 없는 유충시기는 수 개월~수 년이지만 번식기가 있는 성충의 시기는 1년 미만이다. 수 개월의 성충 시기에 단 한번의 번식기가 있으며, 번식기의 수컷들은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해 분주하고 투쟁적인 경쟁을 한다.

암컷들은 암컷대로 우성인자를 가진 후손을 남기기 위해 짝짓기 경쟁에서 이긴 수컷들을 받아들인다. 잠자리 수컷들의 짝짓기 경쟁은 다른 곤충의 수컷보다 매우 투쟁적이고 공격적이다. 짝짓기 중인 수컷을 공격하여 암컷을 빼앗아 취하는 것은 물론 산란중인 암컷에게 달려들어 암컷의 저장낭에 남아 있는 수컷의 정자를 빼내어버린 후 자신의 정자를 전달하는 새로운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잠자리 수컷의 정자는 척추동물의 정자처럼 정충이 아닌 델 형태의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수컷의 교미기는 갈고기 형태로 생겼으며 덩어리져 있는 정자를 쉽게 꺼낼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수컷의 교미기는 배 제2~3마디에 있으나 정자를 생산하는 장소는 제9배마디에 위치하고 있다. 암컷과의 짝짓기 과정에서 제9배마디에서 생성된 정자는 제2~3배마디의 교미기로 옮겨지게 된다. 이것을 '이정移精행위'라고 하며, 교미기는 자신의 정소에서 정자를 추출하는 역할 및 암컷과 교접시 정자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정소에서 정자를 빼내는 교미기의 역할은 추후 짝짓기과정을 마친 암컷의 저정낭에 있는 이전 수컷의 정자를 빼내는 역할도 동시에 하게 된다. 수정은 암컷의 저정낭에 보관된 정자가 산란 시점을 알이 암컷의 질을 통과하게 되며, 그때 저정낭에 보관된 수컷의 정자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진다. 즉 짝짓기 후 수컷은 암컷이 산란을 하여야 비로소 자신의 후세가 되는 알과의 수정이 진행되므로 산란을 마칠 때까지 암컷을 붙들고 산란을 유도하거나 산란하는 암컷의 주위를 맴돌며 다른 수컷이 암컷을 넘보는 것을 쫓아내는 이른바 '산란경호'를 하게 된다.

이처럼 잠자리는 왜 다른 곤충들처럼 암수가 부여잡고 짝짓기를 하지 않고 긴 배를 서로 교차해가면서 복잡하고 어려운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짝짓기를 하는 것일까? 또 짝짓기 하는 쌍쌍의 잠자리들을 보면 암,수가 하트 모양으로 다른 곤충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불편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곤충들의 짝짓기와 잠자리의 짝짓기 생활양식과 형태적 특징은 매우 다르다. 그 이유는 잠자리가 고시류의 곤충이기 때문이다. 즉 겨드랑이에 날개를 접어 붙이는 신시류의 곤충과는 달리 날개를 펴고 생활하는 잠자리는 대표적인 고시류의 곤충이기 때문이다. 청실잠자리 종류 및 잠자리아목의 잠자리들은 항상 날개를 펴고 생활하기 때문에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은 다른 신시류의 곤충들처럼 암컷 위에서 암컷을 부여잡을 수 없다. 날개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날개를 접고 생활하는 실잠자리목의 잠자리들도 평상시에는 날개를 접어 생활을 하지만 짝짓기를 위해 수컷이 암컷을 부여잡을 수 없다. 배위에 포개어 얹지 않고 날개가 세워진 형태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잠자리들은 날개를 펴고 있거나 배 위에 세워져 있는 형태로 생활하기 때문에 암컷의 배위에 밀착하여 짝짓기의 행위를 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모든 생물의 종은 종의 보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짝짓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날개를 접을 수 없는 고시류의 잠자리는 신시류의 곤충과 달리 교미를 위한 부속기관이 필요하게 되어 수컷의 배 끝에 3개 혹은 4개의 교미부속기가 형성되었다. 또한 교미부속기로 암컷의 목이나 앞가슴을 부여잡으면 제9마디의 정소는 암컷의 머리 쪽에 위치하게 되어 암컷의 교미기와 교접할 수 없는 위치가 된다. 그러므로 정소의 정자를 짝짓기 할 때 암컷과 교접 위치인 제2-3배마디의 교미기로 이송을 하여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잠자리들의 짝짓기 모습은 암컷의 등이나 배위에 올라탄 자세가 아닌 긴 배를 서로 교차한 자세를 하게 된다.

이 모습은 마치 하트의 모양으로 이루어지는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과 연관된 하트의 문양은 이 잠자리의 짝짓기의 형태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트의 문양은 나비와 노린재 등 자연계 여러 곳에 발견 할 수 있지만 love is heart! 즉 사랑이 하트와 연관 되어지는 것은 오직 잠자리의 짝짓기 모습뿐이다.
[출처] 월간 [자연과 생태] 2009-9월호 발췌

● [권오길의 자연이야기] 고추잠자리의 교미

아니! 저 가을 하늘에 무슨 ‘고추’가 저렇게 많이도 떠다닌단 말인가!

고추잠자리다!
여름 내내 높은 산에서 살던 녀석들이 늦가을이 되니 제가 태어난 고향, 물가로 알 낳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100여종의 잠자리 중에서 가을을 대표하는 배 붉은 고추잠자리 무리가 20여종이나 된다.

잠자리를 청령(蜻蛉), 청정(蜻蜓)이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dragonfly'인데, 우리말로 풀어 보면 우습게도 ‘용파리’가 된다. 아무튼 놈들은 잠자리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두 쌍의 날개는 앞뒤 모두 같고, 곱고 투명하다. 그래서 모시같이 얇고 고운 천을 ‘잠자리 날개 같다’라고 한다. 눈이 구슬만한 왕잠자리도 필자가 어릴 때는 흔했는데 이제는 눈을 닦고 봐도 없다. 인간이 마구잡이로 망나니짓을 해대니 잠자리까지 지구를 떠나고 있다.

잠자리는 식물의 조직 안, 축축한 흙, 물 속의 나무토막 같은 곳에서 산란한다. 2주일이면 부화하여 유충인 ‘수채’가 된다. 수채를 우리말로는 ‘학배기’라 부른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1년에서 수년까지 물 속에서만 산다. 학배기는 턱이 발달해 장구벌레나 실지렁이, 올챙이, 다른 수채들도 거리낌없이 잡아먹는다. 이 학배기가 잠자리가 되면 올챙이와의 관계는 역전(逆轉)된다.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하면 거꾸로 개구리가 잠자리를 잡아먹으니 하는 말이다. 사람 팔자도 모른다. 수채는 물에 살면서 10~15번 껍질을 벗는다(탈피할 때마다 몸이 커진다).

잠자리 유충들은 항문과 연결된 직장(直腸)아가미나 꼬리 끝에 생긴 꼬리아가미로 숨을 쉰다. 직장아가미는 급할 때 물을 세차게 똥구멍으로 내뿜어(제트 분사) 앞으로 쭉 내빼는 데도 쓴다니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다. 잠자리는 나비와는 달리 번데기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불완전변태(不完全變態)를 한다. 애벌레는 물 속의 생활이 끝날 때면 연못가 식물의 줄기로 기어올라 날개펴기(우화, 羽化)를 한다. 애벌레의 머리 부분과 가슴 부분이 부풀어 오르고 등짝이 Y자로 짜개지면서 드디어 잠자리가 빠져나온다.

잠자리 두 마리가 앞뒤로 나란히 달라붙어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것을 흔히 ‘결혼비행’이라 하는데, 그것은 교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짝짓기하기 위한 전희(前戱, foreplay) 행위다. 앞뒤로 붙어 나는 잠자리 중에서 어느 것이 암놈이고 수놈일까? 잠자리 수컷은 배 끝에 집게가 있어서 그것으로 암컷의 목줄기를 꽉 잡고는 그렇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앞의 것이 ♂, 뒤의 것이 ♀이라는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수컷과 암컷의 크기는 큰 차이가 없으나 수놈의 배(복부)가 훨씬 더 붉은 편이다.

수컷은 짝짓기할 시기가 되면 다른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순찰을 돌면서 심한 텃세를 부린다. 짝짓기 상대를 찾은 수컷은 암컷의 머리채를 낚아채고는 몇 분 동안 그렇게 끌고(사랑하며) 다닌다. 연못이나 웅덩이 주변의 풀밭에 자리를 잡고 짝짓기할 자세를 취한다. 암놈 생식기는 10개의 배 몸마디 중에서 9절(아홉째 마디)에 있다. 수놈의 교미기는 2개다. 수놈도 9절에 생식기가 있고, 그것 말고도 2~3절에 부생식기(副生殖器)가 있다.

암컷이 여섯 다리로 수놈의 배를 거머쥐고 자기 몸을 둥글게 구부려 생식기를 수컷 가슴 부위에 있는 부생식기에 갖다 댄다. 수놈이 정자 덩어리를 부생식기에 붙여 두면 그것을 암놈이 받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짝짓기다. 아직도 목이 잡혀있으니 이때의 자세가 하트(heart) 모양과 비슷하다. 짝짓기가 끝났지만 암수가 여전히 달라붙어 있는 상태에서 연못이나 웅덩이에 알을 낳는다. 왕잠자리나 실잠자리는 창포 같은 부드러운 식물의 줄기에 배 끝을 대고 연(連)해서 알을 낳고, 그밖에 대부분의 잠자리는 물 속에 그냥 알을 떨어뜨린다. 잠자리가 물 위를 파문을 일으키면서 나는 것은 알 낳을 장소를 살피는 행위이다.

곤충은 어느 것이나 환경에 민감한 지표생물(指標生物)들이다. 과거에 그 많던 고추잠자리도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고들 한다. 실제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모두가 자연 지킴이가 되어보자! / 권오길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 2020.06.21 편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