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봄꽃산책] 사랑의 기쁨, 정열의 철쭉(2), 홍릉수목원 (2020.04.12)

푸레택 2020. 4. 13. 20:58

 

 

 

 

 

 

 

 

 

 

 

 

 

 

● 철쭉 (진달래과, Smile Rosebay, 躑躅)

 

학명: Rhododendron schlippenbachii

 

철쭉은 양(羊)과 관련이 깊다. 《본초강목(本草綱目)》주에 보면 “지금의 척촉화(躑躅花)는 양이 잘못 먹으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양척촉(羊躑躅)이라 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언제부터 접두어인 ‘양’이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척촉으로 기록된 문헌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아 양척촉과 척촉을 같이 쓰지 않았나 싶다.

 

지리산 바래봉의 유명한 철쭉 군락지는 양들이 만든 예술작품이다. 1971년, 이 일대에는 호주의 도움을 받아 면양목장을 설치하고 양떼를 놓아 길렀다. 먹성 좋은 양들이 다른 나무들은 모두 먹어치웠지만 철쭉은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철쭉 종류에 글라야노톡신(grayanotoxin)이란 독성물질이 들어 있다는 것을 양들은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봄의 끝자락인 5월 중하순에 들어서면 소백산, 지리산, 태백산 등 전국의 높은 산꼭대기에서 군락으로 자라는 철쭉은 연분홍빛 꽃 모자를 뒤집어쓴다. 삭막한 높은 산꼭대기의 풍경을 화사함으로 바꾸어주는 봄꽃의 대표 자리에 언제나 철쭉이 있다. 원래 철쭉은 이렇게 산꼭대기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지만, 적응력이 높아 마을 근처의 야산에서도 흔히 자란다.

 

아름다운 철쭉꽃을 두고 옛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기록에 처음 철쭉이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이야기다. 수로부인은 신라 최고의 미인으로 성덕왕(702~737)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한 남편 순정공을 따라가게 된다.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낭떠러지 꼭대기에 활짝 핀 철쭉꽃을 보고 꺾어서 가지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올라가려 하지 않았다. 마침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늙은이 하나가 꽃을 꺾어 부인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꽃 중에서 철쭉꽃을 미인에 비유한 것이다. 이름 역시 꽃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가던 나그네가 자꾸 걸음을 멈추었다 하여 철쭉을 나타내는 ‘척(躑)’에 머뭇거릴 ‘촉(躅)’을 썼다고 한다. 척촉이 변하여 철쭉이 되었고, 다른 이름인 산객(山客)도 같은 뜻이다.

 

《동국이상국집》, 《목은집》, 《사가집》, 《완당집》 등 우리의 옛 시가집에는 철쭉꽃의 아름다움을 읊은 노래가 수없이 등장한다. 선비들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꽃을 감상하고 지은 시가 아니라 대부분 정원에서 키우는 철쭉을 보고 시상(詩想)을 얻은 것 같다.

 

철쭉은 전국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으며,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려져 자란다. 철쭉은 키 2~3미터의 작은 나무이나 강원도 정선 반론산에 있는 천연기념물 348호 철쭉은 외줄기이며 키 4.5미터, 줄기둘레 84센티미터, 나이가 200년에 이른다.

 

잎은 꽃과 거의 같이 피는데, 작은 주걱모양의 갸름하고 매끈한 잎이 다섯 장씩 가지 끝에 빙둘러가면서 붙어 있다. 꽃도 다섯 장의 꽃잎이 살짝 주름이 잡혀 있으며, 아래가 서로 붙어 있어 전체적으로는 깔때기모양이다. 꽃잎의 안쪽에는 주근깨가 잔뜩 박혀 있고, 길게 내민 수술이 만들어내는 꽃모양은 수수하면서도 깔끔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양도 먹지 않은 식물이니 철쭉 꽃잎은 먹을 수 없다.

 

철쭉은 꽃구경뿐만 아니라 몸체도 다른 쓸모가 있다. ‘척촉장(躑躅杖)이라 하여 지팡이로 썼다’는 옛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철쭉은 1854년 4월 독일의 해군제독 바론 슈리펜바흐(Baron Schlippenbach)에 의하여 처음 소개되었다. 군함 페리스 호로 우리나라 동해안을 몰래 측량할 때 철쭉과 버드나무를 비롯한 식물을 채집해 갔는데, 오늘날 철쭉의 학명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비슷한 종류에 산철쭉이 있다. 철쭉 역시 산에서 자라는데, 산철쭉이란 이름 때문에 좀 혼란스럽다. 산철쭉은 잎 모양이 새끼손가락 정도의 길이로 철쭉보다 훨씬 날렵하고, 꽃 빛깔은 붉은빛이 많이 들어가 진달래에 가깝다. 철쭉과 생태가 비슷하나 꽃이 더 아름다워 예부터 정원수로 많이 심었다.

 

[출처] 박상진 교수의 《우리 나무의 세계 1》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