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풀꽃산책] 한가위 영글이누리길 가을 풍경 (2019.09.13)

푸레택 2019. 9. 13. 17:19

 

 

 

 

 

 

 

 

 

 

 

 

 

 

 

 

 

 

 

 

● 영글이누리길의 가을 풍경

 

오늘은 추석 한가위, 햇살 따사로운 오후 풀꽃 산책 길을 나섰다. 내가 사는 식사동 위시티 아파트 주변에는 곳곳에 논이 있다. 봄에 모내기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벼가 알알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어느 논에는 지난 태풍 때문인지 벼가 쓰러져 있다. 골목길로 접어드니 성묘를 가는 한무리 가족들이 산비탈로 올라간다.

 

어느 집 마당엔 목화 열매가 하얀 솜을 매단 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탐스럽게 여물고 있다. 길모퉁이엔 약초로 쓰이는 어저귀가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맨드라미와 설악초도 한창이다. 행복한교회 앞뜰에는 교회 이름만큼이나 행복하고 순결하게 피어난 꽃범의꼬리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영글이누리길이라는 안내표지판을 따라 산길로 접어들었다. 숲속 오솔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공양왕릉과 길상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나는 길상사 서낭당 고개길로 걸음을 옮겼다. 영글이누리길에는 문화유산과 옛 역사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영글이는 오래전 이곳에 글방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은 이성계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쫒겨나 왕비와 함께 어느 마을 골짜기에 숨어들었는데 그 소문을 듣고 고개너머 어침사의 스님들이 몰래 밥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후 왕이 숨어든 마을은 왕릉골이라고 부르고 밥을 해 준 사찰이 있던 마을은 식사동(食寺洞)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서낭당고개길은 이곳 식사동과 주교동이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서낭당고개 정상에는 서낭당이 있고 오색천과 옷이 걸려있어 혼자 넘기는 무서운 느낌이 드는 곳이라 적혀 있다. 나는 그곳 긴 골짜기길이 아닌 반대쪽 짧은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골짜기엔 밤나무가 밤을 가득 매달고 있다.

 

길을 따라 내려오며 가을꽃 산박하와 고마리 그리고 독활, 오가피나무, 두릅나무를 만났다. 어느 집 울타리엔 호박이 영글고 길가엔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참 평화롭고 따뜻한 풍경이다. 우리네 삶도 이처럼 평화로울 수 없는 걸까? 영글이누리길을 걸으니 마음이 절로 평온하다. 오늘 밤엔 한가위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 김영택 2019.09.13(금) 한가윗날 저녁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