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어판 저자 서문
《다윈의 물고기》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영광입니다. 국제로봇연맹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노동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이 631대로 전세계 로봇산업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한국보다 더 큰 시장에 치중하는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뉴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천에 로봇랜드 테마파크가 개장하면 로봇에 대한 한국인의 열정과 재능을 전세계인이 알게 될 겁니다. 저는 수생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인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이 로봇 물고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연구성과를 올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백건대 저는 한국의 아이로AIRO 사에서 만든 지능형 해양로봇 미로MIRO를 좋아합니다. 생물다양성 옹호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미로에서 진행한 상업적 진화를 높이 평가합니다. 미로는 환경에 적응하여 여러 종으로 진화했으며 심지어 같은 종 안에서도 여러 유형으로 갈라졌습니다. 게다가 미로는 제 내면의 인지과학자가 인지검사를 해 보고 싶을 만큼 자율적인 행동을 보여줍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제 내면의 생물학자는 여러 종류의 미로를 실시간으로 진화시켜 고대의 물고기, 최초의 척추동물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검증해 보고 싶습니다.
이런,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여러분이 이 책에서 보게 될 것이 바로 이 작업입니다. 저는 전기 양이나 로봇 물고기를 꿈꾸지는 않지만 뇌, 몸, 행동, 진화를 모형화하는 로봇을 제작하여 물고기와 척추동물에 대해 알아낸 것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무척 기쁩니다. 이것은 새로운 발견법이며 오래 전에 사라진 생명체의 역동적 과정을 재구성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학적 방법입니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결코 진화하지 않은 것과 아직 진화하지 않은 것도 탐구할 수 있습니다.
《다윈의 물고기》를 번역한 노승영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는 저의 관용표현과 비유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으며, 과학적 세부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일에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인지과학을 전공한 그의 배경이 이 책에서 한껏 발휘되었으리라 믿습니다.
/ 존 롱 배서대학, 2017년
☆ 로봇을 '진화'시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진화를 연구하기 힘든 이유는 생명의 역사가 과거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물들을 지금의 모습으로 적응시킨 과거의 극적사건들을 목격한 적이 없다. 하지만 해양생물학자이자 생물로봇공학 전문가 존 롱은 이 문제를 해결할 기발한 방법을 찾아낸다. 롱은 생김새와 행동이 멸종 동물과 비슷한 로봇을 만들어 이 로봇들이 진화적 압력을 겪고, 짝짓기와 자원을 놓고 경쟁하고,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도록 한다.
한마디로 로봇에게 생명 경기를 시키는 것이다. 《다윈의 물고기》에서 존 롱은 진화하는 생물로봇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현생종과 멸종종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진화하는 생물로봇은 오래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진 생명체를 모방하여 예상치 못한 환경변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 있다. 이를테면 자율로봇의 가동부품인 등뼈를 생체역학적으로 정확하게 모형화하면 최초의 척추동물에서 등뼈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롱이 보여주듯 이 로봇들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기술적 난제를 스스로 그러니까 어떤 해법이 효과가 있을지 사람이 알려주지 않아도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진화능력에 있다. 심지어 단순한 로봇도 복잡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사람이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지능을 학습하거나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놀라운 발상은 공학, 설계 심지어 전쟁의 모습을 영영 바꿔놓을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이 한껏 발휘된 《다윈의 물고기》를 읽고 나면 여러분은 진화와 로봇 지능, 그리고 생명 자체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 왜 하필 로봇이지?
"저는 생물학자입니다. 로봇을 연구하죠."
내가 하는 연구를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설명하려고 할 때마다 난감했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에게 미국 국립과학재단에서 로봇 제작으로 생물학 연구비를 받았다는 말을 꺼냈더니, 그 친구가 내 말을 가로막고 물었다.
"로봇이 생물학과 무슨 상관이야?" 나는 이 질문을 피할 길이 없음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내 지도 학생이나 나 자신이 우리의 새롭고 신기한 연구를 생물학자들에게 소개할 때마다 이 질문이 맨 먼저 터져나올 터였다. 뭐가 문제일까?
우선 생물학자들은 로봇을 연구하지 않는다. 이들이 연구하는 것은 생물, 그리고 생물의 환경과 진화사다. 이들에게 기계는 열대우림에서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는 도구, 생체역학적 속성을 측정하는 기구, 산호초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한 이동수단일 뿐이다. 내 친구가 잘라 말했듯 기계는, 특히 로봇은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생물학과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내 관점에서는 상관이 있다. 나는 연구비 신청서에 쓴 문구로 반격을 시도했다.
"멸종한 척추동물을 모형화하는 데 로봇을 이용하지." 내가 한 말은 대답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에 가까웠으므로 그는 오른쪽 눈썹을 치켜들며 상냥하게 대꾸했다. "그렇군. 잘 되길 바랄게."
그것으로 대화는 종료되었다. 더 나은 대답을 찾아야 했다. 로봇이 아무리 멋지더라도 그 늠름한 자태만으로는 생물학에서의 쓸모를 입증하기에 부족했다. 이것은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나야 연구비를 받았으니 그렇다 쳐도 우리 실험실의 학부생들은 괴짜 교수 밑에서 연구한다는 소문이 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랜 논의 끝에 해법을 찾아냈다. 실제로 우리가 마주치는 생물학자들의 절반 가량은 이 답변에 수긍했다. 우리는 생물계의 두 모형, 즉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모형과 로봇에서 작동하는 모형이 같다고 대답했다. 어쨌든 둘 다 기계니까. 이미 컴퓨터는 모형화, 신경망, 포식자·피식자 상호작용, 바이러스 진화, 배회하는 티라노사우루스를 비롯해 생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사실 전산생물학computational biology은 현재 각광받는 분야이며 '학계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선택해야 할 분야'를 다트판으로 만든다면 50점짜리 가운데, 불스아이다. 로봇이란, 여기서는 이동로봇을 일컫는데, 한마디로 스스로 움직이는 컴퓨터다. 로봇은 명령 (소프트웨어)을 실행하여 결과를 내놓는 기계다.
물론 컴퓨터의 결과물과 로봇의 결과물은 달라 보인다. 컴퓨터에서 출력되는 이진수 비트는 숫자를 나타내며 화면 색깔에서부터 수학식, 전자책까지 모든 것을 이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 로봇의 출력은 행동으로 나타나지만 행동의 바탕에 깔린 모든 것은 컴퓨터와 똑같이 비트다. 그렇다고 해서 로봇과 컴퓨터가 다르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IBM 수석 엔지니어 제프 스태튼은 컴퓨터를 뒤집으면 로봇이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의 킴퓨터는 네트위크로 연결되어 있고 대부분 다른 컴퓨터에서 입력을 받아 결정을내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판을 두드릴 일이 별로 없는 데 반해, 로봇은 안에 컴퓨터가 들어 있지만 자신의 센서를 통해 수집한 정보만을 토대로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로봇이 보내고 받는 메시지는 물리적이다.
이동로봇은 여느 컴퓨터와 달리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자율로봇에게는 있지만 컴퓨터에는 없는 것을 일컬어 행위자성agency이라고 한다. 로봇이 생물학과 무슨 상관이냐는 동료의 질문에 대한 최종 답변은 '자율적 행위자성'이다.
<지은이> 존 롱John Long: 존 롱은, 의아할지도 모르겠지만, 동물을 연구하기 위해 로봇을 이용하는 생물학자다. 그것도 멸종된 동물을 말이다. 롱은 멸종된 종들이 어떻게 얼마나 진화했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은 바가 있어 로봇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하기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로봇 물고기 태드로는 사라진 흔적과 굳은 화석을 넘어서 멋지게 제 몫을 해주었다. 더욱이 인간의 컨트롤 없이 독자적으로 말이다.
《다윈의 물고기》는 저자 롱을 포함해 '재미를 추구하며 근사한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너드들'인 공동연구자들이 생물로봇과 함께 고군분두한 여정을 펼쳐 보여준다. 아! 존 롱은 배서대학Vassar College 생물학·인지과학 교수다. 배서 로봇공학 혐동과정 연구소 소장이며, 생물학과를 공동설립하여 학과장을 맡고 있다. 롱이 만든 로봇 태드로와 마들렌은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해 여러 언론에서 소개되었고, 롱은 <디스커버리 채널>과 <히스토리 채널>에서 자신의 로봇으로 진화를 가르쳤다. 《다윈의 물고기》는 이 재미있는 저자의 칫 번째 책이다.
http://pages,vassar, edu/darwinsdevices
<옮긴이> 노승영: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인지과학 협동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회사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환경단체에서 일했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한다. 옮긴 책으로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산아가도 괜찮은가》,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 노엄 촘스키의 《촘스키, 희망을 문다 전망에 답하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의 《이단의 경제학》 외에도 《동물에게 배우는 노년의 삶》,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그림자 노동》, 《만물의 공식》, 《총을 든 아이들, 소년병》, 《문화 유전자 전쟁》 등이 있다.
☆ <서평> 왜 하필 로봇이지?
해양생물학자가 쓴 로봇공학 책이라면 좀 수상쩍게 들리겠지만, 《다원의 물고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존 롱은 멸총 척추동물의 진화라는 경이롭고도 방대한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롬의 연구가 혁신적인 것은 전산생물학에서 으레 쓰는 소프트웨어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체화된 로봇을 모형으로 활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수다에 여러 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가벼움 아래에는 생체모방학에 대한 확고하고도 강력한 논증이 깔려 있다. 탄탄하고 단도직입적인 책이다. 《다윈의 물고기》 덕에 생체모방학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한 가지 더, 이 책에서는 과학적 서술과 유머 사이사이로 과학철학의 보석이 교묘하게 숨겨진 채 빛을 발한다. -<네이처>
존 롱이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물고기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로봇이 생물의 물리적 모형이 될 수 있고, 진화하는 생물로봇에서 생물의 진화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며, 로봇의 상호 작용으로 (포식자와 피식자 같은) 공진화의 역학을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윈의 물고기》는 과학이 언제나 모험이며 신기술이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더 빨리, 더 멀리 데려간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뉴 사이언티스트>
존 롱이 올챙이 로봇 태드로를 설계하고 실험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수준 높은 과학을 이해하는 남다른 통찰을 담고 있다. 예상치 못한 실험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롱은 유쾌한 유머감각과 더불어 과학적 발견과 우아한 진화 메커니즘에 대한 경외감과 열정을 보여준다. 본격 과학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이책은 기술과 생물학의 만남을 탐구하는 매촉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실험실에서든 부엌에서든 무언가를 만들어보면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이해가 넓어진다. 이 책에서 존 롱은 헤엄치는 로봇을 만들어 헤엄치는 물고기의 진화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모형은 먹이를 찾거나 먹이가 되지 않는 능력에 자연선택 과정이 작용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구현한다. 이책은 좌충우돌하는 진짜 세상에서의 과학에 대한 개인적 기록이다. 늘 깔끔하지는 않지만 해보면 매우 중독성 있고 읽어보면 매혹적인 일, 바로 우리 실험과학자들이 하는 일에 대한 책이다. - 스티븐 보겔Seven Vogel(듀크대학 제임스 B. 듀크 석좌교수)
존 통의 매혹적인 책 《다윈의 물고기》에서 로봇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열어주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롱은 생물학과 공학의 경계에서 흥미진진한 과학이야기를 들려주며 과학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뜻밖의 잠소에서 어떻게 우리 자신에 대한 통찰이 생길 수 있는지 보여준다. - 닐 슈빈Neil Shubin(시카고대학, 《내 안의 물고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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