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함께걷기] (1) 부용리 친환경농장, 양수리 두물머리 물레길 걷기, 400년 느티나무 (2019.06.05)

푸레택 2019. 6. 6. 21:32

 

 

 

 

 

 

 

 

 

 

 

 

 

 

 

 

 

 

 

 

● 부용리 친환경농장, 양수리 두물머리 물레길 걷기

 

햇살 따사로운 지난 6월 5일, 신현 5인방 정기모임을 양수리에서 가졌다. 남양주 부용리에 있는 서울특별시 친환경농장을 먼저 찾았다. 천왕님이 이곳 텃밭에서 직접 심고 가꾼 상추를 한 봉지씩 나누어 준다. 해마다 기쁨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친구가 참 고맙다.

 

낭만과 쉼이 있는 두물머리 물레길을 걷고 연밭에서 연잎밥정식으로 점심을 한 후 개양귀비 꽃물결 넘실대는 남양주 '물의 정원'을 산책하였다. 초여름의 청명한 하늘빛도 눈부시게 곱거니와 나무와 풀꽃, 물길이 어우러진 두물머리 물의 정원 풍경도 참으로 평온하고 정겹다.

 

● 느티나무 /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1)

 

나지막한 동산을 뒤에 두르고 널찍한 들판을 내려다보는 곳, 시골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아름드리 고목나무 한 그루는 서정적인 우리 농촌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당산나무나 정자나무로 불리는 이런 나무의 대부분은 느티나무가 차지한다. 아늑한 품 안은 뙤약볕 여름농사에 지친 농민들의 안식처이며,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하는 여론광장이 되기도 한다.

 

산림청의 지도 감독을 받아 각 지자체가 지정 및 관리를 하고 있는 고목나무는 현재 약 1만 3천 그루쯤 되고, 그중에서 느티나무가 7천 1백 그루로 가장 많다. 따라서 고목나무 하면 느티나무다.

 

느티나무는 위로는 임금의 궁궐부터 아래로는 백성들의 생활터전까지 심고 가꾸는데 낯가림이 없다. 모두를 다 함께 편안하게 보듬어주는 넉넉하고 편안한 나무다. 이처럼 아름드리 굵기에 이야깃거리가 얽혀 있는 느티나무라면 짧게는 조선왕조, 길게는 고려나 신라인과 삶을 함께 해온 역사 속의 나무다. 우리나라 나무 중 은행나무와 함께 수명이 가장 긴 나무다. 몇백 년은 보통이고 웬만하면 천 년이 훌쩍 넘어간다. 긴긴 세월을 이어오면서 맞닥뜨린 민족의 비극도, 애달픈 백성들의 사연도 모두 듣고 보아오면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래서 전설을 간직한 느티나무는 수없이 많다.

 

전북 임실 오수읍의 의견(義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오수에서 멀지 않은 영천리에 살던 김개인이란 선비는 어느 날, 개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갔다가 낮술에 취하여 잔디밭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때 들불이 번져 주인이 위험에 처하자 개는 가까운 연못에 들락거리면서 몸에 물을 적셔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 주인을 구하다 지쳐서 죽어버렸다. 그는 개를 정성껏 묻어주고 지팡이를 꽂아두었더니 그 자리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 지금의 큰 느티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개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여 이 느티나무를 개나무란 뜻으로 ‘오수(獒樹)’라고 부르고 마을 이름도 바꾸었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전설이 아니라 고려 말의 문신 최자의 《보한집》에 실린 내용이다.

 

경남 의령의 세간리에는 ‘현고수(懸鼓樹)’란 느티나무가 있다. 이름 그대로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곽재우 장군이 북을 매달아 놓고 군사훈련을 시켰던 나무다. 612년(진평왕 34년), 찬덕이란 신라 장수는 지금의 충북 괴산 근처에 있던 가잠성의 성주였다. 어느 날, 백제군이 쳐들어와 성을 잃게 되자 그대로 달려 나가 느티나무에 부딪쳐 죽었다. 이후 가잠성을 ‘느티나무 괴(槐)’ 자를 써 괴산이라 부르게 했다고 전해진다. 괴산군 일대에는 지금도 느티나무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더 많았다고 하며, 오늘날 괴산군의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만 90여 주에 이른다.

 

쓰임새가 너무 많은 느티나무는 당산 지킴이로서 만족할 수 없었다. 목재는 나뭇결이 곱고 황갈색의 색깔에 약간 윤이 나며, 썩거나 벌레가 먹는 일이 적은 데다 무늬도 아름답다. 또한 건조를 할 때 갈라지거나 비틀림이 적고 마찰이나 충격에 강하며 단단하다. 한마디로 나무가 갖추어야 할 모든 장점을 다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무의 황제’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둥그스름한 당산나무만이 느티나무의 참모습은 아니다. 숲속에서 다른 나무와 경쟁하여 자랄 때는 곧바르고 우람한 덩치로 자란다. 그것도 적당히 자라다 마는 것이 아니라 키 20~30미터, 지름이 두세 아름까지 자란다.

 

목재의 쓰임도 화려하다. 천마총을 비롯한 관재로서 임금의 시신을 감싸고 영생의 길을 함께한 영광의 나무였다. 건축재로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해인사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법보전, 조선시대 사찰건물인 강진 무위사, 부여 무량사, 구례 화엄사의 기둥은 전부, 혹은 일부가 느티나무다. 또 흔히 스님들이 ‘싸리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는 구시(절의 행사 때 쓰는 큰 나무 밥통), 절의 기둥, 나무 불상도 대부분 느티나무다. 기타 사방탁자, 뒤주, 장롱, 궤짝 등의 가구까지 느티나무의 사용범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Daum 백과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