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인생] 걷기 영양 건강 산책

[함께걷기] (4) '고양 독립운동가의 길' 함께 걷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기념, 일산 호수공원 (2019.04.13)

푸레택 2019. 4. 13. 21:37

 

 

 

 

 

 

 

 

 

 

 

 

 

 

 

 

 

 

 

 

오늘 고양시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기념 '고양 독립운동가의 길 함께 걷기'에 참가하였다. 10시 개막 행사에 이어 독립운동가들에 관한 해설을 들으며 일산 호수공원 '독립운동가의 길' 3km를 걸었다. 오늘따라 날씨도 좋고 벚꽃도 만개하여 새봄을 만끽하면서 일제강점기 시절 온몸을 바쳐 헌신하신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겼다.

 

고양시에 이사온지 5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 오늘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기념 '고양 독립운동가의 길 함께 걷기'에 참가하여 이곳 고양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고양시 인구는 현재 106만명을 넘어섰으며 덕양구, 일산동구, 일산서구 3개의 구가 있다. 고양시에는 행주나루와 최영 장군의 묘소가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서삼릉과 서오릉이 있다. 행주나루 인근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지은 거국가(去國歌) 설명문이 있다. 고양시에는 천연기념물 고양송포 백송이 있으며 고양시 일산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은 고봉산이다.

 

고양 지역 최초의 근대적 교통 수단은 경의선이다. 고양시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나루는 행주나루이다. 고양시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역은 일산역이다. 동암일기를 쓴 독립운동가 장효근 선생은 고양 출신이다. 3.5일장이 서는 일산장은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던 곳이다. 고양시에는 100년이 넘는 행주성당, 행주교회, 행주서원이 있다. 고양시에서 가장 큰 수변습지는 장항습지이다. 고양시에서 가장 큰 공원은 북한산국립공원이다. 고양이라는 지명은 조선 태종 13년(1413) 때부터다. 이가순, 장효근, 장흥, 김권, 김익상, 이범윤, 박자혜(단재 신채호의 부인), 조병직, 김자근봉, 오화영, 정재용 선생은 고양시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고양시에는 74인의 애국지사가 서훈되어 있다고 한다. 고양의 자랑스런 독립운동가 양곡 이가순 선생(1867~1943)은 1919년 원산에서 3.1만세 운동을 주도했고 원산에 대성학교와 신간회를 세우기도 했다. 이가순 선생은 젊은 시절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만년에는 고양의 농민들을 위해 끊임없이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애국지사의 삶을 사셨다고 한다.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한 그의 아들 이원재 선생은 가는 곳마다 병원을 세우고 독립 자금을 지원했으며 능곡에서 병원을 경영할 때는 말과 자전거를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의술을 펼쳐 주민들의 큰 칭송을 받았고 한다. 또한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수리 사업을 완공하였다. 이가순 선생의 막내딸이자 이원재 선생의 동생인 이원숙 여사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정트리오(정명화, 정경화, 정명훈)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로 널리 알려져 있다. 3호선 정발산역에 내려서 일산문화공원 고양독립운동기념탑을 지나가면 호수공원쪽으로 이가순 선생을 기리는 비(碑)가 세워져 있다. 오늘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치신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삶과 정신을 되새겨 본 정말 뜻깊은 하루였다.

 

* 《고양의 독립운동》 2019년 발행 책자

《고양독립운동가 바로알기》를 참고하였음.

 

평화의 시작, 미래의 중심도시 고양(高陽)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이 탄생했습니다"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李相和)

 

지금은 남의땅ㅡ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는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 자락을 흔들고

종달이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혼자 어께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찿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몸 신명이 잡혔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그날이 오면 /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曺)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 심훈

 

어머니!

오늘 아침에 차입해 주신 고의적삼을 받고서야 제가 이 곳에 와 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 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저는 이 곳까지 굴러 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겪었건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집에 와서 지냅니다. 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망정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 순사까지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 들어가는 듯하였습니다.

 

어머니!

제가 들어 있는 방은 28호실인데 성명 세글자도 떼어버리고 2007호로만 행세합니다. 두 간도 못되는 방 속에 아홉명이나 비웃두름 엮이듯 했는데 그 중에는 목사님도 있고 시골서 온 상투장이도 있구요. 우리 할아버지처럼 수염 잘 난 천도교 도사도 계십니다. 그밖에는 그날 함께 날뛰던 저의 동무들인데 제 나이가 제일 어려서 귀염을 받는답니다.

 

어머니!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 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노인네의 얼굴은 앞날을 점치는 선지자처럼, 고행하는 도승처럼 그 표정조차 엄숙합니다. 날마다 이른 아침 전등불이 꺼지는 것을 신호삼아 몇천 명이 같은 시간에 마음을 모아서 정성껏 같은 발원으로 기도를 올릴 때면 극성맞은 간수도 칼자루 소리를 내지 못하며 감히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발꿈치를 돌립니다.

 

어머니!

우리가 천번 만번 기도를 올리기로서니 굳게 닫힌 옥문이 저절로 열려질 리는 없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목을 놓고 울며 부르짖어도 크나큰 소언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리도 없겠지요. 그러나 마음을 합하는 것처럼 큰 힘은 없습니다. 한데 뭉쳐 행동을 같이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그 큰 힘을 믿고 있습니다. 생사를 같이 할 것을 누구나 맹세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기에 나이 어린 저까지도 이러한 고초를 그다지 괴로와하여 하소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해 근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서는 우리 어머님 같으신 어머니가 몇 천이요 또 몇 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님께서도 이 땅의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 중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님보다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해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런 이 땅의 사나이외다. 콩밥을 먹는다고 끼니때마다 눈물겨워 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한 알만 마루 위에 떨어지면 흘끔흘끔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먹을세라 주워 먹는 것이 한 버릇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오늘 아침에는 목사님한테 사식(私食)이 들어왔는데, 첫 술을 뜨다가 목이 메어 넘기지를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외다. 아내는 태중에 놀라서 병들어 눕고, 열 두 살밖에 안된 어린 딸이 아침마다 옥문 밖으로 쌀을 날라다 지어드리는 밥이라고 합니다. 저도 돌아앉으며 남 모르게 소매를 적셨습니다.

 

어머니!

며칠 전에는 생후 처음으로 감방 속에서 죽는 사람의 임종을 같이 하였습니다. 돌아간 사람은 먼 시골의 무슨 교를 믿는

노인이었는데, 경찰서에서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되어 나와서 이 곳에 온 뒤에도 밤이면 몹시 앓았습니다. 병감은 만원이라고 옮겨주지도 않고, 쇠잔한 몸에 그 독은 나날이 뼈에 사무쳐 그 날에는 아침부터 신음하는 소리가 더 높았습니다. 밤이 깊어 악박골 약물터에서 단소 부는 소리도 끊어졌을 때,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그의 머리맡을 에워싸고 앉아서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덮쳐 오는 그의 얼굴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희미한 눈초리로 5촉밖에 안 되는 전등을 멀거니 쳐다보면서 무슨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추억의 날개를 펴서 기구한 일생을 더듬는 듯 하였습니다. 그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본 저는 무릎을 베게삼아 거의 머리를 괴었더니, 그는 떨리는 손을 더듬더듬하여 제 손을 찾아 쥐더이다. 금세 운명을 할 노인의 손아귀힘이 어쩌면 그다지도 굳셀까요, 전기나 통한 듯이 뜨거울까요?

 

어머니!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몸을 벌떡 솟구치더니 '여러분!'하고 큰 목소리로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찢어질 듯이 긴장된 얼굴의 힘줄과 표정, 그날 수 천 명 교도 앞에서 연설을 할 때의 그 목소리가 이와 같이 우렁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리는 마침내 그의 연설을 듣지 못했습니다. '여러분!'하고는 뒤미처 목에 가래가 끓어올랐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분이 유언할 것이 없느냐 물으매 그는 조용히 머리를 흔들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흐려지는 눈은 꼭 무엇을 애원하는 듯합니다마는, 그의 마지막 소청을 들어줄 그 무엇이나 우리가 가졌겠습니까?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그 날에 여럿이 떼지어 부르던 노래를 일제히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첫 소절도 다 부르기 전에 설움이 북받쳐서, 그와 같은 신도인 상투 달린 사람은 목을 놓고 울더이다.

 

어머니!

그가 애원하던 것은 그 노래가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의 일각의 원혼을 위로하기에는 가슴 한복판을 울리는 그 노래밖에 없었습니다. 후렴이 끝나자 그는 한 덩이 시뻘건 선지피를 제 옷자락에 토하고는 영영 숨이 끝어지고 말더이다. 그러나 야릇한 미소를 띤 그의 영혼은 우리가 부른 노래에 고이고이 싸이고 받들려 쇠창살을 새어 나가 새벽 하늘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저는 감지 못한 그의 두 눈을 쓰다듬어 내리고 날이 밝도록 그의 머리를 제 무릎에서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록사록이 아프고 쓰라렸던 지난날의 모든 일을 큰 모험삼아 몰래몰래 적어두는 이 글월에 어찌 다 시원스러이 사뢰올 수가 있사오리까? 이제야 겨우 가시밭을 밟기 시작한 저로서 어느새 부러 이만 고생을 호소할 것이오리까? 오늘은 아침부터 창대같이 쏟아지는 비에 더위가 씻겨내리고 높은 담안에 시원한 바람이 휘돕니다. 병든 누에같이 늘어졌던 감방 속의 여러 사람도 하나 둘 생기가 나서 목침돌림 이야기에 꽃이 핍니다.

 

어머니!

며칠 동안이나 비밀히 적은 이 글월을 들키지 않고 내어보낼 궁리를 하는 동안에 비는 어느덧 멈추고 날은 오늘도 저물어 갑니다. 구름 걷힌 하늘을 우러러 어머니의 건강을 비올 때, 비 뒤의 신록은 담 밖에 더욱 아름답사온 듯 먼 천의 개구리 소리만 철창에 들리나이다. (1919.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