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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로 읽는 과학] 중력 거스르는 식물의 모세관 현상을 모방하다

푸레택 2022. 9. 6. 12:15
네이처 제공

식물은 뿌리에서 물을 흡수한 뒤 잎으로 올려보낸다. 중력을 거슬러 물을 올려보내는 작업은 힘들어도 식물에게는 생존이 걸린 일이다. 잎에서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은 두 가지 방법을 쓴다. 하나는 잎의 기공을 통해 물을 계속 증발시켜 물을 부족하게 만든다. 그러면 뿌리가 계속 물을 올려보낸다. 이게 증산 작용이다. 

식물은 이것만으로도 충분치 않아 모세관 현상도 이용한다. 모세관 현상은 중력의 도움 없이 액체가 좁은 관을 오르는 현상이다. 물 분자 사이에는 표면장력이 있어 가는 관에서는 아무런 힘을 가해주지 않아도 물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연구진은 식물에서 일어나는 모세관 현상을 모방해 유체나 기체가 가는 관을 따라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하는 mm(밀리미터) 수준의 정육면체 구조를 만들어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난달 30일자에 발표했다. 

이런 기술은 그간 미세유체공학으로 불리며 다양한 분야에 활용됐다. 임신테스트기, 휴대용 혈당측정기에는 소변이나 혈액 같은 유체가 가는 관을 통해 흐르게 돼 있고, 이들이 원하는 부위에 도착하면 호르몬이나 혈당의 농도를 측정해 결과를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에도 쓰인다. 우리 몸의 장기 세포를 반도체 칩과 결합한 생체 모방칩(organ-on-a-chip)도 미세유체공학이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미세유체공학 기술의 핵심은 지름이 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수준인 미세관 안에서 액체 흐름을 조절해 각종 시료를 처리하는 것이다. 이번에 연구진은 한 변의 길이가 1.5mm인 정육면체 모양의 3차원 구조에서 모서리에 해당하는 부위를 지름 수백μm의 미세관으로 이었다. 또 대각선에 있는 꼭짓점끼리도 미세관으로 연결했다.

연구진이 미세유체공학을 이용해 개발한 미세관 모듈(왼쪽). 정육면체가 모듈 하나에 해당한다. 식물의 모세관 작용을 모방했다. 네이처 제공

연구진은 이렇게 미세관으로 이은 정육면체 모듈을 수십~수백 개 쌓아 올렸다. 미세관의 지름을 300μm부터 600μm까지 굵기를 달리한 뒤 관의 굵기에 따라 미세관을 타고 올라가는 유체의 속도를 계산한 결과 위로 다섯 칸을 이동하는 데 100ms(밀리초)면 충분했다. 

연구진은 또 실제 식물 모양으로 이들을 쌓고 맨 위는 식물의 잎에 기공이 있듯 구멍이 뚫린 일종의 뚜껑을 얹어 열린 구조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치 뿌리가 물을 빨아들여 잎으로 이동시키듯 미세관을 통해 밑에서부터 위로 유체를 순식간에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외에 나선 모양, ‘L’자형 등 다양한 경로로 유체를 흘러가게 했다. 

연구진이 중앙에서부터 유체(초록색)가 나선형으로 흐르게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네이처 제공

이번 연구는 단위 격자로 사용하는 mm 수준의 정육면체 구조를 3D 프린팅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연구진은 3D 프린팅을 이용한 덕분에 미세관의 굵기를 쉽게 조절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수십~수백 개를 인쇄하는 데 시간도 절약했다. 실제로 연구진은 논문에서 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아침에 연구실에 출근해 컴퓨터로 구조를 설계한 뒤 3D 프린터로 그날 저녁 격자를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구조는 모듈형이어서 쌓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도성과 비전도성이 반복되는 등 복잡한 구조의 생체 칩이나 특정 촉매나 시약만 통과하는 키트를 설계하는 데 유용할 전망이다. 

글=이현경 기자ㅣ동아사이언스 2021.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