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뙤약볕에도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분들. 고등어라도 한 마리 사러 장에 나가기, 병원에 약 타러 가기, 외출은 딱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병원과 약국을 차례로 들러 약봉지 하나씩 들고 탈래탈래 걸어 나오면 반기는 것은 다시 뙤약볕. 나도 약봉지를 항상 챙겨 다닌다. 약이라 함은, ‘모르는 것이 약이다’의 그 약. 병은 선고받은 그날로부터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아는 것이 힘인가? 모르는 것은 약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커피 라떼를 싫어한다지. 왜냐면 어른들이 입만 열면 ‘나 때’엔 어쩌고저쩌고. 그래봤자 일찍들 잔디밭으로 돌아가셨다. 라떼는 이제 그만. 옛 어른들은 신통방통 약이 없으니 일찍 숟가락을 놓았다. 의학이 발달하여 바야흐로 백세 장수시대. 남보다 먼저 죽으면 매우 억울하다.
제아무리 명품 패션, 명품 가방을 자랑하고 다녀도 병원에 눕는 순간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오줌이 담긴 비닐주머니를 샤넬 백 대신 옆구리에 차고 다닐 수도 있다. 인생은 끝까지 모르는 법. 그러니까 건강하게 살았을 때 착한 일도 많이 하고 더불어 행복한 장면도 남겨둬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딱 한 가지. 살 수 있는 사람과 곧 죽을 사람의 차이도 정답은 같다. ‘무얼 찾아 맛있게 먹는 사람과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
곡기를 끊지 않고 보조식품이라도 입에 털어 넣으면 어찌저찌 오줌과 똥을 눌 수 있다. 그래야 내일 조간신문을 받아볼 수 있다. ‘먹되, 배부르게 먹지 말고 잘 먹어라! 몸을 움직여 배고프게 만들라! 밥을 먹고 나면 꼭 걷기운동을 하라. 걷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
다리가 튼튼해야 오래 산다. 걷다보면 나팔꽃도 보고 깨꽃도 보고 포도넝쿨에 달린 잘 익은 포도를 따먹을 수 있다. 천하의 명약이 있대도 고요히 생을 돌아보며 숲길을 걷는 보약에 비기랴. 손에 든 줄줄이 약봉지보다 두 발로 서서 걷는 순간이 보약이렷다.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19.08.07
/ 2022.07.18 옮겨 적음
'[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의진의 시골편지] 찻잎사귀 (0) | 2022.07.18 |
---|---|
[임의진의 시골편지] 꼬무락꼬무락 (0) | 2022.07.18 |
[임의진의 시골편지] 참깨 들깨 (0) | 2022.07.18 |
[임의진의 시골편지] 레몬 나무의 기적 (0) | 2022.07.18 |
[임의진의 시골편지] 심야버스 (0) | 2022.07.18 |